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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불안하다

중앙일보 2016.08.06 00:10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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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생각보다 취약한 게 민주주의
2000년대 중반부터 후퇴 현상
무관용 민주주의는 속빈 강정
경각심은 안보·민주주의 조건

(UCSD) 석좌교수

지금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은 좋지 않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부유럽 민주화 이전에도 민주주의 국가의 수는 확장되기 시작했다. 남부유럽·라틴아메리카·동아시아의 체제 변화는 민주화 물결을 이루었다. 이 물결에는 1986년 필리핀과 87년 한국에서 달성된 극적인 민주화도 포함됐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민주주의는 정체하거나 심지어 후퇴하기 시작했다. 태국의 경우처럼 일부 사례는 구식의 군부 쿠데타가 권위주의 통치의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민주주의의 퇴보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행정부 수장이 점진적으로 권력을 축적한 결과였다. 선명한 사례는 푸틴의 러시아이지만 불행히도 민주주의 후퇴 현상은 보다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헝가리·볼리비아·에콰도르·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에 이어 최근 필리핀이 추가됐다. 필리핀의 신임 대통령은 절차를 밟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 범죄자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게다가 문제의 뿌리는 생각보다 더 깊다. 오래전에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에서도 민주주의적인 통치는 쇠퇴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무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미국과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사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 응답자의 비율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젊은 유권자들이 가장 무관심하다.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만·한국·일본에서 응답자들은 아직도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만 실제 정치 제도에 대한 좌절감은 사상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나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 나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특징적인 언행들이 위헌적인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한 멕시코계 판사를 일부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트럼프는 테러 용의자의 고문을 지지한다.

한데 등골을 가장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트럼프와 그의 보좌진은 트럼프가 선거에 졌을 때를 대비하고 있다. 그들은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클린턴 대통령’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선거 과정 자체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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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태 전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민주주의가 더 취약한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 준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토대는 ‘정치적인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식이다. 사람들의 심리적인 기질이나 전통적인 가치도 필요하다.

정치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민주주의가 두 개의 주춧돌 위에 놓여 있다고 본다. 첫째는 자유·공정·경쟁 선거다. 둘째는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보호다. 이 두 기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 ‘다수결주의(Majoritarianism)’가 득세하고 있다. 다수결주의는 다수가 지지하는 독재자,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의 훼손, 기본권의 제약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럴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아무리 작은 소수파라도 야당의 권리를 헌법에 따라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과 자제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속 빈 강정이 된다.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초에 대한 논의는 우리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몇 가지 덕(德)과 마음의 습관에 달렸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큰 스승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지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의 공포심과 감정을 악용하는 궤변가·선동가에 대해 경고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감정은 조기경보나 쾌락 같은 우리의 니즈(needs)에 부응하지만 깊은 사고와 토론을 방해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현재 자신들이 테러 공격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모든 테러의 희생자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매주 자동차 사고와 총격으로 사망하고 있다. 거의 모든 권위주의화에서 동일한 패턴이 발견되고 있다. 권력자들이 안보를 핑계로 ‘견제와 균형’을 훼손하고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제한한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협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가. 내 직감에 따르면 그럴 일은 없다. 한국은 혈통상으로 동질적인 나라이며 인종이나 종교를 이유로 특정 그룹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에 대한 관용이 지켜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은 명예훼손법, 인터넷 접속, 선거법과 ‘절망적으로 시대착오적인(hopelessly-outdated) 국가보안법 등 일부 분야에서 언론의 자유 상황이 악화됐다. 민주주의는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국가안보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경각심과 냉정한 사고가 필요하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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