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통령 1인 체제 한계…총리가 내치 맡는 분권형 개헌을”

중앙일보 2016.08.16 02:02 종합 16면 지면보기
광복71년. 대한민국은 이 기간 모두 9번 헌법을 바꿨다. 2~3년마다 개헌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1987년 10월 29일 헌법 개정 이후는 달랐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골격으로 한 ‘87년 체제’는 올해로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본지 주최 법학계 4인 좌담회

과연 30년 전 헌법이 시대 변화를 수용하고 있을까. 중앙일보가 지난 6월 20대 국회의원 2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3.5%(203명)가 개헌에 동의했다. 같은 기간 본지의 국민 여론조사에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4.2%였다. 국민도 국회의원도 모두 87년 헌법을 ‘구체제’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지만 개헌 논의는 제자리다.

중앙일보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개헌 좌담회를 열었다.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을 지냈던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와 자문위 권력분과위원장이었던 이건개 법무법인 주원 대표변호사,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협치에 달려 있다”며 “협치를 위해선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좌담회 사회는 강민석 정치데스크가 맡았다.
 
왜 개헌을 해야 하나.
▶김철수=헌법을 개정한 뒤 3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여러 과제를 풀기 위해선 국민 통합이 돼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한이 너무 많다. 서로 견제와 균형이 될 수 있게 하고 권력을 여당이 독점하지 않고 야당에도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분권형 대통령제’가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개헌해도 현재 대통령의 임기에는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이건개=역사적 필요성과 당위적 필요성이 있다. 그간 9차례 개헌이 있었지만 지난 정권의 병폐를 보면 대통령 1인체제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었다. 대통령의 심기에만 매달리는 국정운영이 이뤄져 왔다. 직언은 기피하게 되고 정신력과 철학의 빈곤이 가속화됐다. 대통령이 24시간 중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세 시간밖에 안 된다. 8시간은 자야 하고, 행사에 참석해야 하니 전부 빼면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 보고받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 정도뿐이다. 지금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대통령 혼자서 외교·안보·국방과 내치를 전부 함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효원=헌법 개정은 헌법 체제와 정치현실의 괴리가 있어 (헌법이) 규범력을 갖지 못할 때 필요성이 발생한다. 헌법이 개정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국내외적으로 상황이 많이 변했다. 국가 구성의 3요소인 국민·영토·주권에 대한 규범적 의미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다만 개헌 논의가 특정 정치 세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략적 도구로 사용돼선 안 된다.

▶김대환=(권력구조 외에) 기본권과 관련한 개헌도 중요하다. 정보통신·생명과학 기술이 굉장히 발전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치와 사상, 국민 공감대가 많이 변화했다. 세월호 사건 등을 거치면서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도 많이 바뀐 게 대표적이다. 우리나라가 1948년 헌법을 만들었을 때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모델로 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오래된 상태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내용은 무엇인가.
▶김철수=대통령제의 문제는 권한뿐만 아니라 책임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이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 돌리니까 오히려 대통령이 존경받지 못한다. 프랑스처럼 국가 이익이 걸린 문제는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고, 그 대신에 정치적인 문제는 국회가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국가 안전보장이나 통일 문제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대통령이 하고, 정치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의원내각제 식으로 운영하게 할 수 있다. 단순히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는 게 아니다. 사법부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있는데 대법원의 권한이 너무 강하다. 이것도 조화를 시키고, 감사원이 행정부만 감사했는데 국회도 감사하게 해야 한다.

▶이건개=그간 표만 중시하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나면 민생과 치안이 뒤처지고, 국가 본연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 정권은 다시 국가 업무의 연속성을 파괴해 왔다. 얼마나 국력의 낭비인가. 1인 독점 권한 밑에서는 정보수사기관이 100% 예속되기 때문에 인권이 상실된다. 더욱이 중국·미국·일본 등과 얽힌 국제 상황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갈수록 사면초가다. 이 상태에서 외교·안보·국방을 격상시키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을 맡고, 내치는 총리에게 위임해 협치를 해야 한다. 외교·안보·국방 전담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

▶김대환=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발하고 국회에선 총리를 선출하되 의회가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만 이렇게 대통령과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등으로 권력을 많이 나눠 놓으면 조화가 안 될 수 있다.

▶이효원=분권형 개헌의 핵심은 행정권을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나누자는 것이다. 추상적으로는 외교·국방은 대통령, 내치는 총리로 나누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사실 결정적인 문제가 될 거다.
분권형제하에선 여당 대통령과 야당 국무총리가 배출될 수 있겠다. 양자 간 갈등이 생기면.
▶이효원=결국 (여야) 동거정부나 연립정부가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안정적인 협치가 되기 위해서는 권한 배분 문제가 정치적 갈등을 야기시켜선 안 된다. 어떻게 각각 권한을 배분하고 정치적 책임을 물을지 세밀한 검토를 통해 헌법에 반영돼야 한다.

