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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청년과 청년수당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2016.08.09 18:23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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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어른들은 훈계를 한다. ‘낚시법을 가르쳐야지 물고기를 잡아주면 안 된다.’ ‘젊은이에게 공짜 점심은 독이다.’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그게 세상살이의 다는 아니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려면 낚싯대 정도는 사주고, 아사 직전의 젊은이에겐 밥부터 먹이는 게 어른이 할 일이다. 지금 사정을 모르는 옛 말씀을 들이대며 ‘최저시급 6030원’에 목매는 젊은이들에게 시절 모르는 훈계를 하는 건 어른이 할 일이 아니다.

요즘 보건복지부가 직권 취소한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둘러싼 각종 우려와 질타는 어른으로서 온당한 것일까. “일도 안 하고 월 50만원이 생기면 흥청망청 쓸 수 있다”거나 “일하려는 의욕보다 공짜를 바라는 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걱정.

청년수당은 부모에게 손 벌릴 처지가 안 되는 가계소득 6분위 이하에 직장도 없이 구직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의 신청을 받아 3000명에게 2~6개월간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번 신청자들의 사연은 이랬다.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데 수당을 받는 기간만이라도 알바를 쉬며 시험준비에 매진하고 싶다. 알바 하나 쉬고 그 시간에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다….

예산 낭비 비판도 한몫 거든다.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은 하고 싶으면 예산 말고 박원순 서울시장 개인 돈으로 하라고 질타했다. 한 해 청년정책예산은 2조원대. 청년 직접 지원이 아니라 고용촉진지원금, 청년취업인턴제 등 청년들을 고용하는 사업주들에게 지급되는 형태가 주류다. 고용 통계엔 도움이 되지만 청년 개인의 향상에는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예산. 게다가 제대로 쓰이는지도 알 수 없다. 최근 충북참여연대는 충북도와 시·군의 청년정책사업 현황을 파악한 결과 총예산 162억원 중 113억원이 출산장려금 지원 등 엉뚱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연 청년수당 예산 90억원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금액일까. 이번 추경예산안에 농식품부는 해외 시식회 등 농식품수출홍보사업비로 113억원을 편성했다. 예산 확정 후 시급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생겼을 때 편성하는 추경에 이런 한가해 보이는 사업예산까지 편성하는 나라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 청년인턴제의 지난해 예산 1948억원 중 1849억원만 썼다. 99억원이 남았다. 우리 예산 규모로 볼 때 90억원은 무리한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청년이 아니라 정치다. 박 시장의 대권 욕심을 의심하는 정치권의 표(票)퓰리즘 공방. 박 시장의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나 시장에 대한 정치적 의심 때문에 이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의 의도까지 매도당해선 안 된다. 복지부는 표면상 절차의 하자를 들었다. 사회보장기본법상 협의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데 서울시와 복지부는 3월부터 협의를 진행했고, 서울시는 복지부가 제시한 세 가지 수정안을 반영해 계획안을 다시 만들었다. 6월께엔 보도자료 배포만 남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출입기자들도 “합의된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집혔다. 내면적 이유는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직접 돈을 주는 복지에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복지를 결합한 청년정책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런 정책은 다른 나라에서도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2010년대 이후에나 도입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도 고용 유도와 직접 재정지원을 하는 복지를 연계한 여러 정책을 실험 중이다. 청년정책에 대한 선행 모델이 없으니 우리도 여러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 있는 정책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청년수당도 한번 시도해 봄직한 사업 모델이다.

개인당 많아야 총 300만원의 지원금이 우리 청년들을 타락시킬 거라고 하는 건 기우 아닐까. 이 정책이 시간에 쫓기는 가난한 청년들의 숨통을 잠시 틔워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잠시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면 안 될까. 어쨌든 청년들의 가난마저 정치공방의 소재가 되는 나라가 슬프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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