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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44년 전 ‘8·3조치’서 배울 점…시장원리 벗어난 빚 탕감은 곤란

중앙일보 2016.08.05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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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3일 태완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15호’를 공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낙선 상공부 장관, 태완선 부총리, 남덕우 재무부 장관, 김성환 한국은행 총재. [중앙포토]

1972년 8월 2일 밤 11시 40분. 당시 태완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다.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관한 긴급명령 15호’, 이른바 8·3 사채동결 조치(이하 8·3조치)다.

‘과다 차입’ 파산 몰린 기업 살리기
시장경제서 유례 없는 극약처방
경기는 띄웠지만 후유증도 심각
구조조정 원칙, 청산→연명 전환
부채 탕감 논의 정치권은 기억해야

 박정희 대통령의 밀명을 받아 김용환 당시 청와대 외자담당 비서관이 1년간 비밀리에 추진한 8·3조치는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법적 결정이었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8월 3일 0시를 기해 기업이 쓴 사채 이자를 월 1.35%(연 16.2%)로 내리고 상환 날짜는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으로 조정한다.’ 당시 시중 사채 금리는 연 40~50%였다. 대통령 긴급명령이라는 형식을 빌려 기업의 사채 이자 부담을 3분의 1로 줄여준 셈이다. 1970년대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15%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이자 특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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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3조치가 발령된 날, 은행 앞에 모인 시민들이 안내문을 읽고 있다.

8·3조치로 드러난 지하경제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사채 자진 신고기간(72년 8월 3~9일)에 접수된 사채 건수는 4만677건, 액수로는 3456억원이었다. 당시 통화량의 80%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5월 말 기준 국내 통화량(M2)은 2312조8000억원. 지금으로 따지면 1840조원의 사채가 지하에서 돌고 있었던 셈이다.

사채에 짓눌려 있던 기업, 특히 대기업에 8·3조치는 ‘희년(year of jubilee, 禧年)’과도 같은 것이었다. 희년은 50년마다 죄를 사면하고 빚을 탕감해주는 옛 이스라엘의 의식을 말한다. 빚만 탕감받은 게 아니다. 박정희 정부는 사채 동결 조치와 함께 2000억원이 넘는 긴급자금을 시중금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8% 이자로 기업에 공급했다. 현재가치로 치면 40조원(44년간 평균 7% 금리를 복리로 계산)을 수혈한 셈이다. 기업들은 시쳇말로 죽다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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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의 기업 사채 동결 조치를 다룬 1972년 8월 3일자 중앙일보 1면.

당시 중앙일보는 72년 8월 3일자에서 ‘2일 단행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과한 긴급명령은 통화 개혁에 버금하는 혁명적 경제조처’라며 ‘기존 경제 질서를 초월하는 파격적 조처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입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에 규정된 긴급명령권이 발동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8·3조치에 대해 우려하는 분석을 실었다. ‘이번 경제 비상 조처가 목적·지향하는 바는 무척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문제점이 많다. 특히 사채 동결 조치는 재산권의 침해, 신용질서의 파괴라는 점에서 많은 부작용을 빚을 것이다 … 특히 기업의 원가 경감을 위해 다수의 사채권자가 피해를 보아야 하는 사태는 사회 정의와도 관련된 문제이며…’.

시장원리에 벗어난 8·3조치가 왜 문제인지도 꼬집었다 ‘기업 부실의 요인이 단지 이자 부담의 과중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의 부족, 기업 경영의 미비 등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단지 금융 지원만을 한다고 기업 정상화가 이뤄질지는 큰 의문이다. 오히려 자유경제 체제의 바탕을 이루는 신용거래 질서의 혼란이 빚을 부작용을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이며 … 또 경제를 이런 충격 요법에 의해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경제는 경제 원칙에 의해 운용되야하며 그 속에서 자유 경제 체제가 가장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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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9일로 예정된 사채 신고 마감일이 다가오자 사채를 쓴 기업과 사채권자들이 은행창구와 세무소로 몰려들었다.

8·3조치는 동결됐던 사채 상환이 마무리된 80년 8월 3일 사실상 해제됐다. 그러나 8·3조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8·3조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부실하고, 한국경제에 남긴 영향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본지가 44년 전 8·3조치를 되돌아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8·3조치는 국가가 개인재산권을 침해하면서 특정 집단의 빚을 탕감해준 정책이었다. 반시장적이면서 동시에 친기업적 정책이었다. 8·3조치에 관여했던 고위 관료들은 훗날 한결같이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대규모 차관과 고리사채로 재무구조가 취약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 닉슨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노린 금 태환 정책 포기를 선언하면서 환율이 급등했고 국내 기업들은 파산 직전에 몰렸다. 결국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김용완 경성방직 회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사채 동결을 요청했고, 박 전 대통령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 8·3조치였다.

성과는 있었다. 8·3조치는 국내 금융시장의 전환점이 됐다. 사금융이 양성화되면서 제2금융권이 탄생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직접금융시장도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경기는 급반등했다. 72년 7.2%였던 실질 경제성장률은 이듬해 14.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불가피론’을 내세운 극약 처방은 훗날 한국경제에 지울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겼다. 『대통령의 경제학』저자인 이장규 서강대 부총장은 “기업의 연쇄 도산 사태를 정부가 선제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막았을 뿐 아니라 그 뒤에 불어닥친 1차 오일쇼크도 견뎌냈고 중화학투자로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도 “시장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해 부작용이 두고두고 심각했다”고 강조했다.

8·3조치가 1998년 외환위기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퇴출당했어야 할 부실기업이 관치금융의 그늘 속에서 차입경영을 지속했고 정경유착과 재벌체제가 구축되면서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위기가 오면 정부가 살려준다는 모럴 해저드가 시장에 뿌리깊게 박힌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더 기가 막힌 일도 있었다. 대통령을 찾아가 “고리사채로 기업이 다 망할 판”이라고 읍소하던 대기업 경영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당시 신고된 사채 중 1137억원(33%)은 기업주가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 사채놀이를 한 돈이었다. 위장 사채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에 대한 조치와 처벌을 미뤘다. 기업들은 환호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업 오너의 위장사채나 부동산 투기 등은 처벌했어야 했다”며 “결국 기업가들은 정부와의 관계에 따라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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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동안 한국경제는 상전벽해로 변했다. 그러나 정부·정치권의 인식은 8·3조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8·3조치를 발표하기 전 몇 해 전 박정희 정부는 강도높은 부실기업 정리, 즉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원칙은 단호했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기업은 청산하고 재기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재무구조를 개선시켜 살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8·3조치로 구조조정의 원칙은 무너졌다. 이후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부실기업 청산보다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연명시키는 방향으로 흘렀다. 최근 진행중인 조선업 구조조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위 관료 몇 명이 비밀리에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나라의 큰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44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현재 가계부채는 1224조원에 달한다. 역대 정부는 수차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일까. 최근 정치권에서는 부채 탕감 얘기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 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탕감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많은 후유증과 부작용을 남긴다는 것을 8·3조치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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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교수는 “경제개발 초기였기 때문에 8·3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지만 시장원리를 정상적으로 적용하면서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방안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를 교훈 삼아 시장 원칙에 근거한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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