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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꿈꾸던 어른이 되지 못한 나와 당신을 위하여

중앙일보 2016.08.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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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라희찬]

 
어릴 적, 누구나 근사한 어른이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던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54) 감독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원제 海よりもまだ深く, 7월 27일 개봉)는 어쩌다 어른이 된 이들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는 영화다.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지금은 사설탐정으로 일하는 료타(아베 히로시). 그는 어머니와 누나에게도,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도 그리 미덥지 못한 사내다. 태풍이 부는 밤, 료타의 가족은 우연히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의 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밤사이 료타를 비롯한 가족에게는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가 “자기 자신과 가장 닮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 역시 극 중 료타처럼 “꿈꾸던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괴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도 했다. “어린 시절의 꿈은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말자, 반듯하고 제대로 된 어른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안 됐다. 아버지로도, 남편으로도 합격점에 한참 모자란다(웃음).” 지난 7월 28일, 1박 2일 일정으로 내한한 고레에다 감독을 만났다. 지난 5월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들은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우리말로 ‘바다보다 더 깊은’이라는 뜻이다. 극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등려군의 노래 ‘이별의 예감’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어떤 노래가 영화 속 장면에 흐르고, 그 노래의 가사를 따 제목을 짓는 방식은 고레에다 감독이 전작 ‘걸어도 걸어도’(2008, 8월 4일 재개봉)에서도 썼다.

아들을 잃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삶에 익숙해지지 않던 노부부는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를 즐겨 들었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노래는 극 중 인물들의 삶을 갈무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위무한다.

어머니 요시코는 노래를 듣다가 아들 료타에게 문득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행복이라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거야. 난 평생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그간 참 다양한 아이(영화)를 낳았다. 산고를 엮은 아이도 있고, 손을 많이 타지 않고 순조롭게 자라 준 아이도 있다. 심지어 빚을 안겨 준 아이도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와 가장 닮은 아이다.

훗날 저승사자가 내게 ‘이승에서 뭘 했느냐’고 물으면 이 영화를 보여 줄 것이다. 그만큼 어깨에 힘주지 않고 나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투영한 영화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겪었던 일 등 많은 것들이 이 영화 속에 어우러져 있다.”

-요시코가 만드는 음식과 공원에서의 빗속 캠핑 등도 당신의 추억에서 비롯한 것인가.
“냉장고 아이스크림과 커리 스튜는 실제로 내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시던 음식이다. 태풍이 오는 밤 공원에 가는 것은 친구들과의 기억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 나와 가족의 이야기가 정말 많이 들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네 아버지는 현재를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라고 말씀하셨다. 이 영화의 대사 중 하나다. 료타의 누나(고바야시 사토미)가 료타에게 ‘가족의 추억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내가 실제 누나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이 영화는 누나에게만큼은 보여 줄 수가 없겠다(웃음).”

-상실을 겪고 남겨진 인물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중요하게 그리곤 하는데.
“인물들이 함께 음식을 만드는 것, 먹는 것, 이후 설거지하는 과정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럴수록 삶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해진다. 무언가를 먹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료타와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의 관계는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부자(父子) 관계는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도 심도 있게 탐구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나.
“영화를 만들 때마다 스스로 질문해 보는 문제이지만 한 번도 명확하게 답이 나온 적은 없다. 지금도 꾸준히 답을 찾고 있다. 다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진정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혈연관계가 중요한가, 아니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다.

이번 영화는 조금 다르다. 료타는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역할이 그리 썩 잘 어울리지 않는 인물인데, 계속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 마음에 드는 자세다.”

-아베 히로시는 야무지지 못한 남자 료타 역에 딱이었다.
“정말 근사한 외모를 가졌는데도 보기에 따라서 멋지지 않다든가, 진지할수록 웃기다든가 하는 상반된 모습이 그의 매력이라고 본다. 이번 영화에서도 체격은 엄청나게 큰데 사람이 아주 작아 보이지 않나. 남자들 본연의 한심함과 쩨쩨함을 우스꽝스러우면서 과잉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아베 히로시에게는 왜 매번 ‘료타’라는 이름을 주는 건가.
‘걸어도 걸어도’와 TV 드라마 ‘고잉 마이 홈’(2012, 후지 TV)에서도 같은 이름을 쓰게 했는데. “고등학교 후배이자 함께 마작을 즐기는 친구의 이름이다. 자전적 요소가 많은 역할일수록 그 이름을 붙이는 편이다. 왠지 마음에 와 닿는다.”

-키키 키린과는 이미 여러 번 감독과 배우로 호흡을 맞춘 사이인데.
“그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고레에다씨, 이런 평범한 인간을 연기할 때 가장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죠?’라고 하더라(웃음). 그래도 언제나 그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있다. 대사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으면서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배우다.

나는 대사만 제시할 뿐이지만, 그가 비닐봉지 따위를 접는다든가 하며 인물의 생활감을 생생히 살리는 모습은 곁에서 보면서도 늘 감탄한다. 그도 내게 별다른 요구가 없는 편인데, 이번에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내 어머니의 사진과 유품을 보여 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안경을 보더니 ‘이 안경을 제가 좀 써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영화 속 요시코의 안경과 케이스는 실제 내 어머니가 쓰던 것이다.”

-최근작들에서는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남겨 주는 것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남긴 벼루, 료타가 아들에게 사주는 스파이크,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는 손자의 탯줄 등이 직접적으로 제시됐는데.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이 아닐까. 내가 아버지에게 멋진 필체와 옅은 눈썹을 동시에 물려받았듯 말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인에게는 자녀와 선조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는 윤리관이 깔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즘은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가치관과 세계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거울이라는 점을 예전보다 크게 인지하고 있다.”

-첫 장편 극영화 ‘환상의 빛’(1995, 7월 7일 개봉)을 만든 지 20년이 지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감독 고레에다’의 원칙은 무엇인가. 또한 당신의 영화가 이전보다 덜 날카롭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오리지널 각본을 쓰든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하든, 외부의 제안이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를 만들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 영화가 이전보다 덜 날카롭다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일단 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이전보다 낙천적이고 밝아졌다. 또한 아이가 생겼다는 개인적 변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둡고 날카로운 세상은 아닐 것이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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