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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깊어진 공공갈등을 어찌할까

온라인 중앙일보 2016.08.28 00:01
경주·영광 방폐장 부지, 상주 사드배치 지역여론 갈등 심화… 설득 대신 보상지원으로 무마하려는 일방적 행정은 주민 반발만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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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우리 사회 갈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펼쳐졌다. 산업통상 자원부는 6월 17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 호텔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공청회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주·영광 등 원전지역에서 올라온 주민들은 단상을 점거하고 “원전 지역주민 의견 무시한 채 추진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정책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주장했다.

급할수록 돌아가자 주범은 일방통행의 ‘졸속 행정’

산업부 측은 경호업체의 엄호 하에 서둘러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끝냈다. 8명의 지정토론자는 아무도 발언하지 못한 상태였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졸속적인 정부안 발표와 허울뿐인 공청회는 무효”라고 외쳤다.

지난 세기에 흔히 보던 공청회의 풍경이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되풀이되는지 한숨만 나온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 직후 나온 정부 발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 공청회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입장’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는 다음 두 문장으로 돼 있었다.
 
◇ ‘16. 6. 17(금)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 공청회는 회의 진행 방해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안건발표 등 소정의 절차 및 의견개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계획대로 완료되었음.

◇ 향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설명회 등을 통해 더욱 소통에 노력하겠음.

당초 산업부 장관은 공고문에서 “국민여론과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공표했었다. 그런데 토론은커녕 계획(안) 발표조차 제대로 안된 공청회를 두고 “계획대로 완료되었음”이라 선언한 것이다. 공고문에서 밝힌 것과는 달리 애초에 공청회를 그렇게 치를 계획이었다는 것인지, 그래서 계획대로 완료됐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지금 정부가 다루고 있는 사안은 수십만 년 이상 완벽하게 격리돼야 할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립에 관한 문제다. 그런 일을 추진하면서 불과 수분 만에 공청회를 마치고 ‘계획대로’ 여론수렴 절차를 ‘완료’했다고 선언하는 게 현정부가 일하는 방식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문제와 에너지-전력정책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구조를 논하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무슨 소용일지 회의감이 든다.
 
| 국가안보 성역 깨뜨린 사드배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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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 일행이 사드배치가 결정된 경북 성주군청을 방문했지만 주민들의 심한 항의에 부딪혔다. 황 총리와 한 장관 일행이 계란세례를 받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돼 있는 사드배치 관련 갈등도 같은 맥락에서 생긴 문제다.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 지대로 남은 우리 현실에서 안보문제는 그동안 불가침의 성역이었다. 국가안보에 관한 한 국민들은 대체로 묵묵히 정부를 따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관행이 일거에 깨져버렸다.

그것도 다름아닌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강한 경북 성주에서다. 대다수 군민은 물론 군수와 여당 의원들까지 앞장서서 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들어 충격을 줬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황급히 성주에 가서 군민들에게 세 번이나 머리 숙이며 사과 발언을 해야 했다.

“군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엊그제 사드배치 발표를 들으셨을 때 여러분들께서 얼마나 예측하지 못한 발표를 듣고 얼마나 놀라셨을지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성주시민 여러분, 죄송하고 거듭 죄송합니다.”

국무총리나 국방부 장관이 사과한 이유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이었다. 그러나 미리 말씀드렸다고 한들 성주군민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듯하다. 정부의 결정에 성주 군민들이 반발하고 갈등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시설을 추진할 때 쟁점이 되는 것은 단계별로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필요성·타당성이다. 그 시설(사업)이 꼭 필요한 것인지, 설치-운영계획은 타당하고 적절하게 돼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 점이 분명해야 다음 단계에서 추진력을 얻게 된다. 추진 측만이 아니라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게 필요성이 충분히 납득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거나 논란에 휘말려 표류하기 일쑤다.

사드 배치에 대해 정부는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의문을 표한다. 오히려 동북아 정세를 더 위태롭게 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찬반이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한 분포다. 성주군청 현관에 걸린 “국민동의 없는 사드배치 결사반대”라는 현수막도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둘째는 안전성이다. 시설 설치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최소한 주민들의 환경권, 건강권, 생존권, 재산권을 크게 헤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운영될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드의 경우 이에 대한 논란과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주 배치가 강행돼 대다수 군민의 반발을 초래하게 됐다. 참외농사를 짓는 이들이 “사드배치 성주 군민 다 죽인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굴삭기로 참외밭 비닐하우스를 부수며 자해성 시위를 벌인 것은 그에 대한 항거인 셈이다.

셋째는 부지 선정의 공정성이다. 위 두 가지 쟁점이 해소된 상태에서 부지를 선정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절차적 정의’다. 입지선정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보일 때 비로소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드의 경우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성주 배치가 결정됐는지 공개되지 않아 의혹과 반발만 키우게 되었다.

넷째, 마지막 단계에서 쟁점이 되는 것이 보상·지원 문제다. 시설 설치·운영에 따른 불가피한 직·간접 피해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보상책을 마련하는 문제다. 앞의 세가지 이슈를 단계적으로 원만히 해소해왔다면 이 문제도 합리적인 선에서 매듭지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부안 방폐장 사태를 비롯해 대부분의 경우 추진 주체 측은 앞 단계의 쟁점들을 하나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판에 몰려 모든 것을 보상책, 즉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다 보니 특정지역에 국고를 과다하게 쏟아붓는 식으로 귀결되곤 했다. 성주의 경우도 정부는 “대대적인 지원” 운운하며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일방적인 DAD(Decide-Announce-Defend) 방식, 행정처리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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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공공갈등은 행정의 일방주의와 졸속으로 인해 빚어진다. 해당지역 주민들은 예외 없이 정부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 경남 밀양의 밀양송전탑,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시위 현장.

