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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맥주 사서 바로 마시는 ‘마트+펍’… 맥덕들 사로잡다

중앙일보 2016.08.19 00:03 Week& 6면 지면보기
| 200여 종 각양각색 맥주 파는 ‘보틀숍’

요즘처럼 열대야가 극성을 부릴 때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차가운 거품까지 한 입 깊숙이 들이키면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슥 사라진다. 여기까지는 동네 슈퍼마켓 앞 풍경이다. 크래프트 비어 열풍 덕분에 요즘 ‘맥덕(맥주+덕후)’들의 입맛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맛의 맥주를 찾아 기꺼이 원정을 떠난다. 그들의 발길이 머무는 목적지는 보틀숍이다. 수백 종의 희귀한 크래프트 비어를 구비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양조체험도 가능하다. 매장 앞에 테이블까지 갖추고 있거나 펍과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어서 한여름밤 유럽의 광장 테라스 카페에서처럼 자유로운 밤풍경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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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10여종의 맥주를 보유하고 있는 양재동 ‘비어랩협동조합’ 보틀숍.



“주 1회 이상 들르는데 한 번에 많게는 20병정도 사갑니다.”

서래마을의 한 보틀숍에서 만난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 매니어 허현주(29, 직장인)씨의 말이다. 최근 3~4년 사이 확산된 크래프트 비어 열풍 덕에 보틀숍을 찾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크래프트 비어는 천편일률적인 맛의 대기업 맥주와 달리 ‘소규모 양조장에서 독창적인 레시피와 독특한 재료로 공들여 만든 수제 맥주’다. 소량 제조되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고 각양각색의 다양한 맛은 물론이고 병 모양, 레이블도 제각각 개성이 뚜렷해서 ‘맥덕(맥주+덕후)’들의 입과 눈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최근에는 대형 마트에서도 크래프트 비어를 판매하지만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맥덕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보틀숍으로 향한다.

보틀숍들은 주로 캔이나 병에 담긴 해외 크래프트 비어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수백 종의 다양한 크래프트 비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맥덕들에겐 성배가 숨겨진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맥덕들이 꼽는 보틀숍의 또 다른 인기 요인은 ‘마트와 펍의 매력을 섞은 듯한’ 분위기다. 보틀숍에서 맥주를 산 후 매장 안팎으로 준비된 테이블에 앉아 바로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요즘처럼 열대야가 한창인 때엔 문지방이 닳을 만큼 사람들로 붐빈다.

중앙일보가 평균 200종 이상의 크래프트 비어를 구비하고 있는 서울 시내 유명 보틀숍 4곳을 직접 찾아가봤다.




우리 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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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 위치한 우리 슈퍼 안 맥주 진열대.


자타공인 보틀숍 계의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우리슈퍼 김영숙(56) 대표는 “독특한 맥주를 찾는 매니어가 많아지면서 보틀숍 역시 호황”이라고 했다. 외국인 손님이 많은 이태원의 지역적 특성상 슈퍼 한 켠에 수입 맥주를 하나둘씩 구비했던 게 6년 전 일이다. 외국생활 중 맛봤던 맥주를 그리워하는 유학생부터 새로운 맛에 열광하는 젊은이들까지 전국에서 손님이 몰리며 ‘맥덕들의 성지’가 됐다.

본격적으로 크래프트 비어를 들여오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현재 약 210여종의 맥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만드는 희귀 맥주나 와인처럼 빈티지가 있는 맥주, 계절 한정판 맥주 등은 입고된 지 1주 안에 ‘완판’될 만큼 인기다.

퇴근길에 들렀다는 황유경(27, 직장인)씨는 “외국에서 생활할 때 즐겨 마셨던 맥주를 이곳에서 겨우 찾았다”며 좋아했다. 김대표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간섭 받지 않고 ‘혼맥(혼자 맥주 마시기)’하기 편한 장소라는 것도 보틀숍을 많이 찾는 이유”라고 했다. 대부분의 보틀숍은 현장에서 맥주를 바로 마실 수 있다. 우리슈퍼 역시 플라스틱 컵 가격 100원만 지불하면 구입한 맥주를 야외 테이블에서 즐길 수 있다.



