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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김영란법 5조2항3호를 삭제하라

중앙일보 2016.08.04 19:09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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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김영란법은 부패와의 전쟁을 시민적 차원에서 전개하는 시작점이다. 김영란법은 위로부터도 아래로부터도 아닌 옆으로부터의 혁명이다. 과거 숱한 부패와의 전쟁들은 죄다 위로부터 권력과 검찰이 선포한 것이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재벌 한둘을 잡아들여 거악을 척결했다고 자화자찬한 뒤끝에 권력과 검찰 내부엔 더 큰 부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곤 했다.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집중되는 의혹이나 120억원을 꿀꺽 삼킨 진경준 검사장의 추락에서 그 한계를 본다. 건국 이래 아래로부터의 혁명 욕구는 4·19(1960년)나 5·18(80년), 6·10(87년) 민주화 운동에서 분출됐는데 앞의 두 개는 참혹한 유혈 희생을 동반했다.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막으려면 옆으로부터 혁명이 진행돼 김을 그때그때 빼줘야 한다. 이게 합리와 상식에 의한 사회적 진화다.

김영란법은 이해당사자들에게 한동안 괴롭고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시민 대다수가 세상이 맑아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충분히 강제할 가치가 있다. 법의 규율 대상은 공무원·교원·언론인(‘공직자 등’) 200만 명에다 이들의 배우자까지 포함해 약 4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죄의식 없이 발 뻗고 편히 자고 싶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① 제3자를 통한 부탁은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②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 부조는 10만원 이상 하지 않는다 ③ 어떤 경우라도 한 번에 100만원 이상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자세를 딱 정할 필요가 있다. 인구 400만 명의 행동 패턴이 바뀌면 나머지 국민들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87년 민주화 이래 한국 사회 전체가 말갛고 투명하게 변화할 기회가 온 것이다. 얼추 3년이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검찰과 경찰에게 마구 휘두를 칼자루를 쥐어줬다는 걱정도 있는데 기우(杞憂)라고 본다. 시민의 사고방식, 생활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문화 혁신기에 검경(檢警)이 야한 칼춤을 추긴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검경도 시민의 감시 칼끝을 받아야 할 운명이 됐다.

김영란법은 미완성의 법률이다. 3년간 입법 과정에서 교묘한 장난들이 벌어졌다. ‘국회의원 청탁독점법’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김영란법이 정부에서 처음 제출될 때는 ‘부정청탁+금품수수+이해충돌’ 금지가 한 묶음이었다. 그런데 정무위원회 소위 의원들이 이해충돌 방지 부분을 몽땅 들어내 버렸다. 국회 법사위 회의록(2015년 2월 5일)에서 남궁석 수석 전문위원의 비판이 정곡을 찌른다. “이해충돌 방지는 공직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임에도 관련 규정 전체가 삭제된 상태로 의결돼 자체 완결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은 또 부정청탁의 15가지 유형을 세밀하게 적시해 놓고는 정작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른 이들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자기들 300명 국회의원은 마음껏 민원을 할 수 있게 뒷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민원 청탁들이 국회의원한테 몰릴 수밖에 없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입법, 예산 확정의 권한을 부여하고 청렴, 국익 우선의 의무를 지울망정(헌법 제3장) 그 어디에도 민원청탁이란 용어를 허용하지 않는다.

민원의 청취·부탁이 국회의원 고유의 사명이라는 믿음은 좋게 말해 신화일 뿐이다. 의원만 민원을 가능케 한 청탁독점 조항(5조2항3호)을 삭제해야 김영란법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2004년 정치관계법이 국회의원의 주례와 경조사비 지출을 일절 금지했을 때 정치권은 패닉에 빠졌지만 막상 실행해 보니 그게 가능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신앙처럼 주장하는 민원활동도 무슨 성역이나 자연질서가 아니다. 그냥 오래된 미신이다. 김영란법에 못하도록 규정하면 없어진다. 정상적인 민원은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하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다. 시민이 나서서 혁명하듯 김영란법을 개선해야 한다. 김영란법은 한국 현대사에서 보기 드물게 맞이하는 평화적인, 옆으로부터의 혁명 기회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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