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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폭염이 드러낸 한국 정부의 민낯

중앙일보 2016.08.20 00:01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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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뉴욕 특파원

최근 미국 동북부도 기록적인 폭염을 겪었다.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뉴욕시의 온도가 섭씨 34도까지 올라간 12일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시민들에게 말했다. “폭염 비상입니다. 에어컨을 사용하세요.”

더블라지오 시장은 대신 전력 낭비에 따른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에어컨 온도를 화씨 78도(섭씨 25.6도)에 맞출 것을 제안했다.

폭염은 미국과 한국에 똑같이 닥쳤는데 폭염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이렇게 달랐다.

에어컨을 쓰라는 뉴욕시장의 권고는 한국에선 듣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의 말에선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키려는 마음이 읽힌다.

뉴욕시장이 시민들에게 에어컨을 돌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전기요금이 저렴해서일지 모른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보다 전기요금이 훨씬 싸다. 

하지만 전기요금 차이보다 더 큰 것은 현대 생활의 필수 공공재인 전기에 대한 인식의 격차다. 폭염 속에선 에어컨을 트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자면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비싸게 책정해놓고 에어컨 사용을 줄이라는 것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전력은 가계와 기업에 전기를 독점 공급하는 공기업이다. 그런 공기업이 수조원의 독점적 이익을 올리는 게 자랑이 돼선 곤란하다. 한전은 상반기에만 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그 이익의 바탕이 되는 전기요금은 국민이 낸다. 한전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정부, 산업은행 등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준다. 이런 배당이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한전의 전기요금은 정부(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다. 산업부는 복지부동의 진수를 보여줬다. 세계에서 가장 심한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 틀기가 두렵다는 국민들의 호소가 빗발쳐도 산업부는 꿈쩍도 않았다. 온 언론이 현 요금체계의 부당성을 지적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랬던 관료들이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대통령이 언급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조정책을 내놓는 것을 국민들은 지켜봤다. 물론 그 대책도 생색에 불과하지만.

관료사회엔 책임질 일은 피하고 봐야 한다는 ‘변양호 신드롬’이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살인적인 더위 속에 에어컨을 틀어야겠으니 전기료를 낮춰달라는 국민들 요구를 묵살하는 것은 변양호 신드롬과 무관하다. 그저 정부의 실패이자 관료의 직무유기일 뿐이다. 그들은 왜 폭염 속에 에어컨을 틀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전엔 불볕 더위로 고통 받는 국민들이 에어컨으로 열기를 식힐 수 있도록 전기요금을 낮춰야겠다는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인사권을 쥔 대통령만 무섭지, 국민들은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폭염은 적어도 한 가지는 순기능을 했다. 한국의 관료 시스템과 공기업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개혁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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