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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에서 술냄새를 맡다

중앙선데이 2016.08.28 00:18 494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에이미 스튜어트 역자: 구계원 출판사: 문학동네 가격: 2만3000원



“이게 바로 정원이 아니고 뭐겠어요! 이 많은 술병들 속에 들어 있잖아요.”


『술 취한 식물학자』

가드닝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주류 판매점을 식물원에 비유한다. 여기를 보면 무성하게 웃자르는 풀인 옥수수로 만든 버번이 보이고, 저기를 보면 지중해산 허브 향쑥으로 만든 압생트가 보이니, 이것이 곧 마실 수 있는 식물로 가득한 이국의 정원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술이 시작되는 곳-. 그는 그곳에서 알코올과 만나는 식물 160여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우선 보리. 괜히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보리에는 전분을 당분으로 변환하는 효소가 유독 많이 들어 있단다. 해서 밀이나 쌀 같은 곡물과 섞어 놓는다. 다른 곡물 속에 있는 전분이 분해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리가 없었다면 맥주뿐만 아니라 위스키, 보드카, 진까지 없는 세상이라니. 너무 슬프지 않은가.



반면 밀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재료다. 단백질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질소를 붙잡는 능력이 유달리 뛰어나 전분 주위로 단백질 망이 촘촘히 쌓이는 것이다. 이는 제빵업자에게는 축복이지만 양조업자에게는 재앙이다. 전분이 너무 단단히 얽혀 있어 접근이 힘들고 질소와 단백질 양이 많아지는 만큼 당분의 양이 적어져 생산되는 알코올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밀 맥주 특유의 구수한 빵의 풍미와 톡 쏘는 감귤향을 포기할 수 없어 고생을 감행하는 셈이다.



이외에도 자연이 빚어내는 창조적인 술은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멕시코 증류주인 메스칼은 아스파라거스 목에 속하는 선인장의 일종인 아가베로 만든다. 이미 충분히 이국적인 이 술은 증류를 할 때 현지에서 나는 야생 과일로 단맛을 더한 뒤 생 닭을 증류기에 걸어놓고 증기가 닭고기를 훑고 지나가게 한단다. 한층 가라앉은 단맛을 만들기 위함이라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과연 어떤 맛일까.



생으로 옥수수를 씹어서 뱉은 다음 그 옥수수 덩어리를 물과 섞어 만드는 옥수수 맥주 치차 역시 인체의 신비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침에 들어있는 소화효소가 전분을 당분으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유칼립투스의 수액을 먹고 취한 사향오색앵무새들이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비틀대기 일쑤라니 정말이지 동식물의 세계가 조화롭게 아우러진다.



저자는 단순히 식물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역사나 맛있게 마시는 법 등을 꼼꼼하게 적어넣었다. 낯선 식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세밀한 그림도 그려넣었다. “마티니에는 베르무트에 대한 소문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섞지 말아야 한다는 오래된 농담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며 과감하게 올리브와 레몬껍질을 넣는다거나 “어비에이션에는 제비꽃의 친척인 팬지를 사용하면 식물학적으로도 재치가 넘치는 대체품이 된다”는 조언은 술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하고픈 욕구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이 한국의 진로 소주라니 눈을 들어 너른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정보를 꽉꽉 눌러담으려다 보니 편집은 다소 산만하다. 열심히 보리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는데 위스키의 올바른 철자법이나 보리를 직접 기르는 방법에 러스티 네일 제조법도 모자라 술병 속의 벌레 지렁이까지 튀어나오니 어디에 먼저 눈길을 줘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허나 “독보적으로 꽃이 만개한 초원의 맛을 선사하는” 엘더플라워나 “달콤하고 진정 효과가 있으며 진한 꽃향기를 풍기는 식후주를 만들어낸다”는 캐모마일 같은 설명을 보며 어찌 손과 입을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부지런히 따라해 봐야지. “원예학은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주제”라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감한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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