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여자 골프 왜 강할까

온라인 중앙일보 2016.08.16 10:52
기사 이미지
한국 선수와 한국계 선수의 치열한 경쟁, 
여기에 외국 신예들의 도전.


112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돌아온 골프, 그 중에서도 여자 골프의 상황이다.
올 시즌 LPGA 세계랭킹 10위 내 한국인선수는 5명, 그 중 박인비·김세영·전인지·양희영이 우리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다.
게다가 뉴질랜드 국가대표 리디아 고(세계 랭킹 1위, 이하 8월 8일 기준)와 호주 국가대표 이민지(세계 14위)·오수현(세계 42위)은 한국계다.

금·은·동메달 시상대에 모조리 한국인 혹은 한국계 선수가 올라서는 상황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특히 잘 하는 '효자 종목'은 여럿 있다. 하지만 골프는 특별하다.
양궁, 펜싱, 태권도는 남녀 모두 올림픽 금메달 수확 경험이 있다. 세계 랭킹에서도 상위권이다.

골프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세계 무대에서 남녀 간 성적 차이가 난다. 이번 올림픽 남자 골프 국가대표 안병훈은 세계랭킹 33위, 왕정훈은 74위다.

올림픽 골프에는 나라별 최대 2명씩 출전한다. 하지만 세계 랭킹 15위 내에 4명 이상이 포함된 나라에는 선수를 4명까지 내보낼 수 있는 특례가 주어진다. 이번 올림픽에서 이에 해당하는 나라는 남자 골프에서 미국, 여자 골프에서 한국 뿐이다.

이쯤 되면 미스터리다. 한국, 왜 이렇게 골프를 잘 할까. 그것도 특히 여자들이.
기사 이미지

‘그린의 여왕들-어떻게 한국은 여자 골프를 지배하게 됐나’
지난해 AFP통신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는 한국 여자 골프의 선전 이유를 꼽아봤다. 뛰어난 손 감각("sensitive fingers"), 문화적 특성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딱 꼬집을만한 '정답'은 없었다. 태극낭자 열풍을 지켜 본 골프 여신들도 끝내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기사 이미지
"박인비는 심장도 안 뛰는 사람 같다."
-2013년 박인비가 메이저 3연승을 달성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국 골퍼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죽도록 열심히 한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다. 골프를 향한 정열과 강한 멘탈도 특징이다."
- 2011년 방한 중 '골프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사 이미지
"세리는 아주 강한 선수였다. 세리의 정신력, 기술력은 놀랄 정도였다. 한국 선수들이 여자 골프의 기준을 상당히 높여놓았다."
-2015년 인터뷰에서
기사 이미지
 
"한국 선수들은 세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꾸준함과 뛰어난 테크닉, 성실한 연습량이다. 또한 한국 선수들은 경기 운영전략을 잘 짠다."
-2009년 방한 중 기자회견에서
 
기사 이미지
한국인의 신체가 골프에 최적화된 것일까?
하지만 골프 선수로서의 우월한 체격조건을 갖춘 한국 선수는 오히려 적다.
기사 이미지

10위권의 절반이 한국 선수다. 그런데 이들 5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여자가 잘 한다'고만 통칭하기는 어렵다. 잘하는 건 공통이지만, 잘하는 이유는 제각각 달라서다.
 
기사 이미지
평균 퍼팅수를 X축,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를 Y축으로 한 좌표평면 위에 세계랭킹 10위권 선수들을 배치해 봤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퍼팅이 정교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장타자다. 선수별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박인비(28)와 리디아 고(19·뉴질랜드)는 그래프 우측 하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톱 랭커들 중 드라이브 샷 거리는 상대적으로 길지 않지만 퍼트 실력이 뛰어나다. 박인비는 '컴퓨터 퍼트'라는 별명처럼 퍼팅과 숏게임에 강하다. 박인비가 "나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해서 무섭다"고 말했던 리디아 고도 마찬가지다.

렉시 톰슨(21·미국)은 이들과 정 반대 스타일이다. 그래프를 대각선으로 접으면 리디아 고와 정확히 대척점에 찍히는 것이 렉시 톰슨이다. 드라이버 비거리 1위를 놓치지 않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타자다. 퍼트는 상대적으로 그만 못하다.

김세영도 장타자다. 올 시즌 드라이버 비거리 부문 6위다. 다만 렉시 톰슨이 워낙 독보적이다보니 상대적으로 그래프에서는 장타가 부각되지 않았다.

'태국의 박세리' 에리야 쭈타누깐(21)은 드라이버 비거리 부문 13위다. 하지만 이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력의 장타자다. 워낙 장타자라 남들이 드라이버를 쓸 때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면서도 거리에서 밀리지 않는다. 리디아 고와 함께,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와 경쟁할 가장 강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기사 이미지
골프는 신체 조건이 중요한 종목이다. 장타에 유리한 긴 팔 큰 손에서 시작되는 큰 스윙 아크가 스윙과 볼의 속도를 높여 볼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 장타가 반드시 성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코스 길이가 길어지는 추세는 장타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
172cm의 남자 골프 선수 최경주는 전성기 때에 "키가 10cm만 더 컸으면 늘 바랐다. 심지어 한동안 키가 크는 꿈을 매일 꾸기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사 이미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주요 선수들을 키 순으로 세워봤다. LPGA 최상위권인 리디아 고, 박인비, 김세영은 170~180cm의 서구 선수들은 물론 같은 동양인인 쭈타누깐보다도 키가 작다.

