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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너의 죄를 사하노라, 광복절에

중앙일보 2016.08.09 18:34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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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숟가락으로 6년 동안 밤낮없이 땅을 파 탈옥에 성공한 무석(차승원). 오매불망 그리던 담장 밖 세상으로 나왔는데 신문에 실린 특사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당당하게 광명을 찾으려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있어야 한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코미디 영화 ‘광복절 특사’(2002년)에는 그 뒤 무석과 탈주 공범 재필(설경구)이 감방으로 귀환하는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달에 대법원 재판을 포기하고 형 확정을 받아들였다. 벌금 252억원도 곧바로 냈다. 광복절 특사에 기대를 건 ‘도박’이었다(형이 확정되지 않은 수형자는 사면될 수 없다). 만약 그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는 특사에 얽힌 특별한 운명을 보여주는, 역사적 일화로 기록된다.

광복절은 누군가에게는 더 기쁜 날이 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더없는 실망을 안겨주는 날이 된다. 지난해에는 6572명이 특별사면을 선사받았다. 한 대기업 회장은 성경을 들고 교도소에서 나왔다. 운전면허 효력 정지 등 220만6924건에 대한 행정제재가 특별감면되기도 했다. 대통령만 줄 수 있는 이 시혜는 제왕적 권력의 유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사면을 한 기록이 320여 차례 나온다. 1년 반에 한 번꼴로 있었던 셈이다. 연산군·중종·선조·광해군 때는 특히 많았다. 각기 스무 차례 이상 단행했다. 불안한 왕권을 지탱하기 위해 자주 은전을 베푼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에는 자연재해 발생 뒤에 사면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대왕은 1425년 대가뭄 직후에 “잘못은 진실로 내게 있다. 혹시라도 형벌이 중도를 잃어서 화기(火氣)를 상하는 일이 있었는지 두려움을 이길 길이 없도다”며 대사면령을 내렸다. 실록을 보면 임금은 종종 신하의 반대에 부닥쳤다. 중종실록에는 “필시 사면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범죄자가 많아졌다. 왕법의 실수는 자주 사면하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사간원이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는 장면이 있다. 그러다 현종 이후로는 임금이 신료들과 사면에 대해 의논하는 모습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 일방통행으로 결정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난해까지 95차례 특별사면이 있었다. 당 태종은 1500년 전에 “사면은 소인의 다행, 군자의 불행”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밝혔듯 남발되는 사면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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