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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영국·한국 사이에 ‘개고기 분쟁’은 피해야 한다

중앙일보 2016.08.13 03:00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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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영국 의회가 9월 12일 한국 개고기 식용 문제 논의
온 인류가 개고기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오만

전 서울 특파원

개고기 식용에 반대하는 영국인 동물권리운동가 두 명이 몇 주 전 광화문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여느 광화문 시위와 마찬가지로 뉴스거리가 됐다. 그들의 임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나는 개 도살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특정의 ‘비(非)멸종위기 동물’만을 보호할 논리적 이유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개를 ‘인간과 가장 친한 친구’, 충성스럽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생물 등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개고기 금지를 강경한 도덕적 표준으로 전 인류가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얼마간 오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 시위자들은 채식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기보배 선수가 개고기를 먹었다고 ‘미개인’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소·돼지·닭이나 개나 우리들의 미각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말을 고귀한 친구로 여기지만 말고기는 프랑스에서 제주도까지 세계 모든 곳에서 논란의 정도가 훨씬 덜하다. 힌두교인에게 소는 단순히 친구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지만 내게 햄버거를 먹지 말라고 강요한 힌두교인은 없다. 나는 돼지고기를 안 먹는 유대인·무슬림 친구도 있다. 돼지가 동물 서열에서 윗자리를 차지해서가 아니라 돼지는 ‘부정하다’는 종교적 믿음 때문이다. 그 어떤 유대인·무슬림도 삼겹살을 먹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잔혹한 개 도살 방식이 잘못됐다고 믿는다. 개 도살 말고도 동물학대가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여러분이 닭고기를 먹는다면 여러분 또한 동물학대에 간접적으로 참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개가 닭보다 더 귀엽고 충성스럽더라도 둘 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닭의 사육·도살 방식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느끼는 나는 어쩌면 채식주의자가 되면 그만이다. 사실 나는 채식주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나는 예전보다 붉은 고기를 훨씬 덜 먹지만, 철저히 금육(禁肉)하거나 고기를 포기하는 것은 내 능력을 넘어선다. 나는 약하다. 현재 내 목표는 고기 섭취를 점차 줄여나가 고기를 매일이 아니라 가끔씩 먹는 것이다.

모든 세대는 특정 관념이나 습관이 도덕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전에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심지어는 칭찬할 만한 행동에 대해 갑자기 이론(異論)이 제기되고 토론이 벌어진다. 결국 그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100년 후 절대적으로 배척될 현재 관습의 목록을 만들라고 한다면 나는 목록 꼭대기에 도살을 올려놓겠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생산한다는 아이디어가 처음엔 ‘웩(ugh)’이라는 반응을 부르겠지만 주류(主流)가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하고 희망한다.

결국 나는 약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다. 나는 채식주의자인 광화문 시위자들의 항의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자신의 가치와 일치하는 삶을 살려는 그들을 존경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고기 식용 금지를 ‘한국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는 청원운동이 전개됐다. 나는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이 청원운동은 개고기 식용을 영국 정부 개입이 필요한, 자명하게 부도덕한 관습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내가 특정 한국 정당을 비판한다면, 이를 한국에 대한 영국의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어쨌든 나는 나 말고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 의견을 표출하는 한 개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정부가 다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듣는 입장에서는 비판이 ‘우리들은 당신들보다 지각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현재 청원 서명자가 10만 명을 넘었다. 영국 의회는 의무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논의 날짜는 9월 12일이다. 나는 영국 정부가 한국에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한국 정부도 영국 정부에 뭔가 중단하라고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렉시트? 선정적인 언론? 유튜브의 ‘영국 남자’? 후보가 몇몇 있을 것이다.

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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