사드배치 결정 초기에 성주 군민들은 제2·제3의 쟁점, 즉 당장의 피해문제와 부지 선정의 공정성 문제를 주로 제기했다. 그러다가 사드 거부운동을 펼치면서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자 첫째 쟁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사드가 우리의 안보에 정말 필요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성주군 곳곳에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배치 최적지는 없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우리 동네만은 안돼!”라는 님비 차원을 넘어서 보편적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성주군민들의 그런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는 외면하지 말고 올바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보상·지원책을 앞세우며 무마하려는 것은 효과도 없거니와 오히려 모욕감을 주면서 반발 강도만 키울 뿐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성주군민들의 반발사태에 대해 가장 명쾌한 해석을 내린 이는 여당의 원내대표다. 7월 26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당 지도부와 함께 성주군 성산포대를 방문하고 성주군청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아무리 국가안보가 중요하다 해서 성주 군민의 건강과 성주의 환경에 명백한 피해를 주거나 경제적 부담을 준다면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일방통행식 행정은 국가안보란 명분 아래서도 이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고, 합리화될 수도 없는 시대가 됐음을 선언한 것이다.

행정의 일방주의를 가리키는 행정학계의 전문용어가 DAD다. ‘Decide(결정)-Announce(발표)-Defend(방어)’의 첫 글자를 모은 합성어다. 정부 당국자들이 내부적으로 정책이나 사업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순간, 반발에 부딪혀 방어하기에 급급해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DAD는 원래 ‘아빠’(dad)란 뜻으로 가부장적 스타일을 빗대는 말이다.

아울러 컴퓨터 용어인 DaD(Drag and Drop)에서 따온 의미도 담고 있다. DAD 방식으로 공공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일이 빨리 성사되기는커녕 오히려 질질 끌거나(Drag), 취소하게(Drop) 된다는 것이다.

일방주의 행정은 ‘졸속’ 행정과 동전의 양면이다. 응당한 민주적 절차(due process)를 충실히 밟지 않은 채 조속한 목표 달성만을 위해 일로매진하다 보면 결국 내실 없이 졸속에 그치며 반발과 갈등에 부딪힐 뿐이다.

그 폐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4대강 사업의 결과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져온 심각한 공공갈등은 대부분 이와 같은 행정의 일방주의와 졸속으로 인해 빚어진 것이다.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강정 해군기지 문제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갈등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공공사업에서 주민의 환경권과 절차참여권을 보장하도록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2004년 부안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건립, 2008년 밀양 송전탑 건설, 2012년 강정해군기지 건설 등 공공사업 시행을 둘러싸고 환경 파괴와 주민권리 침해 논란과 갈등이 되풀이되었고, 관련된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여러 차례 접수됐다.

이에 위원회는 제4기 인권증진행동계획(2015-2017)과 2015년 업무계획에서 “국책사업 수행 시 ‘지역주민의 기본권 보장방안 마련’을 과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토 이용과 개발은 앞으로도 불가피하고, 자연과의 공생, 쾌적한 환경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위원회의 진단이다.

이에 위원회는 “이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에게 주민들의 환경정보 접근·이용권과 절차참여권 보장을 강화하고 효과적인 주민의견 수렴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 결정. 2015. 12. 23).

<논어> 자로 편에는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무엇인지 하는 얘기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거보라는 고을의 태수가 되었다. 스승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일을 성급히 이루려고 하면 오히려 마칠 수 없게 되고, 교묘하게 하려 하면 도리어 졸렬하게 된다.[욕속부달(欲速不達) 욕교반졸(欲巧反拙)]”
 
| 현대 행정에 <손자병법>의 우직지계(迂直之計) 본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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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결정에 성주 군민은 당장의 피해문제와 부지 선정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7월 15일 초·중·고생을 포함한 성주군민 3000여 명이 군청 마당에서 사드배치 반대 집회를 벌였다.


‘졸속(拙速)’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임기 내에 자신의 치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정치인들, 미리 짜놓은 일정표에 맞춰 형식적으로 절차 밟으며 교묘하게 실적을 챙기려는 행정가들, 그런 이들이 일하는 방식이 바로 ‘졸속’이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행정가들의 속성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은지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일을 제대로 하되 빨리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손자병법>이 비결을 알려준다. 바로 우직지계(迂直之計)다. “군쟁지난자(軍爭之難者) 이우위직(以迂爲直) 이환위리(以患爲利) 고우기도(故迂其途).”

전쟁이 어렵다는 것은, 돌아감으로써 오히려 질러가고 어지러움에서 도리어 이득을 얻으니, 그러므로 일부러 길을 우회하는 것이다. 전시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평시에 적이 아닌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일에서랴. 공공정책이나 사업은 여론도 분분하고 다중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마련이다. 진정한 소통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를 이루려면 번거롭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두려워 절차만 대충 밟고 직행하려고 하면 벽에 부딪혀 좌초하고 표류하기 십상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더 빨리 가는 길이란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 kanghal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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