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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탈북 태영호 공사 ‘비운의 망명객’ 만들지 말아야

중앙일보 2016.08.26 00:16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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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19년 전 한국행 황장엽 전 비서, 정권교체로 냉대받다 쓸쓸히 숨져
‘엘리트 탈북’ 흥분하기보다 정략적 이용 차단할 국민적 합의 필요

통일전문기자

“형님, 우리 그것만은 이 정부 아래선 털어놓지 맙시다.”

김대중(DJ) 정부 집권 첫해인 1998년 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게 측근인 김덕홍(전 여광무역 총사장)씨가 이런 말을 불쑥 꺼냈다. 두 사람이 머물던 안가(安家)를 밀착 경호하던 국가정보원은 이 은밀한 대화내용을 포착했다. 하지만 퍼즐을 풀어내지는 못했다. 남북 정상회담 등을 염두에 두고 금강산 관광 출항 등 대북 화해·협력 노선에 박차를 가하던 DJ 정부에 대해 황 전 비서 일행은 의구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1년여 전인 1997년 2월 탈북·망명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던 그의 한국행에 김영삼(YS) 정부는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북한 핵개발에 실망한 YS는 “핵무기를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대북 강경노선으로 치닫던 중이었다. 황장엽 망명은 뒷심을 한껏 실어줬다. 망명 당일 쓴 성명서에서 황 전 비서는 “내가 바라는 건 북조선 인민을 하루 빨리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며 한국에서의 활동에 기대를 나타냈다. YS는 한국에 오면 자유로운 북한 체제 비판 활동을 보장하고 저술·강연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97년 말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는 황장엽을 고난의 길로 이끌었다. 김정일 체제 비판을 위한 활동은 발과 입이 봉해졌다. 미국·일본 등지에서 의회 증언과 강연 요청이 쇄도했지만 DJ 정부는 여권 발급과 경호를 핑계로 미적거렸다. 황 전 비서를 챙기던 국가정보기관도 태도를 돌변했다. 남북 정상회담 5개월 뒤인 2000년 11월 국정원은 황 전 비서가 짠 ‘북한 민주화 구상’을 일축했다. “편협한 북한 붕괴론적 시각에서 냉전적 사고를 확산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공개 입장까지 낸 것이다. 담당 3차장은 기자들에게 “솔직히 황장엽이 부담스럽다”며 북한 비판 행보에 불만을 나타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5개월 만인 2003년 7월 황 전 비서 일행을 국정원 안가에서 내쫓았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존칭을 뺀 채 ‘황장엽’으로 폄하하는 표현이 담겨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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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요 며칠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 일가족의 탈북·망명 사태로 떠들썩했다. 고위급 외교관의 한국행을 두고 북한 붕괴론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 체제의 “심각한 균열”까지 언급했다. ‘제2의 황장엽’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태 공사의 탈북이 현 북한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낸 건 틀림없다. 권력의 주축이라 할 이른바 ‘빨치산’ 혈통들과 엘리트 그룹이 앞장서 등을 돌리는 건 불길한 조짐이다. 이걸 애써 외면하며 ‘북한 체제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도 있다. 무작정 평양 정권의 붕괴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분명한 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권력 핵심에서 울려나온 경고음을 무시한다면 체제붕괴와 파멸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김정은의 노선을 볼 때 북한 엘리트 계층의 추가 탈북·망명이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가 태영호 공사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게 중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서방 정보 기관과의 접촉을 통해 제3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수재급으로 알려진 두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해외 국가를 선호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결국 한국을 택했다. 탈북을 고심하는 북한 핵심 엘리트들이 태 공사 가족의 한국정착 성공 여부를 주시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국내 정치권과 여론의 분열과 대립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태영호 공사의 탈북·망명을 두고도 정략적 셈법을 앞세우는 조짐이 벌써 나타난다.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 보고를 한자리에서 듣고도 여야의 언론 브리핑과 해석이 다르다. 걱정스러운 건 1년4개월 뒤로 다가온 19대 대선이다. 공교롭게도 각각 10년 동안의 DJ·노무현 정부 대북 유화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강경노선의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황장엽 전 비서는 2010년 10월 자신의 집 욕조에서 쓸쓸히 숨졌다. ‘역사적 망명’으로 환대받던 건 잠시였다. 대한민국 정부의 약속위반에 그는 불청객으로 전락했다. 황 전 비서의 서울행에 공을 세웠다며 줄줄이 훈장을 탔던 국가 정보기관의 간부들은 바뀐 정권 입맛에 맞추려 그를 길바닥에 내몰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황 전 비서는 북한 민주화를 위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증언한 ‘북핵 보유’는 현실로 다가왔다. 터무니없는 얘기로 치부되던 ‘주민 200만~300만 아사(餓死)’는 북한이 일부 시인하며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태영호 공사의 한국행이 황장엽 탈북·망명의 데자뷔(Deja-vu)가 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정권 교체에 따라 이들을 쥐락펴락하지 않도록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앞장서 합의와 공감대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비운의 망명객’은 황장엽 선생 하나로 족하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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