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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기행] 오백 년 도읍지를 지키다

중앙일보 2016.09.02 00:04 Week& 5면 지면보기
| 제주오름기행 ⑪ 영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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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중산간. 방향에 따라 한라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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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중산간. 방향에 따라 한라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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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중산간. 방향에 따라 한라산도 보인다.

영주산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중국 설화에서 신선이 사는 세 개 산, 즉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로 등장한다. 삼신산은 봉래산·방장산·영주산으로, 각각 지금의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을 가리킨다. 지리산을 더 이상 방장산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지금은 한라산도 영주산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러나 영주산은 아직도 제주도에 있다. 서귀포시 표선읍 성읍리, 다시 말해 성읍민속마을 뒤에 우뚝 서 있는 오름이 영주산이다. 범상치 않은 이름처럼 영주산에는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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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 도읍지 약사(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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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성읍. 성읍 북쪽에 서 있는 영주산은 성읍의 진산이다.

 
영주산을 이해하려면 먼저 성읍민속마을을 알아야 한다. 성읍은 제주도를 삼분해 통치하는 고을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왕조는 제주도의 행정구역을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3개 읍 체제로 정비했다. 이 중에서 정의현(旌義縣)의 현청 도시가 성읍이었다. 원래는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에 현청을 뒀는데(태종 16년, 1416년),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세종 5년(1423년) 진사리라 불리던 지금의 성읍으로 현청을 옮겼다. 고성리는 성산일출봉 앞마을이다. 우도하고도 가깝다. 성읍은 군현제가 폐지되는 1914년까지 500년 가까이 제주도 동남쪽 지역의 중심 도시였다. 고성리(古城里)·성읍리(城邑里) 모두 옛 현청의 흔적이 이름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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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 남문 앞에 서 있는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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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 남문 앞에 서 있는 돌하르방.

 기록에 따르면 성읍은 축성을 시작한 지 닷새 만에 완공됐다. 제주도 전역에서 인력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긴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관아가 행사한 노역(勞役)이 그만큼 가혹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해오지 않는다. 성은 둘레가 약 1.2㎞ 길이로, 본래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에 문이 있었다. 지금은 동쪽에 민가가 들어서 있어 남문과 서문만 남았다. 성읍의 정문이었던 남문은 현재 복원 공사 중으로, 남문 앞에 원형 그대로의 돌하르방이 서 있다. 성 안으로 성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조성됐고, 도로 양 옆으로 관청과 민가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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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의 정겨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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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의 정겨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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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의 정겨운 모습.

숙종 28년(1702년) 당시 제주목사 이형상(1653∼1733)이 남긴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성읍의 민가는 모두 1436호였다. 지금은 성읍 안에 가옥 148채가 있다. 성 안의 148채 가옥 중에서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 가옥 5채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전통 가옥은 100∼150년 역사를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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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에서 바라본 영주산.


 성읍은 1987년 국가 지정 민속마을이 되었다. 둘레 1640m 면적 79만㎡에 이르는 성 안 마을은 민속마을로 지정된 이후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민속마을 안에서는 제 집이래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여느 민속마을처럼 성읍민속마을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데, 민속마을의 주민은 낡은 집을 어찌하지 못한 채 수시로 들이닥치는 관광객 눈치를 살펴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가는, 1년에 한 번 초가 지붕을 바꿀 때 나오는 보상금이 전부다. 민속마을 지정 전에 일부라도 개조한 집이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성읍민속마을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는 인정할 만하다. 현재 성읍민속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수는 45가구 114명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비롯한 제주도 패키지 여행자가 알고 있는 성읍은 성읍민속마을 외곽 지역이다. 가짜 기념품과 바가지 요금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성 안 마을에 들어서면 아직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선 천 년 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와 600년 묵은 팽나무 세 그루만 바라봐도 위안을 느낄 수 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성 안 마을에서는 다양한 제주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성읍민속마을 주민 중에서 선발된 장인이 오메기술·쉰다리·꿩엿 등 제주 전통음식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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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 서문.


여기에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제주도에서 왜 성읍에만 전통 가옥이 남아 있을까. 성읍을 비롯한 제주의 중산간 마을은 4·3 사건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4·3 사건이 발발하자 남한 정부는 해안에서 5㎞ 떨어진 내륙 마을을 태워 없앴다. ‘빨갱이 소굴’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성읍은 살아남았다. 해안에서 8㎞ 안쪽에 들어와 있는 해발 120m의 중산간 마을인데도, 마을이 모두 소각되는 화는 피했다. 4·3 사건의 광풍이 성읍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헤아려 보전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성읍은 제주도 동남쪽 지역의 중심 도시였다. 성읍에 경찰지서가 있었고, 경찰지서를 중심으로 군경 토벌대가 주둔했다.
  


영주산에 올라
 성읍의 역사에 관해서는 남산봉 편(week& 6월 17일자 5면 ☞ 기사보기)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바 있다. 성읍 남쪽에 봉수를 설치한 남산봉(179m)이 있다면, 성읍 북쪽에 마을의 진산(鎭山) 영주산이 있다. 남문 앞을 지키고 선 남산봉이 성읍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다면, 성읍 뒤편에 우뚝 선 영주산은 성읍을 비롯한 제주도 동남쪽 지역의 정서적 버팀목 노릇을 했다. 영주산은 성읍에서 북쪽으로 1.6㎞ 거리에 있다. 영주산의 해발 고도는 326m이고, 비고는 176m이다. 크고 작은 오름이 울퉁불퉁 돋은 제주 동쪽 중산간에서 영주산은 단연 돋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영주산에 정말 신선이 살았을까 하는 의문은 뿌리치기 힘들다. 중국 설화를 다시 보자. 중국 설화를 따르면, 삼신산에는 신선 말고도 사람이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불사약(不死藥)이 있었다. 금강산은 녹용, 지리산은 인삼, 한라산은 영지버섯이 각 산을 대표하는 불사약이었다. 영지가 많은 산이어서 ‘영지산’이었다가 영주산이 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반면에 한라산과 구분하기 위해 영주산을 ‘소(小)영주산’이라고 적은 기록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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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에서 올려다본 영주산 능선과 기슭. 곡선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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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에서 올려다본 영주산 능선과 기슭. 곡선이 부드럽다.

