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석3조 유연근무제] 내가 로그인한 곳이 바로 내 일터

온라인 중앙일보 2016.08.21 00:01
폭염 속에 더욱 힘든 것 중 하나가 남들과 똑같은 출퇴근이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다 보면 어느 새 진이 빠진다. 조금만 더 여유로운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다면… 소박하지만 나름 중요한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유연근무제다. 개인의 사정에 맞게, 편의를 감안해 근무 시간과 장소를 조정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가정 양립 가 능, 직원 만족도 향상, 생산성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실적 악화, 소속감 결여 등의 우려는 기우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면 지원을 확대한다고 8월 5일 밝혔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국내외 기업이 어떻게 일하기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지 살펴봤다.
기사 이미지
19세기 말 과학적 관리법이라고 불리는 테일러리즘이 등장했다. 과학을 생산에 적용해 노동을 과학적으로 분석·관리하자는 주장이다. 자동차 제조사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적용되면서 이론으로 정립되며 포디즘으로 발전했다. 포디즘은 산업을 고도화시켰지만 노동자의 인간성을 무시해 자본주의적 착취제도를 옹호하는 대표적 이론이란 비판을 받는다.

근로자도 기업도 환영 … 실적 악화, 소속감 결여 우려는 기우

그러나 테일러리즘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목표나 공장의 업무환경을 개선해 다른 회사보다 나은 노동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의도 역시 담겨 있었다. 포드는 포디즘으로 작업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일 수 있었다.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꿨고, 일당을 2.5달러에서 5달러로 인상할 여력도 얻었다. 당시엔 서로 포드에서 일하기 위해 군중이 몰려들 정도로 지원자가 넘쳤다.

19세기나 21세기나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뛰어난 인력을 구하려면 더 좋은 노동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지만 노동가능인구가 줄어 일할 사람이 부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더 나은 인재를 구하려면 더 좋은 근무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인재를 구하지 못한 기업의 역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1세기 들어 노동력의 주력이 근육이나 손재주에서 전문 지식이나 창조적 아이디어로 바뀌고 있다. 임금 못지 않게 노동환경이 직장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생산공장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회사에서 일률적으로 근무하던 시대는 지났다.

현대 사회에선 시간과 장소를 노동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좋은 노동환경으로 여겨진다. 지식노동의 업무효율은 자율적인 근무에서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연근무제는 이제 기업의 경쟁력 중 하나로 떠올랐다.

구직난의 시대라지만 현재 기업이 걱정하는 건 미래 생산가능인구의 절벽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 전체 인구의 73%가량인 생산가능인구가 2040년엔 56%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일해 나머지를 먹여 살려야 한단 얘기다.

한국에선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가임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 수가 1.21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저출산의 요인 중 하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자녀를 키우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출산을 꺼리거나 일을 그만두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30대 기혼여성 10명 중 4명이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다.

| 임금 못지 않게 노동환경도 일자리 선택의 주요 요인

이에 더해 긴 근로시간 등 열악한 노동환경도 문제다. 한국의 전체 취업자의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2124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번째로 길다. 이 때문에 노동시간을 조정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 한국 산업계 주요 고민이다. 그 핵심 대안 중 하나로 유연근무제가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각 기업에 유연근무제를 권하고 상시적으로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2010년부턴 일부 공공기관부터 유연근무제를 시범 도입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한국의 전체 공공기관에서 유연근무제를 선택한 인원은 총 4만2455명이다. 전년 동기에 비해 25% 늘었다.

공무원도 지난해 9월부터 전 부서를 대상으로 시간선택형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주당 40시간인 전체 근무시간 내에서 하루 일과 중 4~12시간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도 유연근무제 참여 인원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과 노동자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실태’를 조사한 결과,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의 92.8%가 제도시행 결과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자 만족도가 높다. ‘일과 가정 양립에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이 96.7%에 달했다. 96%는 ‘직무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기업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92%가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답했고, 92%가 ‘이직률이 감소했다’, 87.3%는 ‘우수인재 확보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의 생산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부터 재택·원격근무를 도입한 하나투어의 경우, 고용이 늘고 숙련인력의 퇴직이 감소했다. 2011년과 비교해 지난해 하나투어의 이직률은 9.3%에서 5.8%로 확 줄었다.

직원 수는 1738명에서 2521명으로 늘었고 이 가운데 여성 비율은 50.9%에서 55.5%로 확대됐다. 여성층에서 유연근무제를 더 환영하고 있단 방증이다. 하나투어 매출도 2264억원에서 3600억원으로 늘었다. 한국IBM은 유연근무제로 사무실 관리 비용을 연간 22억원 절감했다.
 
| 한국 시차출퇴근 12.7% … 미국 81%, 유럽은 66%
 
기사 이미지

그럼에도 아직 한국 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은 더딘 편이다. 도입률을 보면 유럽이나 미국 등에 비해 낮다. 한국 유연근무 도입률은 3~12.7% 수준이다. 시간제의 경우 한국이 11.3%인데 비해 유럽은 69%에 달하고 미국이나 네덜란드도 30%대에 이른다.

시차출퇴근제는 한국은 12.7%인데 미국은 81%, 유럽은 66%에 달한다. 일본의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률이 52.8%(한국 9.2%)나 된다. 재택근무 도입률로는 한국이 3%에 불과하다. 미국은 38%, 네덜란드는 29.6%, 일본도 11.5%수준이다. 고용노동부의 2015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비율이 높았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4%가 재택근무를 7%가 스마트워크를 도입한 데 비해, 10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의 재택근무는 2.3%, 스마트워크는 3.8% 수준이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우선 직무 사정상 유연근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40.2%는 ‘직무가 유연근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정부 각 부처가 조사한 스마트워크 이용현황 실태조사에서는 기업의 24.7%가 ‘대면 중심의 직장문화여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인건비 부담도 있다. 8시간을 한 사람이 근무하는 것에 비해 4시간을 두 사람이 근무하면 인건비가 더 들게 마련이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면 지원을 확대한다고 8월 5일 밝혔다. 올해 ‘일·가정 양립 환경개선 지원’사업을 확대해 지원방식과 요건을 개선하고 원격·재택근무 도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총 노동자의 5% 이내에 1인당 월 최대 30만원을 1년 간 지원한다. 재택·원격근무제를 도입하면 총 노동자의 10% 이내에 1인당 월 최대 20만원을 지원한다. 정부는 올해까지 유연근무 기업을 300개로 확대하고 재택·원격근무 기업을 30개로 늘릴 계획이다.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기사 이미지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