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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올여름 뒤흔든 한국영화 안에 '헬조선' 있다

중앙일보 2016.08.19 00:01
올여름 극장가의 상영작은 굉장히 다채롭다. 소재와 장르, 시대적 배경, 출연 배우의 매력이 각기 다른 한국영화 다섯 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관객을 그러모으고 있다. ‘제이슨 본’(7월 27일 개봉, 폴 그린그래스 감독) ‘수어사이드 스쿼드’(8월 3일 개봉,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등 쟁쟁한 할리우드 경쟁작이 한국 극장가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관객의 선택은 한국영화였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 영화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금의 한국 사회, 아니 ‘헬조선’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각 영화가 관객에게 묻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올여름 극장가 지형도와 함께 한국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살펴봤다.

| 올여름 뒤흔든 한국영화 안에 ‘헬조선’ 있다
다섯 편의 흥행작을 통해 본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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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중앙포토]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이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8월 7일로 되돌아가 보자. 이날, ‘인천상륙작전’(7월 27일 개봉, 이재한 감독)과 ‘덕혜옹주’(8월 3일 개봉, 허진호 감독)는 각각 관객 524만 명, 170만 명을 기록했다. 올해 첫 ‘1000만 영화’의 탄생과 함께 두 텐트폴 영화의 선전은 상반기 침체돼 있던 극장가에 오랜만에 찾아온 희소식이었다.

뒤이어 개봉한 ‘터널’(8월 10일 개봉, 김성훈 감독)과 ‘국가대표2’(8월 10일 개봉, 김종현 감독)는 각각 관객 258만 명, 40만 명(8월 15일 기준)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보통 영화 1~2편이 독식하던 기존 여름 시즌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새다.

앞서 언급한 다섯 편 모두 대형 투자·배급사에서 성수기를 겨냥해 내놓은 야심작이다. NEW(부산행)·CJ엔터테인먼트(인천상륙작전)·롯데엔터테인먼트(덕혜옹주)·쇼박스(터널)·메가박스(주)플러스엠(국가대표2)에서 배급을 맡은 영화로, 최소 90억원(국가대표2)에서 최대 160억원(인천상륙작전)의 제작비를 들였다.

충분히 대중에 호소력 있다고 판단해 내놓은 작품이란 뜻이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2년 전에는 ‘명량’(김한민 감독)이 관객 수 1700만 명을 넘기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여름 시즌에 ‘암살’(최동훈 감독)과 ‘베테랑’(류승완 감독)이라는, 두 편의 ‘1000만 영화’가 나올 정도로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여름 시즌에 개봉하는 영화가 흥행이 잘되는 편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동시에 나온 전례는 찾기 힘들다. 다섯 영화의 동반 흥행은, 앞으로 한국 영화 시장에 보다 다양한 기획이 나올 수 있는 긍정적 토대가 될 것”이라 말했다.

영화 시장 자체의 성장이나 시즌의 특수성이란 요인도 있지만, 다섯 편 모두 각자의 매력을 또렷이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형식과 소재가 다름에도, 모두 한국 사회란 공동체의 현실을 고민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같다. “명확한 키워드로 묶이진 않지만 우리 내부의 모순과 아픔을 공통으로 다루고 있다”(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것이다.


| 허구를 통해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

먼저, 국가의 시스템이 아예 붕괴된 시절을 소환한 두 영화를 보자. 한국전쟁 당시 극히 희박한 확률에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작전의 뒷이야기를 그린 전쟁영화 ‘인천상륙작전’. ‘시대에 역행하는 반공영화냐’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안보영화냐’ 하는 논란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관객 623만 명(8월 15일 기준)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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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중앙포토]

“한국전쟁 앞뒤로 살펴야 할 모든 복잡한 문제를 제쳐 뒀다”고 이 영화를 평한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팍팍하고 고된 현실에 지쳐 복잡한 논쟁을 마주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북한을 단순히 악으로 묘사한 설정이 일단 감정적으로 쉽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애국주의 코드에 더해, 외교·경제 문제에서 북한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변수가 되어 가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역시 실존 인물을 다룬 ‘덕혜옹주’도 평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허진호 감독 스스로 “능동성이 없는 인물이었기에 관객의 감정 이입을 어떻게 끌어낼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덕혜(손예진)는 영화화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관객 사이에서는 영화 속 덕혜의 연설, 망명 시도 등을 두고 역사 왜곡 논란도 꾸준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 355만 명(8월 15일 기준)을 그러모았다.