영주산은 덩치 크고 잘 생긴 오름이다. 영주산은, 능선이 이루는 라인이 매끄럽고 민첩해 보기에 좋은 오름이다. 반듯한 모습에서 묵직하고 중후한 멋마저 풍긴다. 삼나무 군락은 오름 아랫자락에 있고, 소나무 군락은 분화구 안쪽에 있어 웃자란 나무가 오름의 라인을 해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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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동쪽의 풍경. 방향에 따라서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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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동쪽의 풍경. 방향에 따라서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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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동쪽의 풍경. 방향에 따라서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그러나 영주산은 올라야 하는 오름이다. 신선은커녕 영지버섯도 못 만난다 해도 영주산은 뚜벅뚜벅 정상까지 올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영주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영주산은 오르는 길도 재미있다. 초원으로 이루어진 비탈이 완만한 편이어서 부담도 적다. 봄이면 오름 자락에 솜방망이·제비꽃·미나리아재비·구슬붕이 같은 들꽃이 만발한다는데, 늦여름에는 말라 비틀어진 엉겅퀴만 잔뜩 있었다. 꽃 피는 봄에 꼭 다시 올라야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풀밭 군데군데 소똥 무더기에서 되레 친근감을 느꼈다. 소를 풀어놓는 오름이라는 증거이어서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 오름 대부분에서 소를 풀어놓고 키웠다. 그러나 요즘엔 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름에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졌다는 뜻이다. 영주산 자락에서 보이는 소똥은, 영주산이 아직 인적이 드물다는 증거다. 지금은 관광객이 줄을 서서 오르는 용눈이오름도 10년 전에는 온통 소똥 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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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은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다. 하늘을 향해 난 나무계단을 묵묵히 오르면 정상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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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은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다. 하늘을 향해 난 나무계단을 묵묵히 오르면 정상에 다다른다.

 비탈을 오르고 나면 ‘하늘을 향해 난’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경사 있는 초원을 따라 놓인 데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어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하늘과 맞닿을 것만 같다. 계단에 올라서면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할 길이 없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렇게 자연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 마냥 즐겁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한걸음씩 비탈을 오를 때마다 한 뼘씩 넓어지는 들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지만, 정상에서 내다보는 전망에는 어림도 없다. 동남쪽의 성산일출봉과 우도는 물론이고 북서쪽의 한라산 자락까지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옛날 성읍이 관할하던 영토가 그대로 한눈에 담기는 듯했다. 발아래로 성읍민속마을이 보였다.

정상에 올라서야 비로소 알았다. 영주산은 성읍을 보듬지 않는다. 영주산이 동쪽으로 살짝 돌아앉아 있어, 오름 오른쪽 자락 아래에 성읍이 놓여 있다. 성읍에서 올려다볼 때는 영주산의 옆모습인 줄 몰랐다. 영주산은 옆모습도 우람하기 때문이다. 오백 년 도읍지의 진산치고는 풍수지리에 맞지 않는 형세인데, 주위를 돌아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읍 남문 앞에는 남산봉이 있고, 동쪽은 모지오름(305m)과 따라비오름(342m)이 지킨다. 성읍 서쪽은 섬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이 흐르고, 북쪽은 든든한 영주산이 막고 있다. 이 정도면 어느 명당 부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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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통 음료 쉰다리를 만드는 과정. 첫번째 사진의 모습에서 건더기를 건져내면 두 번째 사진의 음료가 된다. 시큼털털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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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통 음료 쉰다리를 만드는 과정. 첫번째 사진의 모습에서 건더기를 건져내면 두 번째 사진의 음료가 된다. 시큼털털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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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의 전통음식 장인 송심자씨.

● 여행정보=성읍민속마을 뒤편을 지나는 1119번 지방도로에 영주산 안내판에 서 있다. 그러나 안내판이 잘 안 보여 ‘알프스 승마장’을 찾아가는 게 편하다. 승마장 옆으로 난 산길로 들어가면 영주산 입구가 나타난다. 영주산은 탐방로가 잘 돼 있어 2시간이면 정상을 올랐다 내려올 수 있다. 성읍민속마을(seongeup.seogwipo.go.kr)에서 체험 공방을 운영한다. 마을이 지정한 장인이 전통음식·전통혼례·오메기술·천연염색 등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전통음식 체험 가운데 송심자(65) 장인의 쉰다리 만들기 체험에 참여해 봤다. 쉰다리는 쉰 보리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저농도 알코올 음료로, 제주도에서는 예부터 여름에 즐겨 먹었다. 진한 요구르트처럼 시큼하면서도 달았다. 5인 이상. 체험비 1인 1만원. 010-3690-9943. 다음달 15∼16일 성읍민속마을에서 ‘정의골한마당축제’가 열린다. 성읍 주민으로 구성된 취타대의 공연과 정의현감 부임행차 재현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제주 전통놀이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성읍민속마을보존회 064-787-1179.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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