물론 한국 선수라고 모두 작은 것은 아니다. 전인지와 양희영은 170cm 이상의 체격을 갖췄다.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즐기면 이기던데"
“내게는 모든 벙커가 항아리 벙커다. ”
지난해 7월 브리티시여자오픈 개막을 앞두고 리디아 고는 이렇게 말했다. 키가 작아서 벙커가 남들보다 높게 느껴진다는 거다.
자타 공인 ‘골프 천재’인 리디아 고의 키는 165cm. 크지 않은 체격으로, 장타보다는 노련한 경기 운영과 숏게임으로 승부한다. 아니카 소렌스탐은 리디아 고에 대해 “최고의 숏 게임을 하는 선수 중 한 명”이라면서 “모든 것을 갖췄고 어린 나이인데도 경기 운영이 침착하다"고 평가했다.
리디아 고는 소문난 연습벌레다. 열 살 무렵부터 방과 후 아버지와 함께 3시간 동안 롱?숏 게임을 번갈아 연습하는 ‘고밀도 훈련’을 해왔다. 골프 클럽 대신 야구배트로 스윙하기도 한다. 리디아 고는 "손과 눈의 동작을 일치시키는 데 도움되는 연습"이라고 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침착한 리디아 고는 '골프 영재'출신들이 겪는 압박감도 잘 넘기는 듯하다. 평소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즐기는 것, 즐길 때 성적도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기사 이미지
“내가 코킹(손목을 굽혔다 펴주는 동작)이 없다”
박인비는 남들보다 약한 손목을 타고 났다. 어릴 때 푸시업을 제대로 못했다. 후에 정형외과 의사에게 ‘손목의 조인트를 연결하는 부분이 남보다 짧아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았다. 무리하게 코킹을 하면 다치게 된다는 거였다.
박인비는 연구 끝에 코킹 동작을 뺀 맞춤형 스윙폼을 갖게 됐다. 몸통과 엉덩이를 적게 회전해 느린 백스윙을 하며, 다운스윙부터 속도가 빨라지며 하체를 회전해 힘을 모은다. 손목 코킹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힘도 없고 어설퍼 보인다. '스윙의 정석'은 임팩트 순간까지 공을 보라는 것이지만, 박인비는 임팩트 때 이미 시선이 타깃으로 간다.
효과는? 손목을 적게 쓰므로 샷의 방향이 일정해진다. 일찌감치 타깃을 향하는 머리를 따라 체중 이동도 자연스럽다. 간결한 스윙으로 정확도를 높인다.
기사 이미지
“장타·정신력 비결은 태권도"
"김세영은 남자다" 동료 골퍼들이 혀를 내두르며 하는 말이다. 김세영은 키가 163cm인데도 남자선수 못지 않은 힘있고 빠른 스윙을 한다는 거다.
김세영 스스로 밝힌 '작은 체구에도 장타를 칠 수 있는 비결'은 태권도다. 김세영은 국기원 공인 3단의 태권도 유단자다. 태권도 관장이었던 김세영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딸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김세영과 아버지의 자가진단은 "태권도 발차기를 하며 익힌 감각이 골프에서 체중을 이동해 임팩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그말처럼 김세영의 스윙은 빠른 골반 회전과 강력한 임팩트에서 나온다. 손목 힘도 좋다.
LPGA투어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에서 현재 김세영의 순위는 6위(271.4 야드). 이 부문 1,2위인 렉시 톰슨과 조안나 클라튼의 키는 각각 183cm, 175cm로 김세영보다 12~20cm 크다.
기사 이미지
“부모님 주신 체격에 슬럼프 이긴 뚝심 있죠”
‘남반구 미셸위’, '제2의 박세리'. 한때 양희영의 별명이다. 2006년 만16세의 호주 유학생 양희영이 유럽여자투어 ANZ레이디스에 아마추어 자격으로 참가해 우승했다. 남녀를 통틀어 프로 골프대회 사상 최연소였다. 2008년에는 유럽투어에서 2승을 거뒀다.
이후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6년간 118개 대회에 출전하고도 우승하지 못해 무관의 설움을 겪었다. 이 기간 슬럼프를 겪었으나 이겨내고 2013년 LPGA 첫승을 따냈다. 올해 양희영은 LPGA 14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6차례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양희영은 국가대표 출신 부모에게 키 174cm의 체격을 물려받았다. 양희영의 아버지 양준모 씨는 카누 국가대표를 했고, 어머니 장선희씨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창던지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양희영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올림픽 출전의 꿈을 대신 이루게 됐다. 올림픽 메달도 노린다.
기사 이미지
“골프도 수학처럼 풀어요”
전인지는 골프보다 수학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때 전국 수학경시대회 대상을 받은 ‘수학 영재’출신이다. 지능지수(IQ)는 138. 골프 입문은 초등 5학년 때 했다. '골프도 수학문제 풀 듯 한다'는 평을 받는다. 원리를 이해하고 확신을 가진 뒤 실제에 적용한다는 의미다.
지난 2015년은 전인지에게 최고의 해였다. 5월 JLPGA 메이저 대회인 살롱파스컵, 7월 LPGA 메이저 US여자오픈, 10월 JLPGA 메이저 일본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KLPGA에서도 메이저 2승(총 5승)을 올렸다. 한 해에 한·미·일 3개국의 메이저 대회에서만 5승을 달성한 것이다. 전인지가 '메이저 퀸'이라 불리는 이유다.
KLPGA에서 가장 키가 큰 전인지(175cm)는 퍼팅 능력도 갖췄다. 현재 LPGA 평균 퍼팅 수 부문 9위에 올라 있다.
 
취재 한민경
구성 심서현
디자인 임해든, 김은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