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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워킹맘과 전업맘의 ‘고민 평준화’

중앙일보 2016.08.06 00:11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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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문화부 차장

‘인생의 평준화 법칙’이란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다. 40대에는 외모, 50대에는 지성, 60대에는 재력, 70대에는 건강의 평준화가 이뤄진다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에 ‘고민 평준화’가 이뤄지는 시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가 본격적인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면 엄마가 24시간 집에 붙어 있어도 해결 못하는 문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퇴근해 귀가할 때마다 현관 앞으로 달려 나와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곤 했다. 하루의 피곤을 잊게 만든 것은 물론 내 자존감까지 훌쩍 키워준 환영 의식이었다. 초등 1, 2학년 때까지 그렇게 오매불망 엄마를 그리워했던 애들이 중2쯤 되자 방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노크를 하면 “왜 그러시냐”는 목소리만 들린다. “할 말이 있다”고 하니 “밖에서 말씀하시라”는 당돌한 대답이 돌아온다.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린다”는 구차한 핑계를 대고서야 겨우 대면의 기회를 얻는 처지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로 독립해버린 아이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붙들고 게임과 힙합과 웹툰에 빠져버린다. 인간관계는 친구 중심으로 돌아간다. 친구들과 쉴 새 없이 카톡을 주고받으며 히죽거리는 모습을 보면 ‘저래서 언제 공부하냐’는 걱정이 자동으로 생긴다. 걸핏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중3 아들의 현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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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3인 딸은 이제 사춘기 증세에선 벗어난 것 같다. 하지만 더 무서운 입시 스트레스가 현실로 다가왔다. 대학 입시의 중심이 수시로 옮겨가면서 ‘중간고시’ ‘기말고시’란 말이 생길 정도로 학교 시험이 중요해졌다. 시험 기간마다 수능 때만큼의 압박감에 시달린다. 또 각종 수행평가에 쫓겨 수면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안쓰럽고 애가 달지만 뭘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

이런 문제들은 이제 내 직장생활과 별 상관이 없다. “엄마들 네트워크에 끼지 못해 아이가 생일 초대를 못 받았다”는 식의 고민거리에선 졸업한 셈이다. 얼마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업맘인 아들 친구 엄마를 만났다. 두 정류장 거리쯤 떨어져 있는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차 시동까지 걸었는데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해 그냥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엄마로선 10여 년을 이어온 ‘라이드 인생’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라는 그의 아들 ‘험담’은 내 레퍼토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또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워킹맘이어서 특별히 더 어려운 일은 분명 점점 줄어든다. 그러고 보면 직장일도 마찬가지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일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더 커지지만 육아가 직장생활에 방해가 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워킹맘과 비워킹맘 사이에 ‘평준화’가 이뤄지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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