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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사드 갈등, 특사외교로 풀어라

중앙선데이 2016.08.28 00:15 494호 30면 지면보기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체계 배치를 둘러싼 집안 싸움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한·중 간의 격한 논란이 한풀 꺾인 모양새이지만 그것은 물위에 드러난 빙산의 조각일 뿐, 수면 하에 잠긴 거대빙산의 무게가 갈수록 우리를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30년간 정치 외교의 현장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고 다녔다. 외교를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체감 외교’의 노하우가 있다고 자부한다. 오랜 경험으로 보건대, 모든 외교현안이 단번에 속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는 없다. 또 다른 큰 이슈가 지금의 이슈를 덮어버려 잊혀지거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Outlook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내부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의 반발이 누그러진 것처럼 보여 이 문제가 얼추 해결됐다는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오히려 진짜시련은 이제부터가 아닐까 싶다.



사드 갈등의 진원지는 북한이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불거진 문제다.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없었다면 사드는 필요 없을 테고,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벌일 이유도 없다. 결국 사드 갈등의 본질은 북핵이 남한에 대해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란 점인데 이 본질에 대한 절절한 토론과 논의는 실종된 채 찬반 논란만 증폭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사드 문제가 불거졌던 초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게 만든 건 외교안보팀의 뼈아픈 실책이다. 이는 동네 아줌마들 골프에 박인비 선수를 내보낸 꼴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에 얼마나 어필하는 ‘좋은 상품’인지를 간과했거나 소홀히 한 아마추어적 대응에서 나온 어이없는 실수였다.



박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 등과 매우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왕자루이(王家瑞) 정협 부주석, 왕이(王毅)외교부장, 탕자쉬엔(唐家璇)전 외교부장 등 한반도 정책 수립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고위급 인사들과 쌓아온 인연과 신뢰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커다란 자산이다. 중국의 대중들, 특히 젊은이들이 느끼는 박 대통령에 대한 인기 또한 K팝 스타를 방불케할 정도다. 필자가 상하이 총영사 재직시 이를 실감한 적이 있다. 부임 초기 필자가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부풀려 알려지는 바람에 중국 유수의 대학총장들이 앞 다투어 밥을 샀을 정도다. 총장들은 경쟁적으로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 꼭 우리 대학에서 특강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로비 아닌 로비를 했다. 알고보니 중국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박 대통령이 그 정도로 인기있는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성급하게 전면에 나서기 보다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면 사드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기회가 마련될 수 있었다. 예컨대,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과 사드 대화를 나눴다면 자연스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박 대통령이 중국의 최고위 지도자들과 10여년 간 쌓아온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협상한다면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기틀을 놓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외교안보팀은 박 대통령이 직접 사드배치에 대해 너무 일찍 발언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 결과 인터넷을 통한 비방과 한류 제재등 양국 국민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으로 악화돼버렸다.



대통령이 아니라 외교부가 이번 사태의 전면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했어야 했다. 사드 문제와 관련한 한·중 외무장관회담 뒤 외교부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강한 공개 발언과 달리 비공개 회의에서는 웃으면서 회의를 했다”는 식의 한심한 ‘면피성’ 브리핑을 내놓고 있는 게 외교부의 순준이다. 지난6월 말 황교안 총리의 중국 방문 때도 마찬가지다. 황 총리는 사드에 대한 진솔한 우리의 입장을 중국 쪽에 이야기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중국이 예상외로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한국이 귀띔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돌연 사드배치를 발표한 데 대해 심리적 배신감도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부의 아마추어식 대응과 처신이 사태를 꼬이게 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책임을 탓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국익과 사활이 걸린 중대한 국면이다. 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우선 ‘중국은 빙산과 같은 나라’란 점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수면 위에 드러난 일희일비와 관계없이 중국의 거대한 무게와 흐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수면 아래에 거대한 빙산이 드리워져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외교에 나서야 한다.



그 대안의 하나로 대통령 특사 파견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다.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등을 지낸 원로급 인사를 중국과 러시아에 파견해 우리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드배치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핵과 미사일에 무력하게 노출된 대한민국의 처지에서 불가피한 일이라는 점,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북한핵에 대해 남한이 자구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는 점을 절실하고 절박하게 설득해야 한다.



외교의 성과는 단 시간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대중국 외교는 특히 더 그렇다. 중국에 대해 빙산의 표면 변화만 보고 냄비처럼 대응해선 안 된다. 길게 보고 진중하게 가야 한다. 국민 감정과 여론에 편승해 섣불리 대처했다간 그 순간은 국민에게 청량감을 선사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 저기 급한 불만 끄러다니는 ‘소방차 외교’로는 이 난국을 타파할 수 없다.



 



구상찬동아대 국제대학원교수, 전 상하이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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