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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파원J] 한국 양궁, 2위 미국한테 배워야 할 점

중앙일보 2016.08.09 05:50
톡파원J 윤호진 기자입니다.
 
7일(현지시간) 저는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 양궁이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긴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이었죠.(8일엔 여자 양궁이 또 하나의 승전보를 전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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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첫 금메달 낭보를 전한 한국 남자양궁팀의 김우진(왼쪽부터)ㆍ이승윤ㆍ구본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우리의 결승 상대는 세계랭킹 2위 미국이었습니다. 그 3명의 궁사(브레이디 엘리슨, 제이크 카민스키, 자크 가렛)를 8강전부터 봤습니다. 4강전에서 중국을 격파할 때는 그들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잘못하면 런던 때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한국 남자 양궁은 런던 때 4강전에서 미국에게 져 동메달을 따는데 그쳤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이날도 잘 쐈습니다. 경기 운영도 좋았고, 마인드 컨트롤도 훌륭해 보였습니다. 양쪽 관중석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미국인들의 응원도 든든하게 받고 있었죠. 미국인들이 양궁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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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미국 팬들이 자국 양궁 대표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윤호진 기자

결과는 우리나라의 완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속 내용을 알고 나니 미국의 2등이 우리 대표팀의 성과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톡파원J가 경기 직후 미국 대표팀을 이끄는 한국인 이기식 감독(지금은 미국 시민권자이지만~)과 단둘이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경기장 믹스트 존(인터뷰가 허락된 공간)에 들어온 이 감독님은 활짝 웃으며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아니, 한국의 승리를 칭찬했습니다.
 결과가 아쉬우시겠어요.
이렇게 쏘면 이길 수가 없어요. 완벽했잖아요. 미국 대표팀은 한국을 상대로 이번 대회 최고점을 쐈어요. 그런데 한국은 더 잘 쐈어. 그럼 못이기는 거지. 이렇게 하면 어느 누구도 못 이겨요.
그래도 선수들은 실망이 클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인정해야죠. 인정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린 정말 잘 한 거예요 . 프로 대 아마의 게임이었는데.
프로 대 아마요?
네, 미국은 양궁이 비인기종목이잖아요. 한국처럼 실업팀도 없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 선수들은 프로죠. 미국 선수들은 다 각 자 다른 직업을 갖고 살다가 대회를 위해 모여 연습을 하고 나오는 거예요. 아마추어고, 정말 좋아서 하는 거죠.
그럼 배고픈 선수들인가요?
그렇게 볼 수 있죠. 한 명은 대학교를 자퇴해서 구직 중이고, 한 명은 활을 고쳐 그걸로 벌어먹고 살아요. 그나마 브레이디 엘리슨은 미국 내에서 유명해서 기업 스폰서도 받고 제법 돈을 벌죠. 얘네들, 다 아마추어에요. 그러니 한국 상대로 이정도면 정말 잘 한 거죠.
이기식 감독은 이 대화를 하는 내내 웃었습니다. 정말 아쉬움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요~ 톡파원J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인기 없는 스포츠인데, 오늘 응원단은 엄청 많던 걸요. 성조기 들고 양쪽 스탠드에서 "유에스에이(USA)"도 크게 소리치고요 .
다 가족이에요. 선수들 가족. 가족들이 비행기 타고 다 응원 온 거에요. 그래서 응원이 더 밀도 높은 거죠.
그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미국이라고 하면 뭔가 우리보다 나은 점이 더 많을 것 같고,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더 풍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한국에서의 양궁도 사실 올림픽 같은 큰 대회가 아니고는 잊혀진 채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종목입니다. 미국의 궁사들은 '스포츠 천국'인 미국에서 어쩌다가 활을 잡게 된 걸까요. 또 그 외롭고 독특한 운동을 선택한 아들을, 조카를, 손자를, 삼촌을 위해 리우를 찾은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가끔 TV에서 고교 축구를 보면 관중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주머니들을 보곤 하는데, 딱 봐도 가족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 하나하나를 그렇게 간절하게 두 손 모아 보는 팬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런 장면들이 미국 양궁 팀에 오버랩 됐습니다.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성조기를 흔들었는지, 함께 온 꼬마 남자, 여자 아이들이 성조기 안경을 쓰고 그렇게 열심히 응원했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한국의 1등에는 여러 가지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궁사 3명이라고 애환과 곡절이 없을까요. 하지만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 있는 스포츠에서는 패자를 통해서도 감동 스토리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와 대결을 펼친 '적'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리우 취재팀=윤호진ㆍ박린ㆍ김지한ㆍ김원 중앙일보 기자, 피주 영 일간스포츠 기자, 이지연 JTBC골프, 김기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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