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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가깝고 깨끗한 화장실 어딨지? 전국 1만 개 위치 한눈에

중앙일보 2016.08.13 00:58 종합 13면 지면보기
# 인천 송도에 사는 대학생 유호균(24)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출 때마다 화장실 이용에 적지 않은 불편을 겪었다. 송도 신도시에는 아직 공용화장실이 충분치 않은 데다 일반 화장실은 문이 잠겨 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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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해커 코드포인천이 10일 저녁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선택(39·인천광역자활센터 직원), 이재호(18·고교생), 유홍성(50·인하대 교수), 오시영(28·프리랜서), 유호균(24·대학생), 화지민(33·개발자)씨와 매슈(32·영어강사). [사진 장진영 기자]

컴퓨터공학도인 유씨는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섰다. 구글 지도 데이터와 코딩 기술 등을 활용해 ‘화장실을 찾아줘’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안드로이드용)을 만들어 무료로 공유한 것이다. 이 앱을 켜면 송도뿐 아니라 전국 1만여 개의 공용화장실 위치가 표시되고 이용자 후기를 통해 어느 화장실이 깨끗한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유씨가 만든 앱을 사용한 친구들은 “이젠 화장실이 급할 때 앱부터 열어보게 된다”고 말한다.

생활에 유용한 앱 만들어 공유하는 ‘시빅해커’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기승을 부려 온 국민이 불안에 떨던 지난해 5월. 온라인에선 “어느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더라” 등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괴담까지 떠돌았다. 이때 등장해 괴담을 상당 부분 잠재운 것이 ‘메르스맵’이었다. 정부 발표와 확인된 자료만을 활용해 메르스 감염 환자들이 거쳐간 걸로 추정되는 병원을 정리한 지도였다. 당시 일주일 동안 500만 명이 찾아볼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지도 역시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무료로 공개한 것이다.

이처럼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시민이 직접 사회·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시빅해킹(Civic hacking)’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민운동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빅해킹은 ‘공공, 시민’이란 뜻의 ‘시빅’과 ‘정보를 빠르게 취득해 창의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의 ‘해킹’이 결합한 단어다. 주로 공익성이 큰 앱이나 사이트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활동을 하며 이에 참여하는 이들을 ‘시빅해커’라고 부른다.

“왜 좋은 해커가 좋은 시민을 만드는가”를 주제로 2014년 테드(TED)에서 강연한 캐서린 브레이시는 “시빅해커들은 정부에 대한 실망을 불평에서 끝내지 않고 앱 등을 개발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시민운동과는 차이가 있다”고 소개했다.

IT에 친숙한 2030세대가 주도하는 시빅해킹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우선 개인적인 활동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개인이 일상생활에 유용한 앱이나 사이트를 개발해 일반에게 무료 제공하는 방식으로 2009년 공개돼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서울버스앱’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유주완씨가 만든 이 앱은 정류소별·노선별로 버스의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덕에 1000만 명 넘는 시민이 이용했다. 이 앱은 카카오에 팔려 현재는 ‘카카오버스’로 명칭이 바뀌었다.

반면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움직임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코딩(coding)’의 코드를 따서 이름 붙인 ‘코드포서울’ ‘코드포인천’ 등이 국내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 모임엔 10대 고교생부터 40대 대학교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한다. 지난해 ‘코드포관악’을 이끌었던 이중식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코딩이 보편화되면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용해 공익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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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생긴 코드포인천은 주로 송도에 살면서 겪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매주 수요일 저녁 모임을 갖는다. 애초 2014년 만들어진 코드포서울을 통해 만났지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인천의 문제에 집중하고 싶어 코드포인천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화장실을 찾아줘’를 만든 유호균씨가 이 팀의 공동리더다.

