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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태권소년의 꿈 꺾은 코치들…태권도 승부조작

중앙일보 2016.08.19 16:05

 

14대 7로 이기던 학생이 기권패 … 코치가 ‘흰 수건’ 던져
알고보니 코치들끼리 승부 조작 … 선수 아버지 “경찰에 수사 의뢰”

지난달 16일 오후 인천광역시장기 태권도 대회 고등부 경기가 열린 인천 선학체육관. 파란 색 호구를 입은 A군의 발차기가 빨간 색 호구를 입은 B군의 머리에 명중하면서 3점을 얻었다. A군은 이내 뒤돌려차기로 연속 공격에 성공했다. 두 선수의 점수는 14대 7로 벌어졌고 관중들은 A군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경기장 왼편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코치가 심판과 눈을 마주치더니 흰 수건을 매트에 내려놨다. 태권도 경기 중 코치가 경기장에 흰 수건을 내려놓으면 기권패로 간주된다. 승리할 가망이 없다고 봐 시합을 포기하거나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관중들은 수건을 내려놓은 게 B군의 코치일거라 짐작했지만 심판은 B군의 승리를 선언했다. 흰 수건을 던진 이가 A선수의 코치였기 때문이다. 두 선수도, 관중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뜻밖의 패배를 당한 A군의 아버지에게 A군, B군의 코치들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합 뒤에야 경기장에 도착해 소식을 들었다. 코치들은 A군 아버지에게 상대편 B군의 가정 형편을 언급하면서 “집안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게 하기 위해 A군이 양보하게 했다.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A군의 아버지는 18일 기자에게 “알고 보니 말로만 듣던 ‘밀어주기’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밀어주기는 특정 선수가 승리하도록 승부를 조작하는 행위를 뜻하는 스포츠계의 은어다. A군 아버지는 “아들이 ‘이기고 있었는데 왜 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아들 친구들이 찍은 영상을 살펴봤다. 그제서야 어떻게 됐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A군에게 밀려 탈락할 뻔한 B군은 결국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A군 아버지는 “그 시합만 이겼으면 우리 아들이 우승할 수 있었을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군의 아버지는 지난달 18일 경기를 주최한 인천시태권도협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A군의 아버지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A군의 코치 C씨는 경기 후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C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상대편 선수의 코치가 ‘우리 학생이 형편이 어려우니 양보해달라’고 부탁했다. 잘못된 행동으로 A군의 미래를 망쳐 놓아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밝혔다.

태권도에선 승부조작을 위해 특정 선수에게만 경고를 남발하거나 기권패를 시키는 등의 수법이 사용된다. 2013년 전국체전 고등부 서울시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승부 조작이 일어나 피해 선수의 아버지가 목숨을 끊으며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당시 승부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서울시태권도협회장과 심판 등 16명을 기소했다. 한 고교 체육교사는 “특히 태권도에선 인맥ㆍ지연ㆍ학연으로 인한 승부조작이 심각하다. 특히 선수의 진학 문제를 놓고 암암리에 ‘밀어주기’, ‘메달 나눠주기’가 만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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