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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지도교수 교체···동국대 '교수 갑질' 퇴출 실험

중앙일보 2016.08.05 02:16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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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대학원생 박모(29·여)씨는 2년간 지도교수의 폭언에 시달리며 불면증을 앓았다. “쥐뿔도 모르면서 까불지 말라”는 막말부터 “학위를 받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협박이 이어졌지만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같은 대학원의 김모(31)씨는 교수의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4개월간 주말에 쉬지 못했다. 그는 “통계 자료를 찾는 일부터 학회 발표용 자료를 만드는 일까지 논문 작성을 위한 대부분의 작업을 내가 대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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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노예 대학원생’ 처지에서 벗어난 건 지도교수가 바뀌면서다. 두 대학원생은 각각 지난 3월과 1월 학교에 지도교수 교체 신청서를 냈다. 곧 새로운 교수가 배정됐다. 박씨의 불면증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김씨는 새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아 박사 학위 논문 작성을 시작했다.

“쥐뿔도 모르면서” 폭언에 대필까지
시범실시 1년간 학생 46명이 신청
교수들에게 의견 묻는 절차 없애
논문 통과 금품 요구 땐 즉시 처벌

동국대(총장 한태식)는 지난해 5월부터 학생이 지도교수를 교체할 수 있는 지도교수 자율 선택제를 시범 운영해 왔다. 1년간 지도교수 교체 신청서를 낸 학생은 46명이었다. 그중 대부분이 지도교수의 폭언, 개인 업무 지시, 논문 대필 등을 경험했다. 시범 운용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만족도를 확인한 동국대는 5일 국가인권위원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이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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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하는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들의 갑질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정모(29)씨는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연구소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받은 월급 중 절반을 지도교수에게 빼앗겼다. “내가 마련해 준 자리니까 매달 지급되는 월급 150만원 중 절반을 토해내라”는 교수의 엄포 때문이었다. 정씨는 “고정수입이 없는 대학원생에게는 큰돈이지만 학위 심사를 생각해 교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체육대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차모(28·여)씨는 지도교수의 상습적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 차씨는 “건강해서 보기 좋다”며 엉덩이 등 신체를 상습적으로 만지는 지도교수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항상 긴 팔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했다. 차씨는 “‘너처럼 몸매 좋은 애가 교수가 되면 학생들이 술 먹이려고 안달 나겠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을 하면서도 그게 문제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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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대필과 개인 업무 지시도 지도교수의 전형적인 횡포다. 한 사립대 대학원생 진모(31)씨는 1년에 네 차례씩 100여 장의 동창회 초대장을 만들고 동창회 장소로 적합한 식당을 섭외했다. 초등학교 동창회장직을 맡고 있는 지도교수의 요구 때문이었다. 진씨는 “내 논문을 쓸 시간도 없어서 쪽잠을 자고 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서도 지도교수에게는 불만을 표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동국대는 지도교수 교체 신청 시 해당 교수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를 없앴다. 지도교수들이 논문 심사 권한을 활용해 대학원생들을 압박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 ‘논문 갑질’ 방지책도 마련했다. 논문 심사 때 ‘거마비’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논문 심사를 미끼로 부당한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나면 곧바로 징계한다는 내용이다.

변재덕 동국대 홍보실장은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부분이 발견되면 점검해 제도를 계속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구성원들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인권교육도 주기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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