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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이병극 캐리마 대표] 기존 성공 경험은 잊고 無에서 시작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2016.08.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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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극 캐리마 대표.

돈만 조금 벌면 새 기술 개발한다고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수 차례 파산 위기에 몰렸고 죽으려고 한강다리에도 몇 번이나 올랐어요. 아내는 ‘이 정도면 병’이라며 저를 데리고 정신병원까지 데려갔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미친 사람처럼 매 순간 모든 것을 쏟아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3차원(3D) 프린터 제조 업체 캐리마 이병극(62) 대표의 말이다. 캐리마는 높은 기술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C-CAT이라 불리는 기술을 적용한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과거처럼 재료를 한 층씩 쌓아 올리는 방법이 아니라, 연속된 층에 레이저를 쏴서 하나의 모형을 만드는 방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3D 프린터 생산 ... 극한의 위기만 3번 넘겨


기존 방식보다 20배 이상 빠르게 모형을 출력할 수 있고, 결과물의 표면이 유리처럼 매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1시간에 60cm를 프린트하는 데 세계에서도 이 정도 속도를 내는 3D 프린터는 없다.
 파산 위기에 자살 결심까지
 
이 대표는 인생에서 3번의 큰 고비를 겪었다. 그 때마다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대표는 “영원한 기술은 없다. 매번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금방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전기전자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광학기술을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1983년 사진 현상기를 만드는 회사 ‘CK산업’을 설립했다.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은 저렴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한 것이다. 많은 사진관이 문을 닫았고, CK산업의 제품을 찾는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그 무렵 그의 첫 번째 혁신이 시작됐다. 회사를 살릴 고민을하던 그는 디지털 광학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5년이 넘는 개발기간 끝에 기존 사진 인화기에 장착만 하면 디지털 데이터를 받아서 인화를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정밀기술 진흥대회에 금상을 탈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난데다, 원래 있던 인화기를 활용할 수 있으니 당연히 시장에서는 호응을 얻었다. 15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제품은 날개가 돋친 듯 팔렸다.

첫 번째 혁신의 결과물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중국산 저가제품이 시장을 장악해서다.

“2000년 전후로 중국에서 열리는 기술박람회에 몇 번 참석해 기술력을 자랑했다.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며 특허를 신청했는데, 중국 특허청이 계속 트집을 잡아 1년이 넘는 세월을 잡아 먹었다. 우리 제품이 제대로 중국땅을 밟기도 전에 이미 중국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이 500만원 정도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결단의 순간이 왔다. 자신이 가진 디지털 광학기술을 3D로 구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 회사명을 ‘캐리마’로 바꾸고 당시 이름도 생소한 ‘3D 프린터’ 개발에 들어갔다.

“저가 중국 제품에 한번 당하고 나니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기술을 개발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자신도 있었어요. 과거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올 때 한번 살아남은 경험이 있었고 모아둔 돈도 제법 많았거든요. 개발 초기만해도 이전 제품이 수익을 내고 있어서 여유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았으니 가끔 골프도 치면서 천천히 기술을 개발하면 되겠다 생각했지요.”

자신도 모르게 자리잡은 자만은 그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3D 프린터는 설렁설렁해서 개발되는 만만한 제품이 아니었다. 3~4년 정도 개발해 3D 프린터까지는 그럭저럭 개발했다. 문제는 프린터의 잉크에 해당하는 원료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개발에 몰두했다. 골프장 회원권을 파는 것을 시작으로 공장 2개와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팔고도 30억원이 넘는 빚이 생겼다. 1년에 단 하루 쉬는 날도 없이 연구에 매달렸다. 추운 연구실에서 종일 서 있다가 발에 동상까지 걸렸다.

2009년 드디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디지털 광학기술을 적용한 3D 프린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2011년 산업용 3D프린터 ‘Master Plus’를 출시했다. 100㎛(1㎛는 100만분의 1m)의 얇은 막을 쌓아 정교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이 대표가 직접 개발한 5가지 형태의 원료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료에 따라 고무처럼 말랑한 모형, 딱딱한 모형, 반투명한 모형 등을 만들 수 있다. Mater Plus가 출시되면서 2012년 7억원, 2013년 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즈음부터 언론에서 ‘캐리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침 3D 프린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정부의 육성 산업에 포함이 되면서 ‘캐리마’가 많은 조명을 받았다. ‘세계에서도 인정받는기술 기업’이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이 대표의 눈에는 부족하게만 보였다.

“다른 회사에 견주면 자부심을 가질 만한 기술이긴한데 ‘1시간에 2cm씩 모형을 만드는 프린터로 언론에서 말하는 제조업 혁신이 일어날까’하는 의구심이 생겼어요. 느려도 너무 느리잖아요.”

그날 이후 이 대표의 머릿속에는 ‘속도’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고민을 시작했다. 다시 한번 연구에 올인한 끝에, C-CAT 기술을 적용한 ‘IM-J’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캐리마가 기존에 가진 기술을 개량한 것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기존처럼 원료를 쌓지 않고, 액체 형태로 된 원료를 레이저로 일부분 굳혀서 형태를 만들어 빼내는 방식이다.
 기존 제품보다 속도 20배 높여
 
기자가 직접 3D 프린팅 장면을 지켜봤다. 9.7cm 높이의 에펠탑 모형이 정확히 11분 43초 만에 완성됐다. 최근 수 년 간 3D프린팅을 하는 작업을 수 차례 취재했는데 눈앞에서 결과물이 완성되는 전 과정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빨랐다.

“이전에 개발한 기술을 개량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원료를 더 빨리 쌓고, 레이저를 더 빨리 쏴서 시간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한 시간에 2cm 쌓던 걸 4cm 쌓으면 업계에서는 놀라운 발전일수 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내리는 평가는 여전히 ‘느리다’일 겁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무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 그것이 혁신의 출발이 아닐까요?”

올 초 개발한 C-CAT 기술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연세대병원과 함께 3D 프린터로 ‘인공 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일본 미쓰이 그룹과도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인데 개발비 8억원을 모두 일본 측이 대기로 했어요.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기업의 협업 및 투자 제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실제 인터뷰를 진행한 8월 9일에도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일본 모 기업에서 온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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