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융위 “현대상선서 한진해운 알짜선박·인력 인수 추진”

중앙일보 2016.09.01 02:21 종합 8면 지면보기
금융 당국과 KDB산업은행,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 일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 양대 선사 사실상 합병 가닥
회생 여부 법원 판단 안 나온 데다
우량자산 거의 팔려 통합효과 의문
한진 배, 부산서 운항 중단 이어
미국·스페인 등선 입항 거부 속출

금융위원회는 31일 금융감독원·산업은행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에 대한 금융시장 대응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한국의 기간산업인 해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며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을 인수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산업은행의 계열사가 됐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부채를 짊어져야 하지만 자산 일부를 인수하면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한진해운의 장점만을 흡수할 수 있다.

금융위는 ▶선박 ▶해외 영업 네트워크 ▶핵심 인력을 인수 대상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해외 지점 인력이 대표적인 우량 자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진해운은 현재 해외에 현지 법인 23곳, 영업지점 100곳을 보유하고 있다.
기사 이미지
금융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인력 중 일부를 선별해 고용 승계하면 법정관리 과정에서도 한진해운의 해외 영업 네트워크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과 업계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법원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자산 인수를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회사의 청산 또는 회생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자산 매각에 대해 언급한다면 한진해운은 회생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다”며 “회생 여부는 법원이, 자산 매각 여부는 채권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량 자산 자체가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항로 영업권, 항만 지분 등의 알짜 자산을 이미 ㈜한진과 한진칼 등에 팔았다. 99척의 컨테이너선이 있지만 빚을 갚고 나면 남는 배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총 2조5000억원의 선박금융(선박담보대출)을 일으킨 금융사와 2455억원의 용선료를 받지 못한 용선주들이 배를 압류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항로 영업권을 현대상선이 넘겨받는다 해도 시너지 효과는 미지수다. 양창호 한국해운물류학회장은 “양대 해운사는 상당 부분 항로가 겹치기 때문에 영업권 인수 시 시너지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나 파산으로 국제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되면 권리가 사라진다. 이제 막 경영 정상화의 첫걸음을 뗐지만 현금 자산이 부족한 현대상선 입장에서도 한진해운 자산 인수는 상당한 부담이다.
기사 이미지

싱가포르서 가압류 한진해운이 31일 법정관리 를 신청했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 거부와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 회사 선박 운영도 곳곳에서 중단됐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한진해운의 자산 일부를 현대상선이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은 싱가포르 항구에 가압류된 한진로마호. [사진 마린트래픽 캡처]

한편 한진해운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파산6부는 채권·채무 동결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일 한진해운 본사와 부산신항만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 거부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라 선박 운영 중단사태도 속출했다.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한진로마호’가 가압류된 데 이어 이날 부산 외항에 정박 중이던 한진멕시코호의 운항도 중단됐다. 미국·캐나다·중국·스페인 등에서는 한진해운 배가 항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양수산부는 한국선주협회·부산항만공사 등이 참여하는 해운·항만·물류 비상대응반을 가동해 한진해운과 관련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관련 기사 대주주 사재 출연 액수도 안 밝힌 한진해운…계열사까지 판 현대상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열린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조조정 원칙을 지켜 내린 결정이지만 선적화물의 수송 지연, 수출화물 선박 섭외, 필수 선원의 해외 억류 가능성 등으로 최소 2~3개월간의 어려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선 한진해운을 되살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부산항발전협의회와 해운 관련 단체는 “한진해운이 필요로 하는 3000억원을 부산의 26개 단체가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진석·이태경·문희철 기자 kailas@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