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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 시대 버킷 리스트] 우연히 접한 만돌린 음색이 ‘인생 GPS’ 바꿨죠

중앙일보 2016.09.01 01:05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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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만돌리니스트 김병규씨는 “아직도 유튜브에서 만돌린 음악을 듣다 보면 새벽 5시가 되곤 한다”며 “좋아하는 걸 하니 몰입하게 되고 자연스레 행복한 반퇴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폭포수가 쏟아지듯 1000명이 내뿜는 하모니가 포도밭 모양의 공연장에 흘러 넘쳤다. 지난달 25일과 27일 롯데 콘서트홀 개관기념으로 열린 ‘말러 교향곡 8번(천인교향곡)’ 공연이었다. 90분간의 연주가 끝나자 출연자 중 유일하게 백발이 성성한 만돌리니스트 김병규(60)씨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제 나이 예순인데 이렇게 큰 무대에서 젊고 실력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뿐입니다.”

엔지니어 출신 연주자 김병규씨
“마흔 이후에는 내인생 살겠다”
잘나가던 회사 나와 이탈리아 유학
만돌린 전도사로 한 해 80회 협연
해외 공연하며 한 달 500만원 수입

김병규씨는 국내에선 유일하게 만돌린을 제대로 전공한 연주자다. 대기업 엔지니어였던 그는 39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40세에 만돌린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회사 시절 그는 전자도면 관리 등 핵심업무를 도맡았다. “몇 달 밤을 새며 GPS로 엘리베이터 고장을 자동 감지하는 프로젝트를 내놨어요. 그런데 너무 신기술이라며 회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요.”

이 일을 겪으며 그는 가슴에 품어왔던 만돌린의 꿈을 꺼냈다. “늘 40세 전까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그 뒤엔 만돌린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언젠가 회사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느니 제 꿈을 일찍 펼쳐보고 싶었죠.”

만돌린은 기타와 유사한 길이 60cm 의 이탈리아 전통악기로 낮고 애잔한 소리가 난다. 대학 기타동아리에서 우연히 만돌린을 접하고는 그 음색에 빠져들었다. “이상하게도 만돌린 소리를 들으면 슬픔이 정화됐어요. 저랑 뭔가 닮았거든요. 둘 다 좀 차분하고 한(恨)도 조금 있구요.”

아내도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만돌린을 제대로 배워보라”며 힘을 실어줬다. 그는 세계적 만돌린 권위자인 이탈리아 파도바 음대의 우고 오를란디 교수에게 직접 편지를 써 입학 허가를 받았다. 26세 이상은 받지 않는 학교지만 교수는 그의 학구열에 감복했다. 하지만 휴강공고를 알아듣지 못해 빈 강의실을 헤매고, 젊은 학생들의 패기어린 연주에 기가 죽기도 했다. 처음엔 4~5시간 하던 연습을 15시간 이상으로 늘렸다. 만돌린 곡의 의도를 알기 위해 역사적 배경과 작곡가의 생애를 살피고, 유적지까지 찾아다녔다. “테크닉만으로는 졸업하기 힘들었을 지 몰라요. 교수는 곡에 대한 이해력을 인정해줬어요.”

7년 코스를 4년 만에 졸업하고 국내 첫 만돌린 전공자가 되어 2001년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만돌린을 홍보하고, 학교와 교회가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만돌린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만든 만돌린 동호회 회원은 현재 200여 명으로 15년째 봄마다 만돌린 페스티벌도 연다. 한 해 80회 이상 협연을 하며, 미국과 유럽에 해외공연도 다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통장잔고는 500만원. 지금은 한 달에 딱 그만큼 씩은 번다고 했다. 그는 “한 번 뿐인 인생, 전반전은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후반전은 나를 위해 살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과감히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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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유빈 기자 kim.yoovi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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