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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⑬ 역원근법으로 표현한 대자연의 숭고미

중앙일보 2016.08.23 00:01
카메라는 눈이 하나입니다. 어느 한 지점에서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풍경을 기록합니다. 한 장의 사진에는 하나의 시점만 존재합니다. 이를 ‘일점투시법’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눈과 비슷한 원근감을 보여주는 렌즈를 표준렌즈라고 합니다. 초점거리 50mm의 렌즈입니다. 이보다 초점거리가 짧은 것을 광각렌즈, 긴 것을 망원렌즈라고 합니다. 광각렌즈는 원근감이 아주 뛰어납니다. 20mm정도의 광각렌즈로 풍경을 찍으면 짧은 거리에도 소실점이 드러납니다.

역원근법으로 표현한 대자연의 숭고미
멀리 있는 물체를 더욱 크게 그려 … 카메라 망원렌즈와 화가의 시점 비슷

반대로 망원렌즈는 원근감이 줄어듭니다.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대상을 찍을 경우 그 간격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줄어듭니다. 원근감의 차이는 사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사진에서 렌즈의 선택은 단순히 넓게 찍을 것인가, 아니면 멀리 있는 것을 당겨서 크게 찍을 것인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근감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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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의 아침, 2013

서양보다 천년 이상 앞선 종병의 원근법

원근법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원근법이 회화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입니다. 피렌체의 건축가 브루넬리스키는 물체는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마침내는 점이 되어 소실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소실점’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를 처음 그림에 도입한 사람은 그의 친구 마사치오(1401~1428)의 작품 ‘성삼위일체’입니다.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공기원근법’을 제시했습니다. 물체가 멀어짐에 따라 푸른 빛깔이 나고 채도가 감소하며, 윤곽이 희미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서양화는 이때부터 피카소가 등장할 때까지 일점투시법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원근법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화가 종병(宗炳, 375~443)은 그의 저서 <화산수서(畵山水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곤륜산은 크고 눈동자는 작기 때문에 눈을 가까이 들이대면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몇 리를 멀리하면 한 치의 눈동자로도 이를 다 두를 수 있으니 진실로 떨어지는 것이 조금씩 멀어질수록 그 보는 것이 더욱 작아진다. 지금 비단을 펼치고 멀리 비추니 곤륜산의 모습을 사방 한 치 안에 다 두를 수 있어 세 치의 세로 획은 천 길의 높이에 해당하고 가로로 쓴 몇 척의 먹은 백 리의 아득함을 이룬다.’

종병의 원근법은 서양보다 천년 이상 앞선 것입니다. 또 당나라의 시인이자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왕유(699?~759)는 <산수론>에서 ‘먼산은 모름지기 낮게 배치해야 하고 가까운 나무는 눈에 잘 띄는 것이 좋다…(중략)…산이 한 길이면 나무는 한자요, 말이 한 치면 사람은 한 푼이다. 멀리 있는 사람은 눈이 없고, 멀리 있는 나무는 가지가 없다. 멀리 있는 산은 돌이 없고 은은하기가 미인의 눈썹같다. 멀리 있는 물은 물결이 없고 높기가 구름과 같다’는 화론을 펼칩니다. 왕유는 원근법은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공기원근법을 아우르는 개념을 서양보다 수백 년 앞서 제시하고 그림에 반영했습니다. 먹의 농담을 조절해 먼산과 가까운 산을 표현한 것이 대표적인 공기원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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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캐는 사람들, 2012

그럼에도 동양화, 특히 산수화는 일점투시법보다는 산점투시, 즉 다시점을 이용해 그렸습니다. 원근법은 부분적으로만 적용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시점입니다. 송나라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곽희는 그의 화론인 <임천고치>에서 산점투시를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으로 나눠 ‘삼원법’을 창안했습니다. 고원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시점입니다. 심원은 산 앞에서 산 뒤를 넘겨다보는 것이며, 평원은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시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삼원법은 산수풍경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제시해 줍니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아는 대로 그리고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원근법은 자연을 보는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서양화는 전통적으로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사실성을 중시합니다. 똑같이 그리기 위해 그림에 과학의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동양화는 자연에 담긴 기운과 정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합니다.

철학의 차이가 시점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시점의 차이는 형식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서양화는 보통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대개 3대2 정도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화각입니다. 그러나 동양화는 그 비율이 2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보듯이 그림을 길게 두루마리 형태로 그려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냅니다. ‘산수를 그리는 것이 성의 구역을 정하고 천하의 지역을 구획하며 산이나 구릉을 표시하고 하천의 흐름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왕미의 말처럼 그림이 반드시 현실과 똑같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수화에는 오히려 역원근법의 표현이 많습니다. 카메라 렌즈에 비유하면 화가의 시점이 망원렌즈와 비슷합니다. 원근감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배경으로 나오는 산이나 바위, 나무의 크기를 유독 크게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점처럼 작게 표현합니다. 대자연의 숭고미를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역원근법은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에도 유리합니다. 멀리 있는 것을 가깝게 보이게 해서 아름다운 산수에 노닐고,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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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초옥도

19세기 조선의 천재화가 고람 전기의 <매화초옥도>는 역원근법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사람과 집, 바위와 산, 매화나무의 비례가 원근법에 맞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산과 나무가 실제보다 훨씬 커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림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림 속 마을 풍경이 꿈을 꾸는 듯 환상적입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매화가 애틋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시인 정지원은 한 일간지 기고 글에서 매화초옥도의 역원근법을 ‘그리움의 거리’라고 말합니다.

역원근법은 정서적·감정적 표현에 유리

기계적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은 원근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렌즈의 선택을 달리하거나 다중촬영 등의 기법을 이용하면 원근감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망원렌즈를 잘 이용하면 원근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산수화에서 보는 역원근법의 분위기를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산을 같이 찍을 경우 사람이 가깝고, 산이 멀면 사람이 너무 크게 나옵니다. 멀리 뒤로 떨어져서 망원렌즈를 이용하면 사람과 산과의 거리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사람은 더 작아 지고, 산은 더 크게 나옵니다. 자연의 숭고미를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테크닉입니다.

또 일정하게 겹쳐지는 산의 능선을 200mm 이상의 장초점렌즈(망원렌즈)로 찍으면 앞뒤 산의 원근감이 줄어듭니다. 뒤에 낮게 깔려 있는 산의 높이가 부각되며 능선에 강한 힘이 느껴집니다. 이때 안개나 운해가 드리워져 있으면 산수화에서 보는 먹의 농담 효과가 두드러집니다. <이코노미스트>

글·사진=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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