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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명대사 남기고 떠나다

중앙선데이 2016.08.28 01:36 494호 2면 지면보기

‘막둥이’ 구봉서씨는 ‘비실이’ 고(故) 배삼룡씨와 명콤비로 큰 웃음을 안겨줬다. [중앙포토]



27일 오전 1시 숙환으로 별세한 ‘막둥이’ 구봉서씨는 TV와 라디오, 영화를 넘나들며 세대를 아우르는 웃음을 한껏 안겨준 코미디언이자 대스타다. 90세. 이미 고인이 된 ‘후라이보이’ 곽규석, ‘비실이’ 배삼룡, ‘살살이’ 서영춘 등과 더불어 1960년대부터 초창기 TV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삶과 추억] 한국 코미디 황금시대 이끈 ‘막둥이’구봉서

1926년 평양 태생인 고인은 출생 직후부터 서울에서 자랐다. 대동상업고등학교 시절부터 본래 성악가를 꿈꿨던 그는 19세 무렵 아코디언을 들고 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된 것을 계기로 악극단에 합류,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당시 선무단·군예단 등에 소속돼 군장병 위문공연 등으로 연예활동을 이어갔다.



스크린에는 군에서 제대한 이듬해 ‘애정파도’(1956)로 데뷔했다. 곧이어 극 중 4형제 가운데 막내 역할로 출연한 ‘오부자’(1958)가 크게 히트하며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비롯, 그의 영화 출연작은 한국영상자료원의 기록에 확인되는 것만도 약 170편에 달한다. 코미디 연기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명실상부 스타였다. 고정된 성 역할을 뒤집은 ‘남자 식모’(1968)를 시작으로 그를 전면에 내세운 ‘남자 시리즈’가 70년대 초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코미디 연기뿐만 아니라 유현목 감독에게 발탁돼 주연을 맡은 ‘수학여행’(1969)에서는 정극 연기를 선보였다. 섬마을 학생들을 이끌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교사 역할이었다.



이에 앞서 라디오에서는 50년대 ‘홀쭉이와 길쭉이’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구봉서입니다’ ‘막둥이 가요만보’ 등 여러 방송사의 프로를 진행하며 인기를 누렸다. 그의 명성과 인기는 본격적인 TV 시대와 함께 더욱 높아졌다. 특히 69년 시작해 85년까지 이어진 장수 코미디 프로 ‘웃으면 복이 와요’(MBC)로 매주 안방극장에 웃음을 안겼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그의 연기와 동갑내기 배삼룡의 즉흥성 강한 연기가 빼어난 콤비 호흡을 이룬 것도 이 프로에서다. 또 다른 콤비 곽규석과는 70년대 중반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라면 CF로도 시청자에 각인됐다. 그는 과거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TV 코미디를 두고 “지금처럼 작가가 따로 없었다”며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뭐 웃음거리 없나, 그것만 보고 다녔다. 병원에 가도 의사가 어떻게 하나 유심히 봤다. 언제 무슨 역할이 돌아올지 모른다. 그걸 준비하는 게 배우의 공부”라고 회고했다.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푸 사리사리센타…’로 이어지는 유명한 대사 역시 그의 솜씨였다.



‘막둥이’라는 별명에서 짐작하듯, 그는 제법 지위가 있거나 위풍당당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누구나 다가서기 만만하고 편안한 인상을 풍겼다. 생전의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 국민들에게 웃음을 줬으니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동시대 시청자뿐만 아니라 그의 코미디를 보고 자란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후배 코미디언 이경규씨는 “구봉서 키즈로 자라 코미디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처음 방송국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을 쳐다도 못 봤다. 짓궂은 장난을 자주 치는 재미있는 성격이셨지만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같이 식사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굉장히 미남이셨고 연기를 잘하셨다. 그 연기를 배우고 싶었다”고 추모했다. 지난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도 후배 코미디언 30여 명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유성 명예집행위원장은 “힘들고 어렵고 못살고 추웠던 시절에 서민들이 웃을 수 있었던 건 코미디 덕분”이라며 “대선배님들이 한 분 한 분 가실 때마다 굉장히 큰 기둥을 잃은 것 같아 정말 마음이 힘들다”고 전했다.



고인은 고령에 이런저런 병치레로 쇠약해져 휠체어에 의존하면서도 코미디언들이 큰 상을 받을 때면 직접 나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TV 인터뷰 프로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는 이번 광복절 무렵 입원했다가 회복하지 못했다. 장남 구명회씨는 “엄하기도 하셨지만 가족적인 아버지, 자랑스러운 아버지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2000년 MBC 코미디언 부문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2006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정계순씨와 아들 명회·원회·승회·정회씨.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29일.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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