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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소설가 김명순을 김동인은 왜 미워했을까

중앙일보 2016.09.01 01:16 종합 2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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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 『탄실』을 낸 작가 김별아씨. [사진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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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작가 김별아(47)씨가 새 장편 『탄실』(해냄)을 내놓았다. 첫 근대 여성 소설가 김명순(1896~?)의 삶을 그의 소설과 수필·희곡, 잡지 기사 등을 토대로 복원한 작품이다. ‘첫’이라는 수식어는 영광스럽다. 역사와 기록에 남아서다. 하지만 ‘첫’ 다음에 ‘여성 소설가’ 같은 낱말을 이어붙이는 언어습관은 그 자체로, 작가라면 모름지기 ‘남성’이 기본값이라는 남성중심적인 생각이 깔린 표현이라는 게 요즘 페미니즘의 시각이다. 여류(女流)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다.

『미실』 김별아 새 장편 『탄실』 출간

김씨는 반대로 간다. 그렇더라도 김명순이 첫 여성 소설가였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거다. 그만큼 김명순은 대중의 기억에서 삭제된 인물이고, 그리 된 데는 동시대 남성작가들의 뿌리 깊은 편견과 악의적인 집단 공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서다. 기생의 딸이라는 점, 성폭행 피해자였는데도 정조 상실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당시 풍조가 복합작용해 남성 작가들이 김명순을 거칠게 몰아쳤다는 얘기다.

김씨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김동인을 들었다. 김동인은 김명순을 1920년대 문예지 ‘창조’의 동인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39년 소설 ‘김연실전’에서 주인공 김연실을 독한데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그리는데 연실의 모델이 바로 김명순이다. 김명순으로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다.

김씨는 지난 30일 “김동인뿐 아니라 김기진·방정환 등 당대의 남성작가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김명순을 공격했다. 객관적 비판이 아니라 인신공격성 비난이어서 내가 그런 비난을 받았다면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베스트셀러 『미실』,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를 다룬 『영영이별 영이별』 등을 통해 남성 위주의 공식역사에서 누락된 여성들을 발굴하는 작업에 주력해 왔다. 이번 『탄실』이 페미니즘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지적하자 “그보다는 역사의 빈 자리에 관심이 많다. 김명순이라는 한 작가를 복원한다는 게 내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24년차 작가인데 데뷔 당시 여성 작가들의 지위가 김명순 시대의 지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여성차별적인 현실은 요즘도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현대의 김명순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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