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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태환이가 물 위에 누워 눈물 흘릴 때 짠했지”

중앙일보 2016.08.06 01:55 종합 4면 지면보기
“아프지 말고, 몸 관리 잘해야 한다.”

해설위원으로 제자 만난 노민상 감독
약물 징계받고 온 박태환 다시 품어
‘수영교실’ 등록시켜 매일 훈련 치유
“내 묘소에 꽃이라도 들고 오겠죠”
선발전 선처 호소, 담배도 다시 물어
“아프지 말고 몸 관리 잘하고” 당부만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27)의 스승 노민상(60) 전 대표팀 감독이 5일 브라질 리우에서 제자를 만났다. TV해설위원으로 리우 땅을 밟은 노 감독은 올림픽 수영 경기가 열리는 아쿠아틱 센터를 찾아 박태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위에도 노(老) 감독은 10분 넘게 밖에 서서 제자를 기다렸다. 막상 만남이 이뤄지자 그는 “아프지 말고” “몸 관리 잘하고”라는 말만 반복했다. 박태환은 7일 오전 2시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 출전한다. 결선은 오전 10시30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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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박태환이 리우 아쿠아틱 스타디움에서 훈련을 마친 뒤 스승 노민상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노 감독이 박태환을 처음 만난 건 1996년이다. 당시 박태환은 천식을 앓는 초등학교 1학년 꼬마였고, 노 감독은 수영계 주류에서 한 발짝 떨어진 무명 지도자였다. 어린 시절 박태환을 이야기할 때 노 감독의 표정은 밝아졌다. 노 감독은 “태환이는 심성이 곱고 재능도 뛰어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외국 원서를 구해다 독학으로 자신만의 지도법을 개척한 노 감독의 열성적인 지도 아래 박태환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직전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박태환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을 차지하며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박태환은 2007년 노 감독의 품을 떠났다. 박태환은 선수촌 훈련 대신 전담팀을 꾸려 개인훈련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0년간 이어 온 사제의 관계도 흠집이 났다. 노 감독은 “지금 돌이켜보면 내 아집이었다”고 고백했다. 박태환은 11개월 만에 노 감독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격의 순간을 함께 했다.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 전 종목 예선 탈락으로 나락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으로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2011년 노 감독이 사퇴할 때까지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받아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징계를 받았다. 믿었던 사람들조차 다 떠나갔을 때 박태환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옛 스승을 찾았다. 노 감독은 제자를 마음으로 품었다. 그는 “나중에 내 묘소에 꽃이라도 들고 찾아오지 않겠느냐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노 감독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노 감독이 서울 올림픽수영장에서 운영 중인 ‘노민상 수영교실’에 박태환이 성인회원으로 등록하는 방식이었다. 노 감독은 “태환이가 처음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물 위에 누워 수영장 천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 가슴이 짠했다”고 밝혔다. 세계 수영 챔피언은 20여 명의 아이들과 같은 수영장에서 매일 헤엄을 쳤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해 갔다. 노 감독은 “그제야 태환이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징계가 해제된 뒤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 자격을 놓고 대한체육회와 지루한 공방을 벌이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갔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노 감독은 지난 4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무릎을 꿇은 뒤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2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던 노 감독은 답답한 마음에 끊었던 담배도 다시 꺼내 물었다. 노 감독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태환이가 다시 올림픽에 나서야 한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각종 규정을 달달 외웠다”고 했다.

지난달 8일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의 길이 열렸다. 노 감독은 “리우 올림픽에선 메달 색깔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아이(박태환) 자체가 역사인데….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노 감독은 “이번 대회가 열리는 수영장이 전혀 낯설지 않다.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태환이가 기적의 막판 스퍼트로 자유형 400m에서 우승했을 때 경기를 치렀던 멜버른 수영장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좋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리우 글·사진=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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