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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연극] 인형극·가면극·마임…말과 몸의 통합

중앙일보 2016.09.03 00:01 종합 2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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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운
연극평론가·호서대 교수

연극에 대한 정의는 역사 이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 속 사람들의 갈등과 염원을 극장이라는 장소에서 맺고 푸는 것으로 줄여 말할 수 있겠다. 작게 보면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공연이고, 크게 보면 사회를 이루는 풍경이다. 그것이 가장 잘 보일 때가 더운 여름철이다. 많은 연극제가 이때 열리는 이유다.

올여름 만끽한 남미 연극


경제적 분배가 민주주의의 척도인 것처럼 극장과 공연 형태로 그 나라 민주주의를 가늠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적 규모의 연극제에 가서 극장 앞을 서성거리며 공연을 보는 것은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연극제는 국가가 행정적으로 지배하는 경우와 예술가들이 기획·운영하는 자발적 축제로 나누어진다. 몇 해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실험극축제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간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본 연극은 일상적 언어로 하되 비일상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연극은 오아시스처럼 이들의 삶과 사회 속에 일상을 초월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올여름 페루 리마, 에콰도르 쿠엥카,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본 언어는 일상적인 언어로 생동감이 넘쳤다. 삶을 지배하거나 조정하는 우월적 언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쿠차’라는 구어, 모국어가 된 스페인어 등이 통합된 라틴 아메리카 연극은 서양 연극의 중심 언어인 말과 달리 가면과 인형, 노래와 전통의상 등을 중심에 놓았다. 처음에는 이런 원시적 연극을 하는 것이 놀라웠지만, 보면 볼수록 한국 연극이 잊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남미 연극의 소재는 일상적 삶의 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린 것에서 분출된 놀라운 것이었다. 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길에서도 소박한 삶의 면목을 보여주는 인형극·가면극·마임 등이 많았다. 남미 연극은 일상의 언어 속에서 삶이 사회 속으로 재통합되는 모습이었다. 연극과 삶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한통속으로 묶여 있었다. 본디 삶과 연극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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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산맥 계곡에 있는 에콰도르의 세 번째 도시 쿠엥카에서 만난 길거리 인형극. [사진 안치운]

남미 연극은 오랜 식민 통치의 잔재 속에서 고통스러운, 혹은 가난한 삶이 허구의 연극 속으로 틈입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읽혔다. 연극은 남루한 삶을 껴안고, 가치 있는 삶으로 돌려놓는 예술적 시도였다. 허구의 연극이 실제의 삶을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연극이 지닌 사회적 본분임을 여기서 보았다.

한국 현대연극은 너무 빨리 서양 연극을 답습한 나머지 우리가 지녔던 전통적 표현 요소를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 말로 하는, 듣는 데 치중한 연극이, 몸으로 하는, 보는 연극을 앞질러 가고 있다. 연극은 몸과 말과 글을 하나로 묶는 예술이다. 우리 연극 언어의 회복은 몸과 말과 글의 분리가 아니라 하나로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몸을 통해 울려 나오는 말의 소리와 그것을 글처럼 새기며 읽는 태도가 필요하다. 교과서에서 연극을 종합예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것들의 개별적 분리와 심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엮는 것을 뜻한다.

안치운 연극평론가·호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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