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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편파판정 심판 보란 듯이…김현우 한 팔로만 동메달

중앙일보 2016.08.16 00:58 종합 25면 지면보기
15일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5㎏급 동메달 결정전이 열린 카리오카2 경기장. 승리가 확정되자 김현우(28·삼성생명)는 매트 중앙으로 달려가 태극기를 펼쳤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든 김현우는 흐느끼고 있었다. 지난 4년간의 노력과 이날 하루의 좌절과 고통이 범벅이 된 눈물이었다. 김현우는 “오늘이 광복절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며 말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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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을 따고도 고개를 떨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김현우(오른쪽). 1회전에서 판정시비 끝에 김현우를 꺾고 금메달을 딴 러시아의 로만 블라소프가 김현우를 위로하고 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2년 런던 올림픽 66㎏급 금메달리스트 김현우는 리우 올림픽에선 체급을 올려 출전했다. 그는 75㎏급에서도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1회전 첫 경기(16강전)부터 런던 올림픽 75㎏급 우승자이자 세계랭킹 1위 로만 블라소프(26·러시아)를 만난 게 불운이었다.

레슬링 1회전 러시아 선수 대결서
역전 노린 4점짜리 기술, 2점 인정
팔 빠진채로 동메달 결정전 승리
“광복절 태극기 휘날리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고 죄송하다” 눈물 흘려
박 대통령 “대한민국 영웅” 축전

김현우는 경기 종료 30여 초 전까지 블라소프에 3-6으로 지고 있었다. 그러나 종료 직전 4점짜리 기술인 가로들기를 성공했다. 7-6으로 역전하는 줄 알고 기뻐했지만 심판은 2점을 줬다. 기술이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안한봉(48)감독의 요청에 따라 비디오 판독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원심이 유지되면서 러시아에 1점이 더해져 5-7로 졌다.

최종삼 한국선수단 총감독과 법률담당 제프리 존스 변호사까지 경기장을 찾아 2시간 동안 문제의 장면을 분석했다. 안 감독은 “앞으로 레슬링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이의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편파 판정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면서 “1회전에서 지고 나서 현우가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더라. 나도 많이 울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메달을 향한 꿈은 한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졌지만 김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패자부활전에서 양빈(27·중국)을 3-1로 물리친 김현우는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리고 보조 스타르체비치(28·크로아티아)에 6-4로 역전승을 거뒀다.

스타르체비치와의 1피리어드에서 김현우는 상대의 옆굴리기 공격을 막기 위해 버티려다 오른팔이 탈골되는 부상을 당했다. 1피리어드까지 2-4로 뒤졌던 그는 한 팔만으로 2피리어드에서 4점을 따내며 승부를 뒤집었다. 안 감독은 “격투기 종목에서 기세가 한 번 꺾이면 회복하기 힘들다. 보통 선수가 그 정도 부상을 입었다면 경기를 포기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현우는 레슬링을 바라보는 국민과 후배들을 위해 메달을 따냈다. 정말 대견하다”며 울먹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 김현우를 격려했다. 박 대통령은 “김현우 선수가 보여준 투혼과 불굴의 의지는 우리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줬다”며 “체급 상향과 탈골 부상의 어려움에도 2회 연속으로 시상대 위에 올라 벅찬 감동을 준 김현우 선수는 대한민국 레슬링의 영웅”이라고 전했다.

악전고투 끝에 값진 동메달을 땄지만 김현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는 “가족들이 (금메달을) 많이 기대했을 텐데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김현우의 어머니 박영호(59) 씨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아들의 체력 보강을 위해선 보신탕을 먹는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 그 길로 시장에 가서 개고기를 샀다. 그러다 아예 아들을 위해 보신탕집을 차렸다.

박 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자들은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 마음을 헤아린다면 용서받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지금까지 현우가 땄던 많은 금메달보다 리우 올림픽에서 딴 동메달이 더욱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선 두 번이나 울었다. 1회전에선 억울해서,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대견해서 울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1회전에서 김현우를 물리쳤던 블라소프는 준결승에서도 스타르체비치에게 초크(목조르기) 기술을 당하고도 석연찮은 편파 판정 끝에 승리한 뒤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우=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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