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세지는 푸틴의 동방정책] 극동·시베리아 개발해 경제대국 꿈꿔

온라인 중앙일보 2016.08.28 00:01
기사 이미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뉴시스

러시아 극동 지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방정책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집권 3기(2012~2018년) 최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잡은 푸틴 대통령은 극동 지역에 2024년까지 1조 루블(약 17조원)이 넘는 거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자원을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300개에 이르는 경제·물류·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러시아의 변방인 극동을 경제와 문화 발전의 견인차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2024년까지 약 17조원 투자... 에너지 시장 다각화 포석도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잇는 장거리 가스관과 송유관을 건설하는 것은 기본이다. 러시아의 가스와 원유를 극동지역으로 운송하는 ‘에너지 실크로드’를 건설해 시베리아와 북극지역의 자원의 소비처를 확보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자원 개발과 판매를 촉진해 러시아 경제 발전의 활력소로 삼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더해 기존 서유럽에 편향됐던 러시아 에너지 시장을 다각화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시장 다각화로 안정적인 에너지 판매망을 확보하는 일은 러시아의 기본 경제 전략이다. 이는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2014년 러시아는 친러시아와 반러시아로 갈린 우크라이나의 내분과 내전 사태에 개입했다. 그 절정은 그해 3월 러시아계가 많이 거주하는 크림반도와 러시아가 빌려쓰고 있던 전략적인 군항인 세바스토폴의 합병이었다.

이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반발을 불렀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및 세바스토폴 합병을 인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수단·시리아·아프가니스탄·북한 등 7개국뿐이다. 모두 친러시아 국가 일색이다. 심지어 중국도 여기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으로 에너지 판로 막혀

그뿐이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 스크주에서 친러시아 세력이 중앙정부와 벌이는 분리독립 전쟁인 돈바스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옛 소련 시절 공업 지역인 이 지역으로 이주했던 러시아계 주민이 반군의 85%를 이루고 러시아에서 건너간 준군사조직 구성원은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면서 지금은 러시아에서 건너간 민병대가 전체 전력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지 주민의 비율은 15%로 줄었다는 것이 서방 정보기관의 분석이다.

돈바스 전쟁은 2014년 9월5일 휴전협정에 이어 2015년 2월 평화협정이 체결돼 형식적으로는 휴전 중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치열한 교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가 6만4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반군 측도 4만5000명 이상의 병력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반군 중 러시아의 지원민간인은 물론 신분을 감춘 러시아군을 포함한 러시아 병력이 4만~4만2000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사망자가 8000명을 넘어섰으며 민간인 희생자도 2500명에 이른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인 92만5000명이 해외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크라이나 내에서 14만1500명이 고향을 떠나 국내 난민 신세가 됐다는 게 국제구호단체의 추정이다. 돈바스 전쟁은 시리아 내전, 중동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 국가(IS)의 시리아와 이라크 점령, 팔레스타인 사태, 아프리카 남수단의 내전, 아프리아 나아지리아의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라의 테러 등과 함께 21세기 초 인류사의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와중에 2014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을 떠나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를 향해 동우크라이나 상공을 지나던 말레이시아 항공 소속 MH17 여객기가 부크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 이에 따라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섰다. 핵보유국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로선 치욕스러운 외교적 패배다. 하지만 서방 경제제재가 러시아에 주는 압박은 무서울 정도다. 서방은 러시아를 상대로 석유·금융·국방 분야 제재 조치를 취한 후 이를 계속 연장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7월 1일 6개월 연장돼 내년 1월31일까지 제재가 이어진다.

러시아는 1712만4442km2로 세계 1위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시간대가 9개에 이를 정도로 동서로 길다. 인구도 1억4700만 명에 이르는 대국이다. 풍부한 석유와 가스, 광물을 보유한 자원대국이기도 하다. 석유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며 수출량도 사우디에 이어 세계 2위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 석유 생산 거점의 변화다.

과거 볼가, 우랄 지역이 전체 생산량의 70%에 이르렀으나 최근 들어서는 비율이 전체 생산량의 12%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 지역의 석유 생산 절대량이 줄어든 것과 함께 시베리아 유전의 개발이 비율 변화에 한몫했다. 최근 들어서는 서시베리아의 튜멘 유전이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카프카스와 극동 사할린 유전 등의 생산도 활발하다.
 
| 석유 수출량 세계 2위, 천연가스 수출 1위

러시아는 천연가스 강국이다. 생산과 수출 모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천연가스도 서시베리아가 주요 매장지로 전체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현재는 북카프카스, 볼가, 우랄 등에서 주로 생산되지만 갈수록 서시베리아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이 천연가스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서유럽으로 팔려나간다. 푸틴이 ‘에너지 차르’로 불리는 이유다. 푸틴이 정치적인 이유로 파이프라인을 막으면 서유럽이나 그 중간의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나라는 한겨울에 떨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에너지에도 양면이 있다. 파이프라인이나 수출을 막으면 수입국인 서유럽도 고통을 겪지만 수출국인 러시아도 경제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당장 국제가격이 내려도 러시아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마련이다. 러시아는 현재 이 두 가지 디스토피아적인 시나리오를 동시에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유럽이 오히려 러시아와의 교역을 줄이는 등 경제 제재를 하고 있다. 사우디의 무한증산으로 국제유가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러시아도 고통을 받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또 다른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의 또 다른 판로가 절실하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함께 러시아는 목재와 펄프 제지업도 강하다. 시베리아 남부의 광활한 숲이 그 바탕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목재 산업 모두가 최근 서시베리아로 옮아가는 추세다. 러시아로선 동아시아 지역으로 판로를 개척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서유럽은 경제적인 활로를 잃은데다 정치적으로 러시아에 적대적인 상황에서 러시아의 미래 전략을 극동 개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엄청난 자원에 비해 경제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하다.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를 기준으로 1조1327억4000만 달러로 세계 14위다. 1조3212억 달러로 세계 11위로 예상되는 한국보다 더 처졌다. 러시아의 GDP가 한국보다 뒤처진 것은 통계가 나온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는 12위인 스페인(1조2423억6000만 달러)이나 13위인 호주(1조2007억8000만 달러)보다도 뒤로 밀렸다. 2015년 기준 1인당 GDP도 9055달러로 세계 65위에 불과하다. 2만7195달러로 28위인 한국보다 한참 뒤진다.

