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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제전 구경꾼서 당당한 주역으로, 첫 금메달 딴 나라 잇따라

중앙선데이 2016.08.2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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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스포츠의 룰과 복장과 경기시간을 바꾼다. 대신에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 거액을 낸다. 미국의 NBC가 리우 올림픽 독점 중계권료로 IOC에 낸 돈이 1조4000억원이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는 육상·수영·체조를 선호했다. 전통 깊은 이 종목들에는 미학적인 공통점이 있다. 경기 내내 관전자의 눈이 경기자의 신체를 좇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수의 신체적 탁월성에 감탄하고 미묘한 표정과 동작의 변화를 즐긴다. 반면 구기 종목을 보는 관전자는 결정적인 순간 신체에서 공으로 시선이 옮겨가게 돼 있다.



NBC는 리우 올림픽 시청률이 2012 런던 대회의 절반으로 뚝 떨어져 울상이다. 국내 지상파 3사도 저조한 시청률과 광고 수주 부진으로 고민이 크다.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 디지털과 SNS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미디어 공룡’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유난히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나라가 많이 나왔다. 펠프스를 누르고 접영 100m에서 우승한 싱가포르의 조셉 스쿨링을 비롯해 베트남(사격), 피지(럭비), 코소보(유도), 푸에르토리코(테니스) 등이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이는 전 세계에 스포츠 보급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작은 나라들도 스포츠가 갖는 힘을 자각하고 투자한 결과다. 이들은 지구촌 스포츠 제전의 구경꾼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올라서는 기쁨을 누렸다. 비유하자면 장터에서 공연장 주위를 기웃거리며 뻥튀기나 사먹던 사람이 어느 순간 무대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장기자랑도 하게 됐다는 얘기다.



또 이번 대회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 선수, 뚱뚱한 체조 선수, 동성애자임을 밝힌 커플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편견과 차별을 딛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어느 정도 용인은 됐지만 공인받지 못했던 주체나 행위, 또는 관계들이 올림픽이라는 광장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뛰쳐나왔다. 이는 올림픽이 ‘엘리트 스포츠의 경연장’을 넘어 ‘지구마을의 공론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우에서는 승리지상주의를 타파하는 장면도 많았다. 가장 감동적인 건 육상 여자 5000m에서 쓰러진 선수를 기다렸다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한 미국과 뉴질랜드 선수였다. 태권도 종주국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 이대훈이 8강에서 탈락한 뒤 자신을 꺾은 선수의 손을 들어올려준 장면도 훈훈했다.



이 같은 액션은 올림픽이 아니면 어디서도 보기 어렵다. 인간의 가장 정직한 면모인 신체의 탁월성을 겨루는 자리에서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인 배려와 존중이 발휘되는 것이다. 언어, 정치체제, 빈부의 차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몸이고 땀이다.



그렇다면 리우 올림픽이 초기 올림픽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는가. ‘참가에 의의를 두는’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할 인류의 제전을 되찾게 되었나. 그렇지 않다. ‘도핑 제국’ 러시아는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른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편파 판정은 스포츠 약소국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중국계 탁구 선수, 아프리카계 육상 선수들이 돈 많은 나라의 국기를 달고 메달을 향해 뛰고 있다. 올림픽은 순수성을 되찾고 있다기보다는 외연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코드로 분화하고 연성화(軟性化)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올림픽에는 세속과 이상이 공존한다. 올림픽은 1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국제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악용된 사례도 수없이 많다. IOC는 지구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호주는 금메달 1개당 평균 60억원을 투자한다. 각 국가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선수를 키워낸다.



올림픽이 순수하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 별로 깨끗하지는 않지만 크고 튼튼한 올림픽이라는 그릇이 있다. 그 안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2년 뒤 평창에서 겨울올림픽 손님을 맞게 될 우리에게 떨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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