▶김대환=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권한을 행사해선 안 되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통일과 관련해선 통일정책심의위원회를 두고, 외교 사안은 외교안보정책심의위를 두는 형식이다. 대통령이 각 위원회의 위원장이나 의장이 되고 국무위원들이 위원으로 합류하는 형식이다. 거기서 논의를 한 뒤 결정되지 않은 것은 정책으로 나오지 않고, 결정되면 대통령 권한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내치총리를 하고 싶어할 수 있겠다.
▶김철수=독일의 사례를 보면 다들 총리하려고 하지 대통령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는 다르다. 대통령이 되면 일정한 권한을 갖고, 국무총리가 되더라도 행정권을 갖게 되니까.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건개=총리는 타협과 협치, 소통에 능한 사람이 맡으면 된다. 100여 년 전 구한말, 우리는 세계가 소용돌이일 때 중국이냐 일본이냐의 기로에서 방황했다. 1세기가 지난 지금은 ‘중국이냐 미국이냐’의 선택에 당면해 있다. 서쪽에서 밀려오는 중국의 패권주의와 동쪽에서 돋아나는 미국의 신보호주의 사이에서 진퇴양난이다. 정당과 정파를 떠난 외교·안보·국방의 강화가 필요하기에 외교·안보·국방전담 대통령제 개헌의 당위성이 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지금 개헌이 가능할까.
▶김철수=지금이야말로 헌법 개정의 적기다. 과거에도 개헌을 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 그때는 강력한 대통령 입후보자가 있었다. 그분들은 자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강력한 권한을 가진 현재의 대통령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에 대통령이 누가 될지 아직까지는 강력한 후보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 같은 때 헌법 개정을 해야 제일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분권형 개헌은 3당 체제에도 적합할 수 있다.
강력한 주자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개헌에 반대하는 대선주자가 10명이 넘을 수도 있다.
▶이효원=아마 지금 개헌을 하고 2022년 대선에 적용하자는 얘기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헌법 효력을 장기간으로 비워두면 오히려 법적 불안정성과 정치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개헌을 하게 되면 2017년 대선부터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건개=이 시기야말로 개헌의 적기다. 다음 대통령 후보가 선거에 공약으로 내건다고 해도 대통령 당선되고 나면 최소한 3년 정도는 자기 일을 하려고 한다. 개헌할 생각을 안 할 거다.
통일에 대한 대비도 개헌 시 반영해야 할까.
▶이효원=이번에 개헌을 하게 된다면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리 헌법에는 ‘자유민주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라는 추상적인 문구만 있다. 통일을 담기 위해선 국회 양원제가 필요하다. 통일이 되면 남북한 인구수가 두 배 넘게 차이가 난다. 단일 국회라면 북한 주민의 주권적 의사가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하원은 남북한 전체 대표로 뽑고, 상원은 최소한 남북 동수로 뽑아 북한 주민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면 안정되지 않을까 한다.

▶김철수=통일과 관련한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새로운 정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국론분열이 될 수 있는 내용은 뒤로 미뤄야 한다.

▶이건개=양원제는 좀 장기적으로, 점진적으로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 이번부터 논의하기에는 무리라고 본다.
국민생활과 관련한 내용은 개헌에 어떻게 포함해야 할까.
▶김대환=현행 헌법에는 생명권에 관한 규정이 없다. 요즘 시대에 중요한 건 정보기본권이다. 생활관계의 변화에 따라 알권리, 정보접근권,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정보문화 향유권이 들어가야 한다. 국민의 권리에 대응해서 새로운 의무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헌법 수호 의무나 법률 준수 의무 등이 들어갈 수 있다.

▶이효원=헌법에 ‘국민의 권리’라고 돼 있는 것을 ‘인간의 권리’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국제화나 시대 변화에 맞춰 국적을 가진 사람을 주체로 해선 안 된다는 문제 의식 때문이다.
 
역대 개헌 주요 내용(총 9회)

▶ 제헌(1948.7.17)=대통령 간선제, 임기 4년, 1차에 한해 대통령 중임 허용

▶ 1차 개헌(1952.7.7)=대통령 직선제

▶ 2차 개헌(1954.11.29)=초대 대통령만 중임제한 철폐

▶ 3차 개헌(1960.6.15)=내각책임제, 간선제(국회), 임기 5년

▶ 4차 개헌(1960.11.29)=소급입법 개헌(부정선거 관련자 처벌)

▶ 5차 개헌(1962.12.26)=대통령 직선제, 임기 4년

▶ 6차 개헌(1969.10.21)=삼선개헌, 대통령 3선 허용

▶ 7차 개헌(1972.12.27)=유신헌법, 대통령 간선제(통일주체국민회의), 임기 6년, 종신집권 가능

▶ 8차 개헌(1980.10.27)=간선제(선거인단), 임기 7년, 단임제

▶ 9차 개헌(1987.10.29)=직선제, 임기 5년, 단임제

사회=강민석 정치데스크, 정리=이지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