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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

중앙일보 2016.08.05 00:31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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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괴담 원천은 사실이 아닌 인식
과학적 설득만으론 해소 못해
논쟁과 소통 통한 의사결정이
괴담 없애는 가장 효율적인 길

연구원

지난달 하순, 부산·울산 지역에서 이상한 악취와 가스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유독성 화학물질이 방출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불안해진 시민들 사이에 갑작스레 “일본 대지진 직전에 났던 냄새와 비슷하다”는 소문이 퍼졌고 때마침 백사장에서 떼를 지어 이동하는 개미가 목격됐다. 거제 해수욕장에서 거대 심해어가 잡히면서 순식간에 지진의 전조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비약했다. 한편으론 고리 원전의 이상 징후와 관계된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일었다. 이른바 괴담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지진 전조설’과 ‘원전 이상설’을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달 26일 구성된 ‘부산·울산지역 가스·악취 민관 합동조사단’이 “부산은 부취제, 울산은 공단 악취 탓”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괴담도 수그러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괴담 소동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어 보인다. 정부와 전문가 사회가 괴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응하고 있어서다.

오늘날 위험은 우리의 일상이 됐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론에서 현대사회의 특징이 위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술과 사회가 발전한다고 위험이 줄어들진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위험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위험을 잘 다스리고 최소화시키는 시민사회 전체의 지혜가 더욱 절실해진다. 그간 우리 사회를 뒤흔든 괴담들도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활동이 초래한 기술 위험에서 비롯됐다. 광우병 사태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괴담의 원천은 각각 바이러스와 방사능, 전자파였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을 잘 전달하면 괴담이 없어진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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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에서 위험이 소통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위험의 사회적 증폭(social amplification of risk)’ 프레임이 있다. 서구에서 기술 위험이 고조되던 1980년대 말엽에 이 이론을 제기한 로저 카스퍼슨과 오트윈 렌 같은 학자들은 특정한 위험의 징후나 신호(risk signal)가 나라나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르게 증폭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정 사회마다 이러한 위험 신호를 높이는 증폭기 역할을 하는 사회적 및 개인적 거점(station)이 작용하는 방식이 사뭇 다르며, 같은 위험 신호가 나타나도 그 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증폭되거나 감쇠하는 양상이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 위험을 순수하게 과학적으로만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가장 심각한 착각이자 오류일 수 있다. 오늘날의 위험은 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분리시킬 수 없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유전자 재조합(GM) 식품의 위험 인식이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똑같은 GM 작물을 둘러싼 위험 인식이 수출하는 미국과 수입하는 유럽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이런 프레임에서 분석해 보면 정부가 비과학적 괴담과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치부하는 현상들이 사실은 우리 사회 전체의 불안 수준이 높아졌다는 신호임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과연 정부가 국민을 위험에서 보호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키웠고, 시민들이 작은 위험에도 극도로 민감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부산·울산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해 있는 동남권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잦아진 지진과 방사능에 대한 불안 심리가 서로 증폭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과 전문가 집단은 국민을 정책 실행과 설득의 대상으로 여길 뿐 투명한 정보 공개와 지속적인 소통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왔다. 또 다른 괴담의 원천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기지 결정 과정은 지역민의 의견 수렴이 배제된 채 일방적인 결정과 국익을 내세운 위압적인 설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여기서도 전자파 위험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는 어김없이 괴담으로 치부됐고, 정부 당국은 외부 세력 개입과 같은 구태의연한 대응으로 주민들을 겁박했다.

이를 뒤집어 보면 괴담을 없애는 길도 보인다. 영국 정부는 GM 식품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괴담이나 외부 세력의 선동, 혹은 무식의 소치 등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 정부가 나서서 ‘GM 국가(GM nation)?’라는 전국 차원의 대중 논쟁을 촉발했다. 2만 명이 넘는 시민이 끝장 토론을 하면서 GM 식품의 위험성과 사회적 수용도에 대한 판단이 자리를 잡아 갔다.

현대사회에서 정부는 더 이상 위험 담론을 독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시민들의 논쟁과 소통을 북돋는 게 효과적이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시민들의 불안감을 타박할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대응능력을 갖추고 시민들에게 정부를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의 경험을 쌓아나가야 한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괴담은 없다. 불안과 불신에 의해 증폭된 ‘근거 있는’ 우려가 있을 뿐이다.

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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