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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부산행’ 흥행 돌풍, 우리는 왜 좀비에 열광할까

중앙일보 2016.08.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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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킹 데드` 스틸컷]

아무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올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단어가 ‘좀비(Zombie)’가 될 줄은. 한국 블록버스터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이 KTX 열차만큼 무서운 속도로 흥행 질주하며 8월 7일, 개봉 19일 만에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첫 ‘1000만 영화’의 탄생이다. 한때 좀비영화의 불모지로 불렸던 한국 영화 시장은 왜 하필 지금, 좀비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좀비가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짚어 봤다.

죽은 자를 노예로 삼는다는 아이티 섬 부두교 전설에서 파생된 좀비는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공포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기점으로 영화·문학 등 대중문화에서 각광받는 괴물로 격상됐다.

한국 영화계에 분 좀비 열풍 분석


그러나 한국 영화 시장은 ‘좀비영화의 불모지’라 불릴 만큼 좀비영화의 인기도 수요도 별로 없었다. 2004년 개봉한 좀비 공포영화 ‘새벽의 저주’(잭 스나이더 감독)는 전국을 통틀어 겨우 30만 명이 관람했고, SF·액션 등 비교적 대중적 색채가 짙었던 ‘레지던트 이블’ 1~3편(2002~2007)조차 편당 50~6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국내에 본격적인 좀비 열풍을 불러일으킨 건 미국 TV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2010~, AMC)의 역할이 컸다. 좀비를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데 공들이기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생존 투쟁에 집중한 이 드라마는, 점점 희미해지던 좀비 장르에 대한 관심을 TV를 넘어 스크린에까지 불러일으켰다.

2013년은 한국 영화계에 좀비 장르의 가능성을 알린 원년이라 할 만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월드워Z’(마크 포스터 감독)는 전 세계적으로 좀비 열풍을 이끌어 내며, 국내 개봉한 좀비영화로는 이례적으로 523만 명이 관람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16년, 좀비를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한국 블록버스터 ‘부산행’이 등장했다. 극 중 주요 공간을 KTX 열차로 설정해 좀비영화의 예산·기술적 한계를 슬기롭게 보완한 이 영화는, 일부 공포영화 매니어들의 고약한 취향의 산물로만 여겨졌던 좀비를 일반 관객에게도 친숙한 존재로 둔갑시켰다.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8월 18일 개봉, 연상호 감독)은 정통 좀비영화의 문법에 더 가까운 작품이지만, 역시 ‘부산행’이 모은 흥행 기운을 적잖이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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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월드워Z` 스틸컷]

‘캐주얼’이 된 좀비

끔찍한 몰골, 지저분한 식습관(?)으로 인해 무섭기보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좀비. 이 괴물이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변신을 꾀한 건 21세기 초 등장한 두 영화 ‘레지던트 이블’(2002, 폴 W S 앤더슨 감독)과 ‘28일 후…’(2002, 대니 보일 감독)를 통해서였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걸신들린 듯 사람의 신체를 뜯어먹는 잔인한 행위는 줄어들되, 좀비들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실적인 신체 훼손에 대한 묘사로 소위 ‘불쾌한 골짜기’ 효과(Uncanny Valley·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가 실제 사람과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는 현상)를 불러일으키던 좀비의 모습은, 공포영화에서부터 점점 다양한 관객층이 소비할 수 있는 복합 장르로 번지며 변주되기 시작했다.

‘부산행’이 좀비물에 앞서 재난영화임을 부각시킨 것처럼, 스릴러(‘나는 전설이다’(2007,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로맨스(‘웜 바디스’(2013, 조너선 레빈 감독)), 코미디(‘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에드거 라이트 감독)), 전쟁영화(월드워Z) 등 다양하다. 심지어 ‘내 친구 파이도’(2006, 앤드류 커리 감독)에서는 친구이자 가사 도우미로 활약하는 좀비를 볼 수 있다.