그나마 구매력 기준(PPP)으로 살펴본 경제사정은 비교적 나은 편이다. PPP로 보면 GDP는 2016년 IMF 전망치를 기준으로 3조6846억 4300만 달러로 세계 6위다. 중국(20조 8533억3100만 달러), 미국(18조5581억2900만 달러), 인도(8조6427억5800만 달러), 일본(4조9011억200만 달러), 독일(3조9346억6400만 달러) 다음이다. 1조8485억1800만 달러로 세계 13위인 한국의 2배에 가깝다. 1인당 GDP도 PPP로 보면 2만5411달러로 세계 48위다. 그러나 이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6172달러로 3만8054달러인 일본에 이어 세계 28위다. 경제 통계를 보면 러시아의 초조감을 읽을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이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0일까지 극동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렸던 제1회 마린스키 극동페스티벌이다.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과 함께 러시아 공연문화의 주축인 상트페테르 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 국토의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톡에 분관을 지으면서 개최한 행사다. 마린스키 극장은 제정러시아시대인 1860년 개관한 극장으로 차르 알렉산데르 2세의 부인인 마리아 알렉산드로프나 황후에서 이름을 땄다.

러시아 혁명 뒤 국립 오페라와 발레 아카데미를 이끌었던 공산주의자 세르게이 키로프의 이름을 따서 키로프 극장으로 불렸다. 그 유명한 키로프 발레단도 여기서 유래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들어서면서 제정 러시아 시절의 이름인 마린스키로 복귀했다.
 
| 푸틴, 극동지역 문화 진흥에도 관심

1988년부터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예술감독으로 마린스키를 이끌고 있다. 게르기예프가 마린스키의 브랜드를 바탕으로 한·중·일·러 4국의 협력을 조화롭게 이끌어낸다면 블라디보스톡은 극동의 예술 중심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린스키 본관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푸틴의 고향이다. 앞으로 마린스키를 바탕으로 하는 러시아의 극동 문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러시아가 극동에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지역에 인구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러시아가 극동개발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중국인이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극동 러시아 도시로 몰려들어와서 정착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푸틴으로선 이 지역에 러시아인이 유입되도록 특단의 대책을 쓸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문화정책이다. 러시아인은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며 문화적 자부심으로도 유명하다. 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극동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의 하나다. 마린스키 극장 블라디보스톡 분관의 개관은 그런 의미에서 큰 주목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도 9월 2~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러는 취임 이후 양자 차원에선 처음 이뤄지는 방문이며 푸틴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답방 성격이다.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3일 포럼 전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선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고 한·러 양국 간 실질협력 증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전자에, 푸틴은 후자에 각각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 취임 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2013년 9월 G20 정상회의(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 방한, 2015년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프랑스 파리)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회담이다.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 정부가 극동지역 투자 유치와 개발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처음 시작한 연례 경제행사다. 한국·일본·중국 및 아세안(ASEAN) 회원국 등 주요국 정부·기업 인사들이 참석한다.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핵심 국정 과제의 하나로 잡은 푸틴의 의지가 실린 비중 있는 행사다. 극동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푸틴이 직접 나서고 있다. 지난해 1회 행사 때는 한국 정부를 대표해 윤상직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푸틴의 강력한 요청으로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다.

푸틴이 얼마나 집요하게 요구했던지 이번 행사에는 중국에선 경제를 담당하는 리커창 총리가, 일본에선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한다. 이들 모두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연다. 푸틴이 블라디보스톡을 동북아 정상이 모두 모여 극동개발을 촉진하는 행사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한국 외교의 주요 과제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강하게 반발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설득에 맞춰져 있다. 러시아는 7월 8일 한미의 사드 배치 공식 발표 직후에도 외교부 성명을 통해 “비극적이고 불가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숙고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미국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의 태평양 거점이 동북아 지역에 새롭게 배치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한·러 정상회담에선 사드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푸틴에게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자위용 조치이며, 사드는 철저히 북한만을 겨냥해 운용되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가에선 사드에 대한 중국의 강경 기류를 당장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화가 쉬운 러시아를 먼저 납득시키는 게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9월 동방경제포럼에 한·중·일 수뇌부 참석

극동개발은 푸틴의 정치적인 명운이 달린 프로젝트다. 동방경제포럼은 그런 푸틴의 염원이 담긴 행사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에는 호기인 셈이다. 시베리아에서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의 소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극동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해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도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중국은 시베리아를 놓고 장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인접 경쟁국이다.

러시아 당국은 이미 중국인의 대량 극동 유입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협력을 빌미로 북방 4개 도서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정치적인 부담이 없는 한국은 러시아의 자원 바이어이자 극동개발 투자자로서 적격이다. 극동개발을 비롯한 양국 간 다양한 현안 및 협력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한·러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극동개발은 북한의 개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럴 경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 통일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중국의 지나친 입김을 견제하면서 동북아를 평화와 협력의 길로 이끄는 주요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이를 어떤 기회로 활용하느냐는 한국 하기에 달렸다. 한국은 러시아의 바이어이자 투자자이고, 러시아는 한국에 기회다. 러시아가 다가오고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기사 이미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