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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과잉에 합병 승부수…신일철주금 다시 세계 2위로

중앙일보 2016.08.18 02:24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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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일철주금의 기미쓰제철소 제4고로. 내부 용적(5555㎥)이 세계 네 번째로 크다. [사진 박성민 기자]

일본 도쿄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일본 1위 철강회사 신일철주금의 기미쓰제철소가 나온다. 도쿄돔 22개를 합친 크기의 대형 제철소로 신일철주금의 제철소 중 두 번째로 많은 철을 생산한다.

2010년 세계 6위, 포스코에도 뒤져
스미토모·닛신제강 인수 몸집 키워
효율성 떨어지는 고로는 문 닫아
자발적 구조조정 기업에 세제 혜택
100대 기업 평균 순이익도 두 배로

최근 방문한 기미쓰제철소 열연공장에선 용광로에서 녹인 슬라브(철강 반제품)를 다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20t 크기의 거대한 슬라브를 롤러에 올려 열과 압력을 반복해 가하면 얇은 철판을 두루마리 형태로 감은 제품이 만들어진다.

활기찬 분위기의 작업현장이지만 한때는 근로자들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신일철주금(당시 신일본제철)은 세계 2위의 조강 능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국내 공급 과잉을 우려한 정부가 감산을 유도하자 스스로 생산량을 줄이는 대신 부동산업·반도체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사이 본업인 철강에서 포스코 등이 빠르게 성장하며 신일철주금을 위협했다.

결국 2010년 신일철주금의 조강 능력은 후발 주자인 포스코에 밀리며 6위까지 추락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도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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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몰린 신일철주금의 대응 무기는 선제적 구조조정. 2011년 스미토모제철, 올 2월 일본 4위 철강회사인 닛신제강을 인수하면서 다시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덩치를 키우는 한편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문을 도려내고 강점을 키우는 구조조정도 진행했다.

신일철주금은 스미토모제철 인수 후 지난해까지 자사가 보유한 4개의 제철소에서 강판 및 강관과 관련한 14개 라인의 생산을 중단했다. 고로 폐쇄도 이어지고 있다. 신일철주금은 올 3월 기미쓰제철소의 고로 1기를 폐쇄한 데 이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3개 고로를 추가로 폐쇄할 예정이다.

이런 구조조정에 힘입어 2012년 0.5%에 불과했던 신일철주금의 영업이익률은 2015년 5.4%로 크게 올랐다.

신일철주금처럼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구조조정을 일본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급 과잉 문제가 불거진 조선·화학·정유·철강·전자 등 업종에서 3~4개 기업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00년대 초반 6개의 고로회사가 있었던 철강업계는 일본 업계 1위 신일철주금과 4위 닛신제강이 합병하면서 3강 체제로 정리됐다. 2위 JFE홀딩스와 3위 고베제강소 역시 통합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거 10개의 회사가 난립했던 정유업계도 일본 최대 정유사인 JX홀딩스가 지난해 말 3위 도넨제너럴과 경영 통합에 최종 합의하면서 3강 체제로 재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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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나 전자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분야에서는 작은 기업들 간 연합체를 만들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한다.

일본 기업이 활발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는 데는 탄탄한 재무구조가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500대 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38.1배로 한국(7.2배)·미국(8.4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내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빚을 청산할 여력이 큰 것으로 본다. 탄탄한 재정에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비용까지 저렴해 기업이 공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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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한국 조선업 부도 닥쳐야 구조조정, 일본은 미리미리 했다


아베 신조 정권이 2014년 도입한 ‘산업경쟁력강화법’도 구조조정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이는 한국 원샷법의 모태가 된 법안으로, 정부가 시장 상황을 파악해 기업에 공급 과잉 여부를 알려 주고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엔 세제나 금융상의 혜택을 준다.

현재 일본의 경제 상황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국내외에서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상시 구조조정으로 버티며 힘을 길렀다. 본지가 일본 100대 기업의 최근 4년간 매출·영업이익·고용을 분석한 결과 일본의 기업은 2012년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평균 40조4900억원이던 일본 100대 기업의 평균 매출은 2015년 44조9760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9320억원에서 1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도쿄=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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