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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10달러 지폐서 걸어 나온 해밀턴…뮤지컬로 미국 국민과 화해하다

중앙일보 2016.08.26 00:54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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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부활했다. 생을 마감한 지 212년 만이다. 그의 이름 앞엔 상반된 별명이 붙었다. 미국 ‘금융의 아버지’ vs ‘금권정치의 원조’. 한쪽에선 열렬히 그를 기렸다. 다른 쪽에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이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다. 대중의 눈에 그는 무미건조한 인물이다. 10달러 얼굴로나 대중에게 다가왔다. 18세기 인물인 그가 뮤지컬로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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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10달러 지폐와 동상 속 인물에서 뮤지컬 주인공으로 되살아났다.

뉴욕타임스(NYT)는 “뮤지컬 ‘해밀턴’ 입장권이 올 연말까지 다 팔렸다”며 “내년 2~3월 표 값이 1000달러(약 110만원)에 육박할 뿐 아니라 위조 표마저 나돌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초대박이다. ‘해밀턴’이 흥행에만 성공적인 게 아니다. 미국 연극·뮤지컬 부문 최고상인 토니상 1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감독상 등 11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미합중국은행 만든 초대 재무장관
독립전쟁·건국 활약상에 열광
토니상 11개 수상…공연 매진 행렬
“특권층 양산한 월가의 아버지”
‘금융위기 화근’ 비난 받았지만
불우함 이긴 영웅으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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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은 각각 뉴욕과 워싱턴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위로부터). 아래 사진은 뮤지컬 ‘해밀턴’의 주인공 역을 맡은 린 마누엘 미란다.

블룸버그통신은 “‘해밀턴’이 지난해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약간은 초라하게 시작됐지만 지금은 브로드웨이 최고 아이템”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다. 유튜브를 통해 본 ‘해밀턴’은 색달랐다. 정통 뮤지컬에선 낯선 힙합과 랩이 주류를 이른다. 해밀턴이 서유럽 피를 물려받은 백인인데, ‘해밀턴’의 주인공은 라틴계다. 주연인 린 마누엘 미란다(36)가 푸에르토리코 태생이다.

NYT는 “‘해밀턴’은 역사적이다. 혁명(독립전쟁)을 우려낸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뮤지컬 속에서 전쟁과 헌법 제정 등 무거운 이야기가 쉼 없이 나온다.

이런 뮤지컬에 요즘 미국인들이 열광한다. 톰슨로이터는 “21세기 미국인이 해밀턴과 화해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적어도 미국인 절반 정도는 ‘해밀턴 유산(legacy)’을 부정했다. 그를 ‘금권정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쪽 사람들이다.

그들은 해밀턴이 없었다면 월가도 형성되지 않았고, 현재 ‘메인스트리트(일반 시민) 대 월스트리트(금융권력)’의 대립도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이들 속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들어 있다. 그런데 최근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해밀턴’의 토니상 수상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축하했다. 톰슨로이터 평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역사 속 해밀턴은 미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드물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존 애덤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스코틀랜드계 장사꾼의 혼외 자식”이었다. 그는 미국 출신도 아니다. 미 금융역사가 존 스틸 고든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중미 서인도제도 네비스란 섬이 그의 고향이다.

해밀턴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불우한 그가 뉴욕 상인 니컬러스 크루거의 사환으로 일하며 운명적인 전기를 맞는다. 크루거가 해밀턴의 영민함을 인정해 뉴욕 킹스칼리지(현 컬럼비아대)에서 법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독립전쟁 시기에 조지 워싱턴(초대 대통령)의 부관으로 활약했다. 이때 인연 때문인지 그는 미 건국 초기 정파 가운데 연방파에 속한다.

고든은 그의 책 『월스트리트 제국』에서 “연방파는 주정부의 독립성보다 중앙집권을 선호했다”며 “통화와 재정 권력을 연방정부가 장악해야 한다는 쪽”이라고 했다. 실제 해밀턴은 초대 재무장관으로 주정부가 쥐고 있던 조세권을 확보했다. 연방정부 채권을 발행해 독립전쟁 시기에 주정부가 마구잡이로 찍어낸 온갖 부채 증서를 통합했다. 영국 영란은행(BOE)을 본떠 미합중국은행(BUS)을 세웠다.

고든은 그의 책에서 “해밀턴 프로젝트는 지금 보면 당연한 결정인 듯하지만 당시엔 혁명정신을 거스르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밀턴 덕에 채권할인 업자 등 ‘돈놀이꾼(Money Men)’들이 주머니를 불렸다. 미 월가 형성의 씨앗들이다.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과 그의 부통령 에런 버 등 민주공화파는 “해밀턴이 돈과 권력을 소수에게 몰아줘 특권층을 만들고 있다”고 반발했다. 결국 해밀턴은 1804년 버와의 결투 끝에 목숨을 잃는다. 갈등은 사회적 대결로 이어졌다. 1791년 위스키 제조업자들의 조세거부 투쟁이 벌어졌다(위스키 반란).