크래프트브로스 탭하우스&바틀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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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브로스의 펍에서 생맥주도 맛볼 수 있다.


서래마을에 있는 크래프트브로스 탭하우스&바틀샵은 국내 최초로 보틀숍과 펍을 한 공간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병당 2000원의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보틀숍에서 구입한 맥주를 옆에 마련된 펍에서 즐길 수 있다. 기본 안주로는 프레첼 과자를 받을 수 있다. 펍만 이용하겠다면 기존의 맥주집처럼 생맥주와 다양한 안주를 즐길 수 있다. 현재 이곳은 약 220여종의 맥주를 갖추고 있으며 서래마을에 이어 강남·홍대·김포 등에도 매장을 열었다. 9월 중에는 을지로의 한 호텔에도 보틀숍을 오픈 할 예정이다.

강기문(39) 대표는 “최근 2년 사이 보틀숍 매출만 2배 가까이 성장했다”며 “현지에서 인기 있는 맥주들을 발 빠르게 구해 국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게 보틀숍의 인기요인”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박상은(31)씨는 “맥주 별 전용 잔을 수집하는 것도 보틀숍을 찾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며 “같은 브랜드의 맥주라도 생맥주와 병맥주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펍의 생맥주와 보틀숍의 병맥주를 비교해 마시는 것도 보틀숍의 묘미”라고 했다. 강대표는 “보틀숍이 성장하며 맥주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미 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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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마트는 옆에 정육점을 함께 운영한다.


‘맥주야놀자’ ‘비어포럼’ ‘맥만동(맥주만들기동호회)’ ‘비마클(비어마스터클럽)’ 등 국내 유명 맥주 애호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보틀숍 맥주를 채워나간 곳도 있다. 대를 이어 운영하던 정육점과 슈퍼 바로 옆에 보틀숍을 차린 ‘유미마트’ 얘기다.

3년 전 처음 ‘인디카IPA’를 맛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송재준(44) 대표는 인디카IPA 3박스를 시작으로 보틀숍을 열었다. 현재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맥주의 종류는 약 180여 종. 모두 송 대표가 직접 마셔보거나 맥주 동아리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엄선한 것들이다. 맥주 동아리와의 인연도 인디카IPA가 계기였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보기 힘든 맥주들 덕에 '맥덕'들이 몰려들었고, 각종 정보를 송 대표에게 알려주었다. 크래프트 비어에 문외한이었다는 송 대표는 그렇게 '맥덕'들의 추천을 받아가며 맥주 종류를 늘려갔다.

유미마트 역시 병당 1000원의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보틀숍 옆에 있는 공간에서 구입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함께 운영 중인 정육점에서 신선한 육회를 안주로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유명 만화가 김양수씨의 책 ‘한잔의 맛’에 소개된 후에는 연예인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비어랩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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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랩협동조합에선 맥주 양조 체험도 할 수 있다.


아예 양조 공방(아래 사진)을 갖추고 전문가의 지도하에 세상에서 하나 뿐인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독특한 보틀숍도 있다. 맥주 양조 강좌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어랩협동조합(이하 ‘비어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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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의 성격과 맥주의 종류, 만드는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 13만원의 비용으로 1배치(20L)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최소 2인에서 5인 정도가 모여 1팀을 이뤄 양조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여름철 날씨를 기준으로 양조에서 숙성까지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많이 마셔봐야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보틀숍을 열었다”는 비어랩 구충섭(40) 대표는 “장인정신이 깃든 크래프트 비어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여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어랩에서 만난 직장인 이무현(35)씨는 “맥주를 직접 만들고 사랑하는 전문가들이 구비해 놓은 맥주라, 독특하고 훌륭한 품질의 제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현재 비어랩은 약 210여종의 맥주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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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성현 인턴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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