지난 3일 열린 모임에선 10명가량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했던 오시영(28)씨는 “해커라고 하면 개인정보를 훔치는 범죄자 같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원래 해킹이란 기술을 빠르게 취득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 의제는 송도의 악취였다. 논술강사인 한인선(33)씨는 “송도는 남동공단의 폐기물 때문에 곳곳에 악취가 심해 코를 막고 길을 걸어야 할 정도”라며 해결책 모색을 제안했다. 1시간30여 분간의 토의 끝에 악취가 특히 심한 장소를 구글 지도에 표시해 시민들이 이들 장소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알람앱을 개발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코드포서울은 요즘 국회의원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 순위를 매긴 정치인 맛집 지도 ‘존맛국회’를 개발 중이다.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2014년 국회의원 후원금 지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글 지도에 국회의원들이 많이 가는 음식점과 지출 금액을 표기한다. 조사 결과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가는 음식점은 여의도에 위치한 한정식집 ‘가시리’였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는 8만원이다.

제작에 참여한 조용현(46)씨는 “국회의원들이 후원금을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했다”며 “‘김영란법’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국회의원의 활동을 감시해 보자는 의도는 김영란법과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직적인 시빅해킹의 시초는 2009년 미국에서 설립된 ‘코드포아메리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출판사에서 일하던 제니퍼 팔카가 ‘코딩을 통해 정부를 바꾸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로 프로그래머들이 주축이다. 그는 흩어져 있던 시빅해커들을 처음으로 조직화했고 ‘시빅해킹’이란 용어도 공식화했다.

이들은 2011년 미국 보스턴에 내린 폭설로 인해 전신주가 넘어져 정전이 속출하고 곳곳에서 화재까지 발생하자 ‘소화전 입양하기(Adopt a Hydrant)’란 앱을 만들었다. 구글 지도에 소화전 위치를 표시한 뒤 인근 주민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하나씩 선택해 눈을 치우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소화전이 눈 속에 파묻힌 탓에 화재 시 사용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평가된다. 이 서비스는 쓰나미나 화재 등 각국의 재난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현재는 ‘코드포올(code for all)’이란 이름하에 유럽과 일본 등 약 11개국 100여 도시에 시빅해킹 커뮤니티가 있다. 특히 미국에선 시빅해킹이 상당히 활발하다. 뉴욕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한모(25)씨는 “뉴욕이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시빅해킹 모임이 아주 보편적”이라며 “젊은이 사이에 시빅해커를 동경하는 문화가 있고 천재적인 해커를 영웅(hero)으로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시빅해킹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빅해킹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활동”이라며 “엄청난 도덕적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한다기보다 정보 공유 시대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나타나는 라이프스타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네이버·다음 같은 대형 포털이 데이터를 독점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활용 가능한 공개 데이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시빅해킹이 더욱 확산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S BOX] 쓰나미 경보기 배터리 도둑 막아 주고, 홍수 때 배수구 청소까지

시빅해킹은 재난 대비와 복구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2012년 여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선 쓰나미 경보기를 입양하는 앱이 관심을 모았다. 쓰나미가 자주 발생하는 호놀룰루에선 경보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경보기 배터리를 훔쳐가는 사람이 많은 탓에 정작 필요할 때 제 기능을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자 호놀룰루 시청의 IT부서 직원이 2011년 코드포아메리카가 만들어 보급한 ‘소화전 입양하기’ 앱을 벤치마킹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경보기를 ‘입양’해 책임지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후 배터리 도난 건수가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오클랜드와 시애틀에서는 ‘배수구 입양하기’ 앱으로 바뀌어 활용됐다. 역대급 폭설이 종종 발생하는 시카고에서는 사람들이 인도에 쌓인 눈을 청소한 뒤 이를 등록하는 앱이 보급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현에 있는 인구 2000명의 소도시 나미에는 40m가 넘는 쓰나미가 몰려와 500채 넘는 집이 파괴됐고 인구의 30%가 지역을 떠나 마을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를 맞았다. 시 당국은 코드포재팬에 도움을 청했다. 코드포재팬은 일본 전역으로 흩어진 주민들을 일대일로 만나 아이디어를 모았다. 시의 지원으로 주민들에게 태블릿PC를 배포하고 여기에 마을 소식을 알리는 다양한 앱을 깔아 이용하도록 했다. 현재 나미에 지역의 복구는 끝나지 않았지만, 타지에 사는 주민들도 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마을 공동체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글=김유빈 기자 kim.yoovin@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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