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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적당히 나쁜 사람들의 사회

중앙일보 2016.08.16 00:40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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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김화진 서울대 교수의 예전 칼럼을 읽고는 계속 곱씹어 온 말이 있다. ‘적당히 나쁜 사람(Moderately Bad Person·MBP)’이다. 김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에 참여하는 평균적인 부정적 인간형을 MBP로 규정한다. MBP는 음주운전은 하지 않지만 급하면 종종 불법 유턴을 한다. 가끔 회삿돈을 개인 용도에 지출하고 주식 내부자거래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며 길거리의 불법 DVD를 구입하기도 하는데 막상 재벌기업의 불법에 대해서는 비난의 열변을 토하고 중국에서 우리 가수의 불법 음반이 대량 유통되는 데 대해 분개한다. 김 교수는 MBP들이 잘못 행동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모든 곳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감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MBP들은 근본적으로는 선량하고 소심한 사람들이다. 규칙 위반에 대한 페널티가 확실해지면 대부분의 MBP는 행동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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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P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현실성에 있다. 법학에는 ‘평균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건전한 상식’ 등의 개념이 판단기준으로 사용되지만 이는 통계적·실증적인 것이 아니라 규범적·당위적 개념이다. MBP는 고전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위선적일지언정 나름의 가치기준과 도덕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종교적 맥락에서 쓴 구절이지만 그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한 말도 있다. “적당히 나쁜 사람은 자신이 크게 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철저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A moderately bad man knows he is not very good: a thoroughly bad man thinks he is all right).” 기독교 사상가 C.S. 루이스의 경구다. 구글의 종전 슬로건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에도 이윤 추구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나쁜(bad) 짓을 할 가능성이 높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최소한 사악(evil)해지지는 않도록 노력하자는 내적 갈등이 있다.

폭염만큼이나 타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분노가 뜨거운 것이 우리 사회다. 권리를 주장하면 밥그릇 지키기라고 욕하고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돌팔매질을 당한다. 완벽하게 고결한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는 한 위선으로 취급받는다. MBP들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덕적 염결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규칙은 엄수하는 것, 각자의 밥그릇을 존중하며 타협하는 것, 건전한 무관심, 그리고 최소한 사악해지지는 말자는 자기성찰이 아닐까.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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