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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아시아선 안 통하네…‘토종 카피캣’에 밀린 우버

중앙일보 2016.08.05 01:26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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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만남. 소개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소개한 우버의 성공 비결이다. 경영학자 라피 모하메드(Rafi Mohammed)는 우버가 주는 경험이 “기분 좋은 만남(nice touch)”이었다고 표현했다. “나를 픽업하러 온 우버 운전사들은 깔끔한 옷차림으로 물병과 사탕을 건네곤 했다. 이런 인간적인 만남은 기존 택시 운전사와의 관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우버는 승객과 운전사가 서로 평가하기 때문에 고객 경험은 물론 기사의 근로 경험까지도 좋아질 수 있다.

2년 전 큰소리 치며 중국 온 우버
디디추싱에 완패, 지분 팔고 철수
엔진 장착 인력거, 디지털 지갑 등
인도에선 현지 기업 서비스 모방도
“아시아 비즈니스 모델 훨씬 독특
카피캣 아닌 하이브리드에 가까워”

우버를 창업한 트래비스 캘러닉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경험을 중국인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비상장 회사인 우버의 가치를 500억 달러 가까이 올려놓은 투자자들 역시 해외에서의 성장을 지지했다. 수억 회의 이용 횟수를 축적한 우버가 기술적 우위를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란 기대였다.

우버는 중국 진출 초기인 2014년 7월 디디다처에 “민망한 패배를 당하기 싫다면 지분 40%를 매각하라”며 담판에 나설 정도로 성공을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현지 경쟁 회사인 디디다처(滴滴打車)와 콰이디다처(快的打車)가 합병에 성공해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지금의 디디추싱(滴滴出行)이 탄생하자 우버는 궁지에 몰렸다. 살아남기 위해 보조금 지급을 늘리며 중국 60개 도시에서 매주 4000만 회 탑승을 제공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수익성은 떨어졌다. 400개 도시에서 매주 1억 회 탑승을 자랑하는 디디추싱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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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버는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1일 중국 내 1위 차량공유 서비스업체 디디추싱은 우버의 중국법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앱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전에는 미국 기업의 인기가 해외 성장으로 이어졌지만 오늘날에는 자리를 잘 잡은 한국·일본·중국의 인터넷 기업이 틈새시장에 더 빨리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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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는 “중국에서의 경쟁 판도는 앞으로 우버의 글로벌 진출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보여주는 전쟁의 축소판”이라고 보도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원조 글로벌 스타트업이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아시아 스타트업의 무서운 성장세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 스타트업은 벤치마킹의 대상인 원조 기업들과 흡사한 기능·서비스를 내놓은 탓에 ‘카피캣(복제품)’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제는 카피캣이 아니라 원조 기업의 기술에 현지 문화가 접목된 ‘하이브리드’가 더 어울린다는 의견도 나왔다. 벤처캐피털인 골든게이트벤처스의 창업자 비니 로리아는 최근 포브스닷컴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의 비즈니스 모델은 훨씬 더 독특해 카피캣이 아닌 하이브리드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미국·중국을 제외하고 우버가 가장 탐내는 시장은 바로 인도다. 인도 국민의 97%는 아직 자가 차량이 없다. 우버보다 3년 먼저 인도에서 콜택시 사업을 시작한 올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올라는 매월 30~40%씩 성장하며 일반 개인이 보유한 세단이나 해치백, 3륜차 툭툭을 포함해 총 25만 대의 자동차로 하루 평균 75만 회에 달하는 승차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동차 제조회사와 인도 최대 은행과의 할부대출 프로그램을 맺어 기사를 확보하는 데 활용해 재미를 봤다. 운전사는 대출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 올라에서 활동하며 할부금을 갚을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운전사 대출상환 시스템을 개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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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성공한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거꾸로 원조 기업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올라는 2014년 11월부터 엔진을 장착한 인력거 판매를 시작했고, 우버도 뒤따라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4년 9월 올라가 서비스 결제를 위한 디지털 지갑 서비스를 시작하자 우버도 곧 뒤를 따랐다.

동남아시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우버는 일찍이 현지화에 성공한 그랩택시(그랩)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랩은 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남아시아 최대 택시 호출 앱이다. 그랩은 필리핀에서 실시간 교통정보를 교통당국에 제공해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설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했다. 현금 결제와 오토바이 서비스를 허용하고 현지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그랩을 우버는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버는 올해 초 그랩을 베껴 현금 결제와 오토바이 서비스를 출시했다.

현지 상황을 접목시키고 있는 스타트업은 더 있다. 7000여 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는 큰 트럭이 아닌 오토바이와 보트, 각 지역에 배치된 중앙센터를 확보한 배달 앱 샌드(Xend)가 인기를 얻고 있다. 큰 트럭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동하는 택배 서비스가 서양에는 어울리지만 구불구불한 골목과 사잇길이 많은 동남아시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 착안한 모델이다.

인도네시아의 고젝(Go-Jek)은 물류산업을 완전히 재구축한 스타트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점을 감안해 앱을 사용하는 대신 문자메시지로 차량을 호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스마트폰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올 초에는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메신저 라인과 제휴를 맺기도 했다.

한국·중국·일본을 휩쓴 스노(Snow)도 이런 하이브리드의 대표적인 예다. 스노는 네이버의 자회사에서 분사한 캠프모바일이 출시한 앱이다. 지난 5월 한국과 일본에서 애플 아이폰 앱스토어 마켓의 무료 앱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안드로이드와 앱스토어 마켓의 사진·동영상 부문만 놓고 보면 한국·일본·대만에서 1위다. 먼저 탄생한 동영상 메신저 앱인 스냅챗과 흡사해 역시 카피캣으로 불렸다. 하지만 기능면에서는 동아시아 문화에 안성맞춤이었다. 업로드 후 자동으로 삭제되는 기본 기능은 같지만 스노는 아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사진·동영상 서비스를 강화했다. 한국에서 제공되는 필터엔 소주나 연예인 얼굴이, 일본에선 스모 선수나 스시를 등장시키며 현지에 맞게 적용했다.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원조 업체를 인수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4월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小米)는 ‘세그웨이’ 브랜드를 인수했다. 2001년 미국에서 출시된 세그웨이는 두 바퀴로 달리는 전동 차량이다. 반짝 인기를 얻다가 사라진 전동 차량을 샤오미는 새로운 기능을 더해 부활시켰다.

2012년 중국 로봇 공학자들은 세그웨이와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1인용 전동 스쿠터인 나인봇을 내놨다. 나인봇은 스스로 균형을 잡으면서 시속 16㎞로 달릴 수 있고 최대 15도의 경사진 길도 올라갈 수 있는 기능을 더했다.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을 하고 도난방지 알람을 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능도 1인용 전동 스쿠터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300만~400만원 안팎이었던 제품 가격을 30만원대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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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는 중국 기업들의 야심이 엿보인다”고 전했다. 세쿼이아캐피털 설립 멤버인 닐 셴은 “이제 중국은 ‘카피캣’으로만 볼 수 없다”며 “자체 혁신과 기업 인수를 통해 중국은 더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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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우버는 ‘교통 지옥’으로 악명 높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전 세계 최초로 헬리콥터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버는 상파울루에 400대가 넘는 헬리콥터가 있고, 그에 맞춰 착륙장도 다수 갖춰져 있다는 점에 착안해 헬리콥터 택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약 6㎞를 비행하는 데 1인당 약 66헤알(약 2만2000원)을 받는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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