이렇게 시작한 갈등이 21세기 현재까지 미국 사회 갈등의 전선이다. 그의 유산을 중시하는 쪽으로는 19세기 초엔 미합중국은행 지지, 19세기 후반엔 금본위제 옹호, 20세기 초엔 뉴딜 반대, 후반엔 금융규제 완화, 인플레이션 억제 주도 세력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반대 진영(민주공화파)은 중앙은행 반대, 금·은 이중본위제 지지, 뉴딜 옹호, 그리고 현재 금융규제 강화, 성장·고용(저금리 정책) 중시 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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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유산의 길고 긴 그림자 속에 동일한 성(family name)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네 명의 클린턴(Clinton)이다. 이들은 해밀턴의 유산이 부정되거나 긍정되는 순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클린턴은 바로 힐러리다. 올해 그는 해밀턴의 중요한 유산 한 가지를 부정(negation)하려고 한다. 거대 금융그룹을 다시 분할할 참이다. 대공황 응징 차원에서 이뤄진 1933년 시중-투자 은행 분리(글래스-스티걸법) 이후 83년 만이다. 그리고 금융규제와 금융과세를 강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는 해밀턴이 중시한 금융 자유와는 반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딜 시대의 부활이 예상된다”고 평할 만큼 역사적인 시도다.

힐러리 계획은 또 다른 클린턴의 정책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바로 남편 빌 클린턴의 금융규제 완화다. 빌은 대통령 재임 시절(1993~2001년)인 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제정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월가의 족쇄였던 글래스-스티걸 체제의 종언이었다. 씨티그룹 이후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거대 금융그룹이 탄생했다.

이들은 투자은행·보험회사·신용카드 등 모든 금융을 다할 수 있었다. 이를 지지하는 쪽엔 해밀턴이 꿈꾼 ‘금융 효율의 결정체’로, 반대하는 쪽엔 ‘독점 금융(머니 트러스트)의 괴물’로 비쳤다.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몇 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거대 금융그룹이 2008년 금융위기의 화근으로 비판받고 있다”며 “힐러리가 오바마 이후 대선에 나선다면 남편의 정책을 폐지해야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의 예상이 현실로 다가오는 셈이다.

또 다른 클린턴은 빌-힐러리와는 달리 200여 년 전 인물이다. 드위트 클린턴(1769~1828) 전 의원이다. 그는 해밀턴과 한 시대를 교차했다. 그의 별명은 ‘이리운하의 아버지’다. 금융역사가 고든은 “그가 오대호-뉴욕을 연결하는 이리운하 건설을 주도했다”며 “그 덕분에 뉴욕 상거래가 활발해지고 이리운하 채권이 대량으로 거래돼 뉴욕이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를 누르고 돈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2014년 “해밀턴의 유산 가운데 최고는 Fed”라고 말했다. 해밀턴이 재무장관 시절 그토록 원했던 중앙은행이 그의 사후 100여 년이 흐른 1913년에야 결실을 거뒀다. 길고 긴 우여곡절을 거친 뒤였다. 이런 부침 속에서 또 한 명의 클린턴이 등장한다. 바로 조지 클린턴(1739~1812) 전 부통령이다. 그는 해밀턴이 세운 미국 최초 중앙은행인 BUS를 1811년 폐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든은 “그의 선택으로 해밀턴의 중앙은행 유산은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5년 뒤 다시 BUS가 설립됐지만 20년 만에 다시 폐지됐다. 이후 미국은 77년 동안 금융의 나침반(중앙은행)이 없이 지내야 했다. 위기 때마다 극심한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드위트 클린턴과 조지 클린턴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빌 클린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그가 양아버지의 성(클린턴)을 선택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뮤지컬 ‘해밀턴’이 토니상을 수상할 때 “우리의 선조 해밀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우리’와는 다르게 금융 세계에선 여전히 해밀턴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씨실과 날실처럼 여전히 교차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힐러리를 앞세운 부정의 기운이 좀 더 세다.
 
알렉산더 해밀턴

1757(또는 1755년) 서인도제도 네비스 출생, 뉴욕 킹스칼리지 진학(현 컬럼비아대학)

1776년 미 독립전쟁 참여, 조지 워싱턴의 부관으로 발탁

1788~1789년 연합의회 뉴욕대표

1789~1795년 초대 재무장관, 조세 개혁, 국채 발행

1791년 1차 미합중국은행(BUS) 출범

1792년 공식 US달러 주조

1804년 결투로 사망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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