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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애환 콕 집어낸 삽화, 사이다 맛 같다네요

중앙일보 2016.08.16 01:11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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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작가는 삽화뿐 아니라 불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 중 ‘녹원전법상’(사진 속 그림)에서 부처를 깨달음을 얻은 클럽DJ로 묘사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사무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젊은 남성 직장인이 당당하게 요구한다. “경영자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최근 직장인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히노 에이타로 지음, 오우아 펴냄)에 나오는 삽화의 장면이다. 팍팍한 직장인의 삶을 이런 삽화에 담아낸 이가 바로 양경수(33) 작가다. 그의 그림은 SNS에서 ‘짤방’(짤림 방지 그림)으로도 애용될 만큼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마시면 속이 시원해지는 탄산음료에 비유해 ‘사이다 작가’라는 별칭도 붙었다.

전방위 일러스트 작가 양경수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친구들 술자리 뒷담화서 소재 얻어
클럽DJ 된 부처 등 파격적 작품도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갤러리에서 만난 양 작가는 대중의 뜨거운 반응이 신기하다고 했다. “제 그림에 대해 속이 시원하다거나 사이다 같다는 댓글이 달릴 때마다 재밌어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직장인을 소재로 한 그림을 온라인에 연재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회사원 친구들을 술자리에서 만날 때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은 얘기만 하는데 정작 대놓고 밖으로 꺼내진 못하더라고요. 그들의 속마음을 그림으로 대신 내질러 주는 거죠.” 그림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자 양 작가는 올해 초 출판사로부터 직장인을 소재로 한 책의 삽화를 그려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그는 지금도 SNS를 통해 ‘양치기’란 예명으로 매주 그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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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 따위 됐으니…』의 양경수 작가 삽화.

그의 그림 속엔 간결하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언어유희가 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현실도피도 하고 싶고 불안하다”는 남성에게 의사는 “상사병”이란 진단을 내린다. 이어 남성이 “사랑에 빠진 건가요?”라고 묻자 의사가 “아뇨, 직장상사가 주는 병입니다”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양 작가는 직장생활 경험이 전혀 없다고 했다. “직장인들의 삶에 깊숙하게 관여돼 있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관찰자의 입장에서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대신 그는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이나 스케치북에 메모를 하고 스케치를 한다. “저녁 술자리에서도 옆 테이블에 회식자리가 있으면 유심히 관찰하죠. 때론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양 작가는 불화(佛畵)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 국립 세계문화박물관의 ‘더 붓다’ 전에도 초청됐다. 그는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八相圖)’ 중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에서 부처를 깨달음을 얻은 클럽DJ로 묘사하는 등 파격적인 작품을 내놓고 있다. “부처의 말씀을 너무 고차원적으로 해석하지만 당시 언어로 보자면 지극히 대중적인 표현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걸 지금 시대에 맞게 바꾼 것뿐이죠.”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소통’과 ‘공감’을 꼽았다. “SNS는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최고의 소통 창구예요. 앞으로도 그림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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