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한국 정치인들이 말하지 않는 것

중앙일보 2016.08.05 00:28 종합 26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김성탁
정치부 차장

“오는 11월 투표할 때 우리가 결정할 것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좌파냐 우파냐가 아닙니다. 모든 선거는 앞으로 4년 혹은 8년간 누가 아이들의 삶을 위해 권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결정입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힌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지지연설에서 한 말이다. 미셸은 “대학 학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영어를 못하지만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꾸는 아이들을 위해 힐러리가 노력해왔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전당대회가 한창이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9일과 27일 새 지도부를 뽑는다. 새누리당 당권 주자들은 ‘정권 재창출’을, 더민주 당 대표 후보들은 ‘정권 교체’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하지만 정당을 이끌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은 정견 발표나 토론회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정권을 잡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것을 남겨주기 위한 것이고, 그게 우리가 아이들을 대표해 이 나라를 전진하게 했던 방법”이라는 미셸의 외침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4일 새누리당 당권 주자들의 TV토론에선 ‘친박·비박’ 논란만 무성했다. 이정현 후보는 “호남에서 22년간 선거를 치른 제가 대표가 되면 계파 싸움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주영 후보도 “ 당을 잘 화합시킬 적임자가 바로 나”라고 주장했다. 정병국 후보는 “지난 총선이 갑질 공천에 대한 심판이었는데, 갑질 문화를 청산하 겠다”고 말했고, 주호영 후보는 “아무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내가 화합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선교 후보 역시 “당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전대에 영향을 주려고 대구·경북 의원들을 만났다는 이들이 있 다”고 말문을 열었다.

더민주 당 대표 후보들이 이날 쏟아낸 말도 별 차이가 없었다. 추미애 후보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공정한 룰을 만들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종걸 후보는 “계파가 척결돼야 이기는 대선 후보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상곤 후보는 “다른 후보들이 문재인 전 대표의 확장성을 틀에 가둔다”고 비판했고, 송영길 후보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회견을 했다.

이들의 언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면서 전당대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지고 있다. 자신들이 속한 정당 내부나 현안에 대한 입장만이 전해지다 보니 제1, 2당의 전대에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더욱이 새누리당과 더민주 정치인들은 내년 대선 경선만 잘 흥행을 시키면 정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 내년 대선 때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을 말하는 정치인이 나타나야 우리도 물려줄 유산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김성탁 정치부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