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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생일” 문자 90통 왔지만, 함께 케이크 자를 친구 없어

중앙일보 2016.08.19 02:29 종합 4면 지면보기
#건설사 과장인 최모(35)씨는 직장생활 10년차다. 학창 시절 100여 명 안팎이었던 휴대전화 저장 번호는 어느덧 520여 개로 늘었다. 하지만 과거보다 더 외롭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다. 그는 “10년 전 연락 끊긴 선배의 경조사까지 쫓아다닐 정도로 열심히 인맥을 관리했지만 허무함을 느낀다”며 “생일 때면 축하메시지는 90여 통 쇄도해도 막상 케이크를 같이 자를 친구는 없다”고 말했다.

넓고 얕은 인맥, 커지는 허무함
경쟁서 살아남으려…왕따 두려워…
무의미한 대화에도 일일이 응답
SNS 속 인간관계 관련어 톱10 중
‘무섭다’ 등 부정적 단어가 7개
주말엔 휴대폰 끄고 나홀로 등산
“관계 스트레스 극복할 에너지 얻어”

#법조계 마당발로 손꼽히는 김현(60)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휴대전화에는 4000여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1988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28년여간 쌓아온 인맥이다. 착실한 인맥 관리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김 대표지만 그에게도 고충은 있다. 그는 “인맥이 아무리 넓어져도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는 가족을 포함해 10명 내외”라고 털어놨다.

#금융권 대기업 부장인 한모(49)씨는 토요일 오전이면 전화기를 끄고 홀로 북한산에 오른다. 3~4시간 정도 땀을 흘린 뒤 내려와 혼자 밥을 먹고 집에 간다. 주중에 평균 하루 100통 이상의 전화 응대를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그만의 방식이다. 한씨는 “일주일에 그 시간만이라도 타인과의 연결을 끊고 나를 응시해야 그 다음 일주일을 견디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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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중심 한국사회에서 관계 맺기에 지친 이들이 늘고 있는 건 깊이보다 ‘넓고 얕음’의 인맥 쌓기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이다. 최씨나 한씨 사례처럼 어쩔 수 없이 많은 인맥을 유지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이는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민아 중앙대 교수가 2013년 발표한 ‘사회적 연결망의 크기와 우울’ 논문에 따르면 하루에 접촉하는 사람이 50명 이하일 때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우울함의 수준이 낮아졌다. 하지만 50명 이상 접촉한 경우엔 많이 만날수록 우울함의 수준이 높아졌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맥을 쌓지만 관계 자체에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관계에서 탈피해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느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관계 유지에서 오는 피로를 극대화한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이다. 공무원 송모(36)씨는 열심히 참여하는 카카오톡 대화방만 10개가 넘는다. 현재 직장 부서에서부터 동아리, 초·중·고·대학 동기생까지 카톡방을 넘나들며 하루 수십 건에서 수백 건가량 글을 올리지만 늘 초조하다. 송씨는 “대화방에 들어가지 못하면 뒤처질까 하는 걱정 때문에 고민했다. 막상 들어가니 대답을 안 하면 왕따되지 않을까, 대답을 하면 여러 사람 앞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부담돼 피곤하다”고 말했다. 송씨가 가입한 한 단톡방에는 50여 명이 등록돼 있으나 활발히 글을 올리는 이는 서너 명뿐이다.

대학생 이승민(26)씨는 1년 전만 해도 잘 때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메시지에 바로 응답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대부분 무의미한 대화인데도 일일이 응하다 보니 지겨워지더라”며 “이제는 단체 알림을 받는 용도로만 메신저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런 피로감은 SNS 게시글에서도 확인된다. ‘인간관계’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무섭다’로 조사됐다. 본지가 다음소프트의 SNS트랜드 분석 툴(소셜메트릭스)을 통해 지난 10일까지 한 달간 트위터 글(4만4533건), 블로그 글(7385건)을 조사한 결과다. 10위 안에 ‘힘들다’ ‘스트레스’ ‘심하다’ ‘외롭다’ 등 부정적 의미의 연관어가 7개였다. 긍정적 의미의 연관어는 ‘편하다’ 등 3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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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기에 부담을 느낀 이들은 적극적인 ‘관계 끊기’로 나아간다. 프리랜서 번역가인 김모(32·여)씨는 6개월 전부터 카카오톡을 끊었다. 프로필에 “카톡 안 합니다. 전화주세요”라는 말을 적기도 했다. 대학 시절 학생회 임원으로 일하며 사람 만나길 즐겼지만 지금은 여가시간에도 ‘집순이’를 자처한다. 김씨는 “열심히 술 마시며 인맥관리를 했지만 남은 건 상한 몸과 카드빚뿐”이라며 “딱 필요한 사람과만 연락하고 나를 더 자주 마주하기 위해 카톡을 접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민제·홍상지·윤재영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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