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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드라마 속 멋진 외과 의사의 실상은…

중앙일보 2016.08.16 00:39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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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수술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보수 적어 인기 없어
저개발 국가서 값싼 의사 수입해야 할 날 올지도 몰라

신경외과학

병원에서 펼쳐지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TV 연속극 단골 메뉴 중의 하나다. 드라마 속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선남선녀의 사랑 놀이가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의사 세계에서는 없을 것 같은 조금은 치사한 다툼도 재밋거리다. 하지만 일선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과장된 측면이 많다.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장면도 있지만 흥미 위주의 드라마이니 그러려니 한다.

메디컬 드라마 속 주인공은 외과계 의사인 경우가 많다. 수술이 주는 긴박함이 특별할 뿐 아니라 가운을 휘날리며 바삐 움직이는 외과 의사는 매력 만점이다. 외과계 중에서도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의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생명과 직결되는 뇌나 심장을 다루니만큼 상황 설정이 보다 극적이기 때문이리라.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실에서 외과 의사는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없다. 실제로 젊은 의학도들이 외과 의사를 기피하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등도 오래전부터 지원자가 없어 운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종 진단을 내려 치료의 근간을 마련해 주는 병리과도 전공하려는 사람이 태부족이다. 궁여지책으로 일부 비인기과 지원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가 없다.

전통적으로 의사의 꽃은 외과 의사라는 인식이 있었다. 과거에는 외과계 전공의 지원자가 많아 합격이 쉽지 않았다.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전공의는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는 보람으로 힘든 생활을 웃으며 극복했다.

세월이 흘러 외과계 교수들은 전공의 지원자를 구하러 다니기 바쁘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료 공백은 물론이고 학문의 길을 이어갈 후학이 없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당장 국민건강 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뿐더러 의학의 균형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피부과가 의대생들 사이에 최고 인기과가 된 지 오래됐다. 공부깨나 한다는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줄지어 피부과로 몰려간다. 피부과를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피부과가 의학 발전을 선도하는 분야라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적지 않은 피부과 의사들은 피부병보다는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다. 성형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뻐지기 위한 미용수술이 의료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서울 강남에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전도양양한 의학도의 이런 자세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인턴을 거쳐 원하는 전공과에 들어가야 한다. 피부과 같은 인기 있는 과의 전공의가 되기 위해 재수나 삼수를 하기도 한다. 반면 일부 외과계를 비롯한 비인기과는 여러 가지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전공의 생활이 몹시 힘들고 전문의가 돼도 미래가 밝지 않아서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병원에서 뛰어다니는 외과계 전공의는 선배가 보기에도 딱하다. 시도 때도 없이 앉으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전공의 근무시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했지만 현장에선 지키기가 쉽지 않다. 힘들여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지만 마음껏 뜻을 펴지 못하는 제자를 볼 때 맥이 풀린다.

비인기과 전문의 부족 현상은 벌써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큰 대학병원이 아니면 뇌수술이나 심장수술을 받기 어렵다. 중소 도시에서는 산모가 출산할 병원을 찾기 쉽지 않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저개발 국가에서 값싼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의료가 단순 돈벌이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비인기과의 의사 부족에 대해서는 대안이 필요하다. 어려운 과정을 이수한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비인기과 의사를 양성할 방법이 없다. 칼퇴근하는 의사보다 수술장에서 정신없이 뛰는 의사의 보수가 적다면 더 이상 전공의들을 설득할 수 없다.

정부와 의료계가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야 한다.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의 생명을 다른 나라 사람 손에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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