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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다 보니 지주회사 된 일본중앙은행

중앙일보 2016.08.16 00:01 경제 6면 지면보기
일본 경제가 경제학에 새로운 개념을 제공할 듯하다. 일본은행(BOJ)이 사실상 지주회사가 돼가고 있어서다. 블룸버그 통신은 “BOJ가 도쿄 증시의 굵직한 상장 기업 81곳에서 적어도 5대 주주가 됐다”고 15일 전했다.

양적 완화 후 위험자산까지 사들여
내년 말 상장사 최대 57곳 1대 주주

BOJ가 주요 주주로 등극한 곳은 다채롭다. 미스미전기는 산업용 차단기 등으로 유명하다. 이 기업의 지분 13% 가까이가 BOJ에 넘어갔다. 반도체 회사인 어드밴테스트 지분 11%도 마찬가지다. 또 세계적인 패션회사인 유니클로를 지배하는 패스트 리테일링의 지분 10% 정도를 보유한 곳도 BOJ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설립자인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다. 그는 21%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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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J의 기업 지분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현재 흐름대로 간다면 내년 말에는 BOJ가 1대 주주가 되는 기업이 55~57곳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닛케이225 종목 가운데 4분의 1에 해당한다.

BOJ의 ‘지주회사’ 변신은 양적 완화(QE)의 결과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는 2014년 10월 QE 확대를 선언했다. 그는 “국채뿐 아니라 위험자산까지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바로 상장지수펀드(ETF)다. 이는 금이나 원유, 주가지수 등락을 따라가도록 설계된 펀드다. 펀드 자체가 주식처럼 상장돼 사고 팔린다.

구로다는 한술 더 떠 “ETF 매입 규모를 연간 3조3000억 엔에서 6조 엔으로 늘리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BOJ는 주로 도쿄 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225지수와 수익률이 연동하도록 설계된 ETF를 사들이고 있다. BOJ 지분율은 BOJ가 사들인 ETF에 들어 있는 주식을 비율에 따라 환산한 것이다. 올 6월 말 현재 BOJ가 보유한 ETF는 8조9000억 엔(약 89조원)에 이른다. 블룸버그는 “이는 도쿄 전체 증시의 시가총액 2%에 조금 못미치는 규모”라고 했다.

중앙은행의 ETF 매입은 BOJ가 처음이다. 지금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다. 마치 2001년 BOJ가 QE를 2차대전 이후 처음 시작한 것처럼 새로운 금융통화정책을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그 바람에 일본말 ‘료테키긴유간와(量的金融緩和)’가 통화정책 개념(양적 완화)으로 자리잡았다. 또 1980년대 후반엔 도쿄 부동산 가격 급등이 통화증발로 이어지는 바람에 ‘토지본위제(土地本位制)’란 말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중앙은행 지주회사화’나 ‘중앙은행 투자회사화’란 새로운 용어가 탄생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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