『폐쇄구역 서울』(네오픽션) 『좀비 제네레이션』(네오픽션) 등 좀비 관련 소설을 쓴 정명섭 작가는 “현대적 좀비의 개념이 정착된 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뱀파이어·늑대 인간 등 오랜 전통을 지닌 괴물들에 비하면 좀비는 아직 한참 어린 ‘신생 괴물’에 불과해 창작자들이 자유로운 해석과 변형을 시도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것. 그만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게 정 작가의 설명이다.

사람의 뇌를 먹으면 그 주인의 기억을 공유한다거나(웜 바디스), 약물로 좀비 치료가 가능하다는 설정(영국 TV 드라마 ‘인 더 플레쉬’ 시리즈(2013~2014, BBC three) 등이 그런 예다. 『좀비 사전』(프로파간다)을 공동 집필한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좀비가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소재로 쓰이면서 자연스레 대중적인 요구에 부합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월드워Z’ ‘부산행’ 같은 좀비 블록버스터는 폭넓은 관객층을 타깃 삼아 대중적인 접근을 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기존 좀비영화의 잔혹 묘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관객도, 이 같은 변화를 통해 좀비를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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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행` 스틸컷]

현대인의 서글픈 초상?

‘부산행’이 정말로 ‘한국형 좀비영화’를 정립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열차라는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계급적 갈등, 한국영화 특유의 가족애 등을 좀비영화 장르에 매끄럽게 녹였다”(정명섭 작가)는 평도 있지만, “한국식 좀비 장르를 개척했다기보다, 그간 국내에서 홀대받아 온 좀비라는 소재를 대중화시킨 것”(김봉석 영화평론가)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쨌거나 ‘부산행’은 한국 영화계에 좀비라는 외래종이 마음 편히 뛰어놀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마련했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데는, 영화에 앞서 꾸준히 좀비에 관심을 쏟아온 국내 웹툰·웹소설의 공헌도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부산행’을 본 관객은 산 사람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드는 좀비 떼의 속도와 위용에 하나같이 ‘압도됐다’고 말한다. 그 기이한 풍경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통상 공포영화를 보면서 단련된 감각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불가항력의 존재에 의해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말하자면 세상의 종말을 미리 체험할 때 느끼는 공포와 불안에 더 가깝다. ‘월드워Z’의 원작 소설 『세계대전Z』(황금가지)의 저자 맥스 브룩스는 “사람들은 전염병·핵 전쟁 등 실제의 위협보다 좀비 같은 초자연적 소재에 더 이끌린다”며 “좀비 이야기는 그들이 궁금해 하는 세상의 종말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좀비는 우리가 마음속 깊이 꽁꽁 묻어 둔 채 일부러 파헤치지 않은 불안과 불신을 상징한다. 금융 위기·대규모 산업 재해·이상 기후 현상 등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을 만났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될 당혹감 말이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을 겪은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좀비 떼에게서 우리 자신, 즉 현대인의 초상을 발견하기도 한다. 좀비들이 생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대형 쇼핑몰에 모여드는 ‘시체들의 새벽’(1978, 조지 A 로메로 감독)처럼, 좀비영화는 주체적 사고가 결여된 채 매스미디어와 광고에 부화뇌동하는 대량 소비 사회의 현대인에 대한 메타포로 자주 응용돼 왔다.

‘워킹 데드’ 시리즈는 좀비 자체를 집중해 묘사하기보다, 극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점점 좀비보다 더 잔혹하게 변해 가는 인간성을 깊숙이 파고든다. 좀비가 점거한 폐쇄 공간 안에서 소시민들의 사회 실험을 보여 주는 ‘부산행’은 더욱 노골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낸다. ‘서울역’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노숙인·가출 소녀 등 ‘집이 없는’ 주인공들의 계급적 괴리감을 극대화시키는 고급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에서 벌어진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의 말미에서 현대인들을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존재로 설명한다. 이는 ‘부산행’에서 “(좀비를) 끝없이 노동하는 존재이자, 괴물보다는 어딘가 아픈 환자처럼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는 연 감독의 설계와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좀비는 이제 악몽이자 판타지의 대상으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현대인을 상징하는 요소로 무덤에서 돌아왔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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