손익분기점(관객 350만 명)을 넘긴 수치다. “그저 무력하게 끌려다니기만 했던 인물을 왜 지금 우리가 봐야 하느냐”고 박한 평을 내린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그럼에도 이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대중이 위로받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구임에도 우리의 아픈 역사에 덕혜 같은 사람, 즉 ‘조선의 희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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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중앙포토]

지금은 그런 희망이 있는지조차 의문이기 때문에 과거에서라도 그걸 찾고 싶은 것”이라 풀이했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내용 자체보다 작품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관객이 영화에 역사적 진실을 요구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그만큼 우리 현실에서 역사적 아픔(일본군 위안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문제 등)이 제대로 해갈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 쏠리는 관심도 논란도, 결국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과 관련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 의지할 수 없는 무능한 국가

‘부산행’과 ‘터널’은 직접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내는 영화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부산행’의 가장 큰 흥행 동력은 극단적 이기주의로 치닫는 우리의 모습, 좀비보다 무서운 사람을 잘 보여 줬기 때문이다. 가족애를 굉장히 숭고한 것으로 그렸던 기존 ‘1000만 영화’와 달리, 극단 이기주의를 강조하는 도구로 사용해 그 사실감을 더 극대화한다”고 평했다.

‘부산행’이 좀비물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에도 불구하고 흥행한 데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비판한 것이 통했다는 얘기다. ‘터널’은 보다 직설 화법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다. 무너진 터널에 갇힌 남자 정수(하정우)의 사투에서 드러나는 건, 국가 시스템의 철저한 무능과 부패, 미디어의 잔인함이다. 이 영화 곳곳에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두 영화가 최근 사회 비판 코드로 흥행한 ‘베테랑’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과 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앞서 ‘베테랑’ ‘내부자들’은 거대한 악의 축인 정치인·언론·재벌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결말은 판타지로 끝냈다. 보는 이에 따라, 극장 밖을 나서면 헛헛해지는 결말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산행’과 ‘터널’은 조금 더 담담한 희망에 무게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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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중앙포토]

‘부산행’에서 이기적이었던 석우(공유)는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서서히 변해 간다. ‘터널’의 정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다른 부상자와 물을 나누고, 특유의 긍정성을 잃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들은 ‘국가를 전혀 믿을 수 없는 지금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윤리를 택할 것이냐’에 대해 묻는다.”(황진미 영화평론가)


| ‘함께’의 가치를 모르는 경쟁 사회

시원한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국가대표2’ 또한 희망을 말한다. 스포츠영화만의 감동과 쾌감을 선사하는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감은 앞서 언급한 네 편만큼 묵직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끌어 가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탈북자 지원(수애), 퇴출당한 쇼트트랙 선수 채경(오연서), ‘취집’할 생각뿐인 가연(김예원), 경리 출신 미란(김슬기) 등은 소위 말하는 ‘흙수저’다.

영화 후반부 “분단의 현실에서 기인하는 가족 이야기에서 오는 눈물”(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만큼 중요한 것은 전반부에 펼쳐지는 캐릭터 간 갈등이다. 이 갈등 드라마가 헐겁다는 평에도, 그 자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1등만 기억하는 경쟁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 ‘만년 2등’ 채경에겐, 상대적 약자인 탈북자 지원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다. 서로 바라볼 여유조차 없던 이들이 ‘함께’의 가치를 알아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바로 ‘국가대표2’다.

이야기의 결도, 만듦새의 단단함도 다른 다섯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을 정리하면 이렇다. 복잡한 논쟁을 마주하기보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위안받고 싶은 우리는, ‘좀비에 버금가는 재난을 마주했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나아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 약자끼리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이 모든 것은 관객,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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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2 [중앙포토]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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