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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이변, 예보관 역량 부족 … 연구투자·교육 강화해야

중앙선데이 2016.08.28 01:15 494호 7면 지면보기

충남 논산시 상월면의 한 농부가 극심한 폭염과 가뭄에 잎이 누렇게 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 옥수수를 들어 보이고 있다. 논산=프리랜서 김성태



8월 들어 지난 25일까지 서울의 평균 기온은 29.6도였다. 가장 더웠다는 1994년 8월 1~25일 평균 기온 28.2도보다 1.4도나 높았다. 26일 북쪽에서 찬 공기가 들어오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30일께 다시 낮 최고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를 전망이다. 1907년 10월 서울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2016년 8월은 무더운 8월으로 기록될 듯하다.


‘오보청’ 오명 뒤집어쓴 기상청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 빗나간 예보를 쏟아낸 기상청에는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기상청이 ‘오보청’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건 이번만이 아니다. 기상 예보가 빗나간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여름이다. 그해 6월 말부터 6주 동안 주말마다 예보가 빗나갔고, 휴가와 나들이를 망친 시민들의 불만도 쇄도했다. 2010년 1월 4일에는 서울·경기·강원에 1~4㎝의 눈이 내리겠다고 예보했지만 실제 서울엔 관측 사상 최대인 25.8㎝의 눈이 쌓였다. 그해 9월 21일 서울에는 하루 만에 259㎜의 폭우가 내려 강서·양천 지역의 주택이 침수됐고, 광화문도 물바다가 됐다. 당시 기상청이 예상한 강수량은 20~60㎜였다.



정부는 2009년 기상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켄 크로퍼드 미국 오클라호마대 석좌교수를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 초빙했다. ‘기상청의 히딩크’로 불렸던 그는 2013년까지 근무하면서 기상청·국토부·공군 등에서 따로따로 운영하던 기상레이더를 통합 운영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다.



한동안 예보가 잘 맞는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올 7월 장마철 기상청 예보는 자주 빗나갔다. 기상청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비가…’라고 예보했지만 실제 내린 비는 고작 0.2~0.5㎜ 수준이었다. 8월에는 폭염이 곧 끝날 것처럼 예보했지만 기상청 최초 예보보다 열흘이나 더 지속되면서 시민의 질타를 받았다.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예보도 빗나갈 때가 많다. 기후변화?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 상황에서는 수퍼컴퓨터와 수치예보모델도 맥을 못 춘다. 수퍼컴퓨터는 도구일 뿐이고, 실제 기상예측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인 수치예보모델이다. 현재 기상청에서는 2010년 본격 도입한 영국모델(UM)을 기본으로 삼고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모델, 일본의 수치예보모델 등을 참고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은 2019년부터 본격 투입될 예정이다.



안명환 이화여대 대기환경공학과 교수는 “미국 기상예보모델보다 낫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ECMWF 모델도 올여름 장마나 폭염에서는 잘못된 예측을 계속 내놓았다”고 말했다. 7월부터 베링해 부근에 강한 고기압이 발달해 버티는 ‘블로킹 현상’으로 인해 한반도 주변 공기 흐름이 정체되는 상황이 지속됐다. 8월부터는 중국 대륙에 강한 고기압이 만들어져 더운 공기를 한반도로 지속적으로 유입시켜 폭염을 가중시키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윤화 기상청장은 “예보 모델들이 8월 중순 이후 기온이 금방 떨어질 것이란 예측 결과를 계속 내놓았는데, 그나마 예보관들이 전체 상황을 감안해 예상 기온을 높여 발표했다”고 말했다. 수치예보모델 산출 결과와 실제 기온 사이에 7도까지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폭염 종료 시기를 여러 차례 변경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오보를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재병 예보 자문관



기상청 예보관들의 경험 부족, 역량 부족도 중요한 원인이다. 최근 예보관들이 예측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예측모델이 흔들리면 예보가 빗나가는 일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이달 초 기상청이 기상청 예보국장과 차장을 역임한 홍윤(63)씨, 기상청 예보국장을 지낸 이재병(59) 전남대 초빙교수를 자문관으로 투입했다. 20~30년씩 예보 현장에서 활동했던 베테랑을 ‘긴급 수혈’한 것이다. 기상청은 두 자문관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모델의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들도 완벽한 예보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재병 교수는 “올여름 기상 상황은 나도 처음 보는 현상일 만큼 아주 이례적이었다. 단기예보는 몰라도 3일 이상 앞을 내다볼 때에는 예보관들이 모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어느 예측모델도 모든 조건에서 잘 맞출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예보관이 예측모델별로 특성을 잘 파악해 그때그때 서로 다른 모델의 예측 결과 중에서 취사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장·단기 대책을 마련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상청의 역량을 집중해 예보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한반도 주변 기상 현상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기상학회장인 손병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얼마 전부터 예보가 정확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자 기상청이 영향예보, 빅데이터 활용 등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며 “본업인 기상 예보보다 다른 업무에 신경 쓰면서 예보 정확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수도권기상청을 별도 설치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본청에서 담당해도 될 일을 별도 조직을 만들고 인력을 나누는 통에 역량이 분산됐다는 것이다. 이재병 교수는 “중기예보(3~10일 예보)를 하루 두 차례 발표하는데, 차라리 하루 한 번으로 줄여 예보관의 부담은 줄이고 정확도는 높이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마·황사·태풍 등 한반도의 고유한 기상 현상에 대한 연구 투자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열린 장마철 강수예보 개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장마의 경우 기후변화에 따라 양상이 과거보다 크게 달라지고 있으나 최근 10여 년 동안 장마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국립기상연구소가 제주도로 옮겨가면서 젊은 연구자들이 떠나 연구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보관들에 대한 교육을 내실화하고 동기 부여를 위해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보관은 업무상 야근이 잦고, 예보가 빗나갈 때면 비난을 받기 쉽다. 이 때문에 예보관 업무는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기상청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한 인사는 “한때 성과급을 예보관들에게 몰아주고 인사상 혜택을 주는 등 사기를 진작하는 제도가 시행됐지만 최근엔 흐지부지됐다”고 전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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