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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댓글 원조는 조선시대 세책본(대여책) 낙서들(?)!

중앙일보 2016.08.09 09:51
조선시대에도 댓글(?)이 있다, 없다.
'있다'가 정답이다.

세책본(일종의 대여책)에는 책을 빌려보았던 대여자들이 낙서 형태로 자신만의 다양한 의견(?)을 책에 남겼다.

낙서는 보통 세책본 표지 앞 뒤와 본문의 위 아래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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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책 주인에게 대여료가 비싸다는 읍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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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재미는 있으나 잘못된 글자와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라는 지적형

책 대여자가 여러가지 의견(?)을 책에 남겼는데 책 주인에게 '대여료가 비싸다'는 읍소형(사진 1)이 있는가 하면,'재미는 있으나 잘못된 글자와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라'는 지적형(사진 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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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이 남녀는 책주인의 고조할아범 도야지 아범`이라며 책 주인의 조상까지 들먹이는 욕설형

어떤 이는 '이 남녀는 책주인의 고조할아범 도야지 아범'이라며 책 주인의 조상까지 들먹이는 욕설형(사진 3)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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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책에 그림으로 흔적을 남기는 화가형

또한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책에 그림으로 흔적을 남기는 화가형(사진 4)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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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국악인 유창(무형문화재 41호)이 서울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송서`(음악적인 멋을 가미하여 글을 읽는 것)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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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직원들이 세책점을 재연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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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세책점으로 추정되는 사진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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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조선시대 세책점 위치도

세책본을 빌려주는 세책점(貰冊店·사진7)은 18세기경 조선에 볼거리, 즐길거리에 대한 수요층이 두터워졌고 경제적 여유가 늘면서 소설책을 사거나 빌려 보고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겨났다. 당시로는 값비싼 소설책에 대한 시장의 대응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다.

우리나라에 세책점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다만 18세기 인물인 채제공(1720~1799)가 이덕무(1741~1793)가 세책본의 폐해를 거론한 기록이 있다.이덕무는 '사소설'에 "집안일을 팽겨쳐두고, 여인의 일을 게을리하여 버려두고, 그걸 돈을 주고 빌려보기에 이르렀으며, 깊이 빠져서 집안 재산이 기운 자도 있다"라고 기록했다.이와 같은 세책본 대여점이 당시에 재동, 교동 등 한양 도성 안에 15곳, 청파, 아현 등 도성 인근 13곳(사진8)에서 성업 중이었다.

한편 200년 전 조선 후기 새로운 도시문화의 트랜드로 자리 잡았던 '소설읽기 열풍'의 현장을 '낙서'의 형태로 만나볼 수 있는 고문헌 기획전시 '조선의 독서열풍과 만나다'가 8일부터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전시실에서 열렸다(사진5).

이번 전시는 1부 '상업출판이 움트다', 2부 '소설의 열풍 속으로', 3부 '세책거리를 거닐다'(사진6), 4부 '소설 대중화의 주역, 방각본', 5부 '따지본의 등장, 세책점을 기억하다' 등 5가지 주제관으로 구성됐다.

조선시대 낙서(?)등 고문헌과의 시간여행은 11월 3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사진·글=오종택 기자 oh.jongta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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