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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노년기의 남성이 위험하다

중앙일보 2016.08.16 19:13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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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내가 산 세월을 절반으로 뚝 자르면 전반기 학창 시절은 여자뿐인 세상에, 후반기 사회생활은 남자뿐인 세상에 살았다. 지금도 매일 회의하고 밥 먹고 얘기하는 상대는 모두 남자다. 그렇다 보니 남성의 정의감과 선량함, 약함과 불안감 등을 어느 정도 안다. 더 확실하게 아는 건 성(性) 관련 문제의식은 남녀가 30년 가까이 섞여 살아도 상당히 다르다는 것. 최근 예로 남성소외 문제도 그렇다.

지난주 두 노인의 참혹한 죽음이 알려졌다. 다섯 식구가 사는 집에서 한 달 동안 방치됐던 60대 아버지의 시신. 그 집 식구들은 썩는 냄새가 진동할 때까지 아버지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한 70대 노인은 전구를 갈아 끼우다 떨어져 다친 후 병원비를 걱정한 아내가 내려친 둔기에 맞아 숨졌다.

물론 극단적 사례다. 모두 개별적 갈등도 있었다. 문제는 각각 사정은 달라도 노인의 주검이 방치되고 노년의 부부가 서로 살해하는 일은 이제 보기 드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내를 죽이고 자살한 노년층 사건도 최근 잇따랐다. 노인 강력범죄는 해마다 늘고 가해자의 90%는 남성이다. 이런 노인의 고독사와 범죄, 폭주 노인, 노인 갈등, 노인 학대 등 각종 노인문제의 이면에 ‘가정에서의 소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현상이다.

하나 우리 사회에선 남성의 소외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노인범죄·빈곤과 관련한 단편적 통계와 분석은 있지만 남성소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대안 탐색은 찾을 수 없다.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남성소외를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맡겨두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로 끌어내 사회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한데 남성들의 반응은 이랬다. “개별적 사건을 일반화하지 말라.” “여자들은 우발적 사건에 오버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여성들은 과거엔 우발적 사건으로 취급했던 성폭력이나 정신병자의 여성 살해 등 개별적 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구조적·문화적 폭력과 여성혐오라는 어젠다를 끌어내고,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연대 행동에 능숙하다. 이는 소수자(minority) 의식 덕분이다. 소수자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구조와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연대해 변화를 요구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주류(majority) 사회에서 ‘오버’한다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행동한 덕분에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의식을 많이 바꿔놓을 수 있었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남성소외 현상은 훈련된 ‘소수자’인 내 눈엔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 범죄가 아니라도 은퇴 후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갈 곳 없이 겉돌며 불안한 ‘거리의 노년기’를 보내는 남성 인구는 점차 늘어난다. 대부분 게으르지 않게 부지런히 살아왔던 선량한 남성들이다. 그런 이들의 노년이 불행해지는 사회는 불건강하다. 한데 남성들은 이를 ‘우리 문제’가 아니라 그들 개인 문제 혹은 가정사로 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는 분노하는 남성이 소외된 남성문제엔 침묵하기도 한다. 우리 세대 남성들이 학습한 ‘남자는 가정을 책임지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남성적 책임감에 발목 잡혀 있거나 연대감이 약한 ‘주류 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한데 세상은 이런 남성성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남성의 권위는 여성의 헌신과 복종 위에서 지켜졌지만 이젠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는 일부 극보수 남성의 주장은 해답이 아니다.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보조를 맞춰가며 변화해야 한다. 여성문제를 여성이 자각해 이만큼 바꾼 것처럼 남성소외도 스스로 자각하고 지역사회와 사회 전반의 동참을 요구하며 변화를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친애하는 남성 동료들이 행복한 노년을 맞았으면 좋겠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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