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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불평등이야

중앙일보 2016.08.06 00:26 종합 1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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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김영사
328쪽, 1만4800원

불평등 이슈를 열정적으로 제기해온 대표적인 미국 진보학자 로버트 라이시의 신작이 번역·출간됐다. 그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낼 때인 1994년 번역된『국가의 일』을 시작으로 『부유한 노예』 『슈퍼자본주의』등 그의 책은 꾸준히 한국에 소개됐다. 재미있는 것은 라이시의 ‘한국에서의 효용’이 보수에서 진보 쪽 텍스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국가의 일』이 국내 번역된 시기는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주창하던 때였다.

이 책은 글로벌화된 경제에서 ‘우리’의 개념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파고들었다. 제 나라밖에서 더 많이 고용하고 세금도 더 내는 기업이 왜 ‘우리’ 기업인가. 국가의 테두리 안에 남아있는 것은 결국 그 나라 국민뿐이며, 나라의 경쟁력은 결국 국민의 기술력과 통찰력이라는 주장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국내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외국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의 역자들이 당시 재무부 사무관들이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이후 출간된 책들은 불평등을 파고든 경제비판서들이다. 『슈퍼자본주의』에선 자본주의가 강해져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을 경고했다. 공정한 경쟁 규칙 같은 민주적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기업과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와 투자자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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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샌더스를 지지해 샌더스 열풍을 주도했다. [사진 김영사]

신작 역시 라이시의 최근 저술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직업 안정성이 흔들리고 임금은 줄거나 게걸음을 치고 있으며, 불평등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대기업, 거대은행, 부자들이 정부를 쥐락펴락 하기 때문이며, 이에 맞서기 위해 대항세력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순진한 환상이며, 빈자나 중산층이 부자가 되는 계층의 사다리는 사라졌다고 분석한다. 전 국민에 기본 최저소득 제공, 중간급여의 절반까지 최저임금 인상 등의 대안도 제시했다. 보수가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뉴욕타임스(NYT)가 서평에서 지적했듯이, 1%와 자유시장, 정치에 대한 라이시의 분노가 지겨울 정도로 자주 반복되는 게 흠이다. NYT는 행동을 촉구하는 라이시를 ‘현대의 토마스 페인’에 빗댔다. 토마스 페인은 『상식』에서 미국의 독립을 적극 주장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지만 당시엔 너무 진보적이어서 시대가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요즘 경제부처 관료들이 『국가의 일』을 번역했던 열정으로 이 책을 참고할 것 같지는 않다.
 
[S BOX] 샌더스 지지한 빌 클린턴 경제교사 라이시

로버트 라이시는 제럴드 포드·지미 카터 행정부에 정책을 조언했다. 본격적으로 정부 일을 맡은 것은 빌 클린턴 1기 행정부 때 노동장관으로 입각하면서다. 라이시는 클린턴과 같은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 출신이다. 클린턴이 당선되자 정권 인수팀을 이끌며 경제정책을 입안했다.

입각과 마찬가지로 장관 사임 때도 화제였다. 그는 4년간 장관으로 지낸 뒤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사표를 썼다. 올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막판에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배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 샌더스는 “상위 1%에 집중되는 경제 시스템을 바로 잡고 무너진 중간계층과 다수를 위한 자본주의를 다시 세울 수 있는지 심도 있게 파헤쳤다”며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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