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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프, 민주투사로 환호 속 등장…경제실정에 끝내 퇴장

중앙일보 2016.09.01 01:53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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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시간) 브라질 전 대통령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맨 오른쪽)를 포함한 상원의원들이 대통령 탄핵 찬반 입장을 밝히기 위해 줄 서 있다. [AP=뉴시스]

지우마 호세프(68) 브라질 대통령이 혹독한 운명을 맞았다. 2011년 1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오른 그는 5년8개월 만에 탄핵으로 권좌에서 쫓겨나게 됐다.

연임 위해 나랏돈 2조원 끌어다
최저임금 올리고 연금도 늘려
-3% 경제성장, 1930년 후 최저
실업률 11%에 수천 만명 시위
집권당은 석유회사 뇌물 스캔들
중도우파 테메르 대통령직 승계
일각 “더 부패한 우파, 좌파 몰아내”

호세프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최후 변론에서 “군부독재 시절 고문으로 겪었던 죽음의 공포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쿠데타로 인한 민주주의의 죽음이 더 무섭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브라질 상원의원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31일 탄핵 표결에서 전체 상원의원 81명 중 탄핵 가결 정족수(54명)를 상회한 61명이 찬성표를 던져 탄핵이 최종 결정됐다. 이로써 호세프는 1992년 탄핵당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에 이어 브라질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됐다.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 의회에서 탄핵 심판을 주재한 히카르두 레반도브스키 대법원장은 “이날 부로 호세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미셰우 테메르(75) 대통령 권한대행이 2018년 말까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고 발표했다.

호세프에 대한 탄핵 사유는 2014년 연임을 위한 대선을 앞두고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끌어 쓰고 갚지 않는 등 정부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호세프는 그해 10월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부재정회계법 위반은 표면적인 사유일 뿐 실은 경제 실정과 정치권 부패 책임을 물어 탄핵당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브라질 경제는 호세프가 재선한 2014년 이후 악화 일로다. 지난해 성장률은 -3.8%로 뒷걸음쳤고 올해도 -3.3%로 전망된다.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수치다. 인플레이션은 9% 수준이고 실업률은 11%에 달한다. 지난해 수천만 명이 거리로 나와 호세프 퇴진 시위를 벌였다. 이는 지난해 말 브라질 하원의 호세프에 대한 탄핵 추진 계기가 됐다.

브라질 검찰과 상원의원 상당수는 호세프의 포퓰리즘 정책이 브라질 경제를 악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안토니우 아나스타시아 상원의원은 “2010년 8억 헤알 정도였던 국영은행 자금 전용이 지난해엔 무려 59억 헤알(약 2조88억원)로 불어났다. 이건 범죄”라고 주장했다. 호세프는 “국영은행 자금 전용은 전 정부부터 이어진 관례고 돈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연금을 확대하는 데 쓰였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 집권당인 노동자당(PT)을 비롯해 연정을 이룬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소속 주요 정치인들은 ‘페트로브라스(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뇌물 수수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호세프는 이 스캔들과 관련 수사를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을 수석장관에 임명하려 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번 탄핵으로 호세프는 대통령직을 잃었고 2003년 룰라 이후 13년에 걸친 좌파 노동자당 정권도 막을 내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부패한 좌파를 더 부패한 우파가 몰아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테메르 권한대행은 노동자당과 연정을 이뤘던 중도우파 PMDB 소속으로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다. 호세프는 지난달 29일 최종 변론에서 “부패 수사를 받고 있는 세력들에 의해 탄핵 당하는 현실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노동자당 지지자들은 테메르의 지지율이 10% 안팎인 데다 절반 이상 국민(62%)이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는 설문조사를 거론하며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로운 대선을 치르려면 테메르의 사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은 극히 작다고 